겨례와 함께한 한국교회

 

        태극기를 배경으로한 강서 매일학교 사진

2010년 올해는 한일합병 100년, 6.25전쟁 발발 60년, 4.19 의거 50주년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이 해방 65주년을 맞은 바로 이날 8.15 기념예배는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예배입니다. 이런 의미 있는 연합예배에 부족한 제가 설교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저는 이 역사적인 기념예배에 교회와 민족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역사가 말해주듯 기독교는 민족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녀 왔습니다. 민족은 구약성경과 신약 전체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신 첫 번 째 약속도 민족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졌고, 야곱의 12지파를 통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신 약속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삼으시겠다는 선민사상이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나는 너희 하나님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환기시켜주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택하셨다는 선민의식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선민의식을 가진 깨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늘 개인의 영달에 머물지 않고 민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와 에스겔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이들은 민족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알고 통회했고,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 있는 자기민족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염원했습니다.

이런 선민의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인 선민의식으로 수정되었습니다.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예를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무섭게 경고하신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셔서 자신이 고대하던 메시야 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부르심으로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들만 자신의 백성으로 삼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넘어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부탁하셨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 사건을 통해 선민사상이 영적 이스라엘 민족으로 대치된 것입니다. 오순절을 통해 태동된 신약의 교회는 모든 민족을 초월합니다. 선민사상이 더 이상 혈통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예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자신이 속한 가정 사회 민족을 복음화시키려는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때문에 복음이 닿는 곳마다 자기 민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노력이 기독교 역사 속에 계속해서 흘러 왔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는 말씀대로 은혜를 받으면 개인의 각성이 일어나고 이어 사회적 민족적 책임 구현을 통해 사회개혁과 민족복음화가 일어났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한 개인의 구원으로 머물지 않고 그 개인이 속한 가정과 친척과 사회 공동체 그리고 민족 전체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구원을 얻었고, 다시 그들을 통해 빌립보 지역이 복음화되었습니다. 때문에 복음이 닿는 곳마다 놀라운 사회개혁이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와 더 나아가 민족 전체 가운데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닿는 곳마다 교회가 태동되고 사회개혁이 놀랍게 진행되었으며 자신이 속한 민족을 복음화하려는 민족복음화의 꿈이 배태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끊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지 불과 30여년 만에 로마에 복음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다시 3세기도 되기 전에 기독교는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특별히 부르셨다는 영적인 선민사상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민족에게 제시되었지만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특별히 몇몇 민족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미국 초기 기독교를 형성한 청교도와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1. 교회는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청교도 공동체는 교회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 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와 민족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애국심이 청교도들의 사상을 지배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 종교적인 애국심은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마틴 마티가 지적한 것처럼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 모든 민족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의의원리를 예시하기 위해 거듭난 기독교 민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한 침례교 목사는 전국적인 네트웍을 가진 텔레비전에서 “본 교회에서 우리는 애국주의를 기독교와 동일한 것으로 가르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교회는 독립운동의 핵심에 서 있었습니다. 교회는 민족적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곧 애국자들이었습니다. 수많은 애국자들이 기독교인 가운데 나왔습니다. 장로교 총회장 위더스푼은 독립선언서 서명자 중 1명이었고, 미국 독립전쟁 때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인 교단인 장로교, 침례교, 회중교회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미국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곧 기독교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지 않은 미국의 신학자들은 미국의 독립을 고취시킨 것은 1776년의 세속 정치 철학이 아니라 1740년 대각성운동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잉글런드에서 시작된 대각성운동은 곧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인디언 선교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미국의 복음화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들이 충천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미국을 택하셨다는 영적인 선민의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모든 신학자들에게 찾을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노예를 해방하고 백악관을 기도실로 바꾼 아브라함 링컨은 철저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1861년 “국민이 조국의 일치와 자유를 위하여 힘차게 일어설 때 진실로 지옥문이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인 찰스 핫지는 “만일 복음이 우리의 특성을 형성하고 우리의 힘을 인도한다면 우리는 세계 모든 민족에게 생명의 원친이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선민의식은 국내외 선교를 촉진하고 불신앙과 사회악을 개혁하도록 자극을 주었습니다.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이 대변하듯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만 아니라 노예폐지운동, 금주운동, 여권신장, 교육, 구제, 감옥및 병원개혁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사회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각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미국을 특별히 축복하신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것은 미국을 세계 열국에서 우뚝 세우는 역동적인 힘,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2. 교회는 사회를 선도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어떻게 청교도 공동체가 미국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청교도 공동체가 개인과 사회, 개인과 민족을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겼고, 민족의 수난, 겨레의 수난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에게 경제정의를 심어주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가난한 자의 돈을 빼앗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독약을 구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재물의 소유는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선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기독교 윤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재물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도적질하는 것이며, 주인의 재물을 횡령하는 것이며, 그들 영혼을 타락케하며 공동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 자신을 해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제정의 실천은 미국을 지탱하는 저력이었습니다. 카네기가 모델을 보여주었고, 최근 빌 게이츠와 버핏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게이츠와 버핏외에 38명의 억만 장자들이 생전 혹은 사후에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는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이들이 약속한 기부금은 1500억 달러를 넘는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게이츠는 “많은 재산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고 그 만큼 재산 사용에 대한 책임감도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세계 부자 3위라고 하는 버핏이 2006년 빌앤드멜린다게이츠 재단에 자신의 재산 99%를 기부하기로 약속한 사실입니다. 얼마든지 자기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운용할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함으로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이 점에서 빌 게이츠도 훌륭하지만 버핏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가 기부운동에 앞장서지 않았다면 기부문화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으로 정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 개척 당시부터 흘러온 청교도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는대로 민족적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변호사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직능을 발휘하여 궁극적 목적으로 삼을 것은 돈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라. 많은 돈을 지불하는 부자들의 소송을 위해서는 땀을 흘리면서도 적은 돈을 지불하는 가난한 자의 소송을 적당히 처리하는 사람은 정의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의사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당신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는 그 다음 임을 명심하라.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떠한 재물을 주지 못한다할지라도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그리고 매매 조건이나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 상인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내가 만약 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거래를 할 것인가? 내 이익이 얼마일까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죄로 인해 내가 얼마나 잃게 될 것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이런 영향을 받아 미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정직한 상거래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천했습니다. 수많은 연구들과 자료들은 미국교회가 사회적 책임 구현을 통해 사회개혁을 이루는 구심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965년 디모디 스미스가 <영적부흥과 사회개혁>이라는 저서를 통해 “복음주의적인 사회개혁은 도시의 조직화된 악을 대항하는 힘으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자비의 손길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에 언제나 앞장섰습니다. 1855년 미국의 어느 신문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비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만 오직 신자만이 자비를 베푼다”고 보도했습니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를 유기적 관계로 이해하고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책임과 민족적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미국 교회는 배고픈 자를 먹이고 배우지 못한 자를 교육시키며 죄수들을 교화하고 정신적으로 병든 자들을 치유하며 고아원을 세우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며 노예를 해방시키고 수많은 자선 사업을 담당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리고 제가 믿는 한 미국의 위대한 힘으로 작용한 청교도 공동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너무도 빼 닮았습니다.

태극기를 앞에둔 평양신학교 학생들

3. 한국교회는 청교도 정신을 빼닮은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이 같은 청교도 사상은 초기 한국기독교에도 이어졌습니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청교도 사상을 가진 선교사들이었습니다. 한국에 관한 훌륭한 저술을 남긴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는 1882년에 저술한 자신의 책 Corea: The Hermit Nation 서문에서 한국교회와 민족의 미래를 예견하듯 이런 의미 있는 헌사를 남겼습니다.

All Corean patriots: who seek by the aid of science, truth, and pure religion to enlighten themselves and their countrymen to rid their land of superstition, bigotry, despotism, and priestcraft-both natives and foreign- and to preserve the integrity, independence, and honor, of their country; this unworthy sketch of their past history and present condition is dedicated.

"학문, 진리, 그리고 순수한 종교의 도움으로 자신과 동료 한국인들을 계몽하여 그 땅의 미신, 아집, 독재, 자생적이거나 외국적인 사제술을 일소하고 그들 국가의 정직, 독립, 영예를 보존하기를 추구하는 모든 한국 애국자들에게 그들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상태를 다룬 부족한 본서를 헌정하나이다.”

한국교회는 그가 예견한대로 또 염원한 대로 미신을 타파하고 정직과 독립을 쟁취하는 일에 겨레와 함께 했습니다. 초창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애국자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애국자가 된다는 의미와 같았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만나고 있을 때 고종황제를 지켜준 사람들은 대신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고종 황제는 본능적으로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비명에 간 후 그 역시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언제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 그가 외친 첫 마디는 “외국인은 게 아무도 없느냐”였습니다. 참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대신들이 아니라 외국 선교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헐버트 알렌 벙커 등 초기 선교사들은 고종의 침실 옆에 있는 황실 도서관에서 번갈아 가면서 불침번을 섰습니다. 선교사들의 헌신은 기독교 민족애를 고양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고종황제는 언더우드가 발행하는 주간 그리스도신문 467부를 정기구독하고 367명의 관리 각 사람에게 이 신문을 발송했고 10부를 10개의 각 중앙부처에 배부했으며, 황제 자신도 그리스도신문을 정기적으로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와 민족의 연대의식이 강하게 등장합니다.

이런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과 섬김을 통해 기독교 젊은이들 사이에 충군 애국 사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수많은 기독교 애국자들을 배출하였고 그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1897년 조선그리스도인회보를 통해 충군애국정신을 널리 고취시켜 나갔습니다.

참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자라야 임군에게도 충성하고 부모에게도 효도하나니 그런고로 서양의 개화된 백성들은 제 몸이 죽을 지언정 임군과 나라를 위하여 싸움하고 전국 인민이 항상 일심이 되거니와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는 백성들은 입으로는 오륜과 삼강을 말하되 마음에는 자기 몸만 생각하는 고로 사람마다 각심(마음이 따로 따로요)이오 사람마다 서로 속여 신과 의가 없는지라.(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권 22호, 1897년 6. 23;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권, 793)

당시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발행하던 신학월보, 조선그리스도인회보, 독립신문에는 기독교 민족애를 담은 글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벙커 스크랜톤 에비슨 헐버트는 온 몸으로 나라 사랑을 실천했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1897년 11월 21일 명성황후 2주기 때 정동감리교회에서 추모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이날 설교를 맡은 언더우드는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라를 도우사 교회가 흥왕케 하시기를 원한다”며 민족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교인들에게 기독교 민족애를 불어 넣었습니다.(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권 44호(1897 12 1), 한국기독교회사, 796)

이 같은 기독교 민족애는 초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제임스 게일이 고결한 한국인이라고 예찬했던 월남 이상재, 1894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그 학교 교사로 임명받은 이승만,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반을 이수한 홍정후, 미국 밴더빌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윤치호, 독립신문 창시자 서재필은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들이 가졌던 고결한 애국정신과 민족의식은 역사 속에 맥을 이어 고당 조만식, 남강 이승훈, 소양 주기철을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1896년 4월 7일 배재학당 안에 사무실을 두고 윤치호 이승만 주시경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독립신문은 근대 신문의 효시로 독립정신 앙양, 국민계몽, 민주주의 발전, 기독교 문화창달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한국사회와 정치를 주도하는 중심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민족애를 배웠고, 다시 초기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을 통해 기독교 민족애 신앙이 교회와 국가의 일체감을 낳은 것입니다. 1897년 8월 23일 대군주 폐하 탄일 경축회에서는 교우들이 태극기와 십자가를 같이 달고 대군주 폐하 탄신을 경축했습니다. 이날 아펜젤러는 마태복음 22장 15-22절 말씀을 가지고 “사람마다 하나님께 할 직무가 있고 님군에게 할 직무”가 있다며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설교를 했고 이어 등단한 윤치호는 “우리 나라 당금 긴 일은 아희아자 백성민자 충성충자 나라국자 네 글자의 새뜻을 배우는 것이고 이를 가르친 사람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이었고, 기독교가 점점 흥황하여 우리 전국 사람들이 이 네 글자의 새뜻을 배우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초대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교회와 민족의 일체감은 태극기와 십자가가 한데 어우러진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교회 마다 태극기를 걸어놓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태극기가 교회 마다 펄럭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시기를 염원했고,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셔야 하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이들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교회와 민족은 이들에게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온몸으로 이를 실천했습니다. ‘기독교인은 곧 애국자’라는 인식을 왕이 알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인정했고 기독교인들이 온 몸으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1907년 전후 윤치호가 출판한 찬미가에는 애국가가 찬미가 14장에 수록되어 예배 때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찬미가 뎨 十 四     
                                                                                   


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만세

二. 남산우헤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

三.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업시놉고
     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四. 이 긔상과 이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괴로오나 질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히 보전하세


교회는 민족의 위기에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적 위기 앞에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일제에 맞섰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민족의 위기 앞에 생명을 무릎쓰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라고 외쳤던 것처럼 이들은 민족의 위기 앞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1902년 12월 종로 형무소에는 미결 기결 모두 345명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절대 다수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부터 1910년 강제합병까지 수많은 이들이 투옥을 당했을 때도, 1911년 105인 사건 때에도, 1919년 삼일독립운동 때에도 그리고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맞서다 투옥된 사람들도 거의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참혹한 감방에서 주님을 만난 이들도 있고, 그 속에서 동료를 통해 주님을 만난 이들도 많았습니다. 셔우드 에디는 The New Era in Asia에서 이승만이 옥중에서 회심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유교는 그[이승만]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고 불교에도 구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질 낮은 샤머니즘의 미신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기독교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 구세주, 죄의 용서, 그리고 장래에 대한 희망 등 기독교학교에서 들어온 많은 교훈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절망과 파멸감으로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왔다. ‘오 하나님, 나의 조국을 지켜 주소서. 나의 영혼을 구하여 주소서.’ 이것이 그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비참한 외침 속에서 젊은 애국자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께 드렸던 첫 기도였다. (한국기독교회사, 800)

초기 한국교회가 사회적 민족적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민족이 위기를 만날 때 과감하게 위험을 무릎쓰고 앞장섰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무수하게 배출되었습니다. 교회는 수많은 학교들을 설립했고, 병원을 세웠으며, 성경번역과 문서출판을 통해 문맹률을 낮추고 국민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켰으며, 서양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상을 심어주어 근대 한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확실히 한국교회는 한국의 근대화의 초석이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었고, 한국교회는 사회와 민족의 희망이었습니다.

사진출처: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4. 한국교회는 청교도 전통과 초기 한국교회의 영광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청교도 공동체와 초기 한국교회 모습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25%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 수치를 낮춘다고 해도 적어도 20%는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사회로부터 개독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이들이 여기 저기 벌어지고 있는데도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God가 유행하더니 이제 아이돌이 자라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거룩한 꿈을 꾸던 초기 젊은 세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25%를 더 이상 자랑하지 마십시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600만명이나 살해할 때 독인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종교인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여 하나님의 영광만 가릴 뿐입니다. 그듭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난 한 생명은 거듭나지 않은 수백 수천명보다 더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교회는 숫자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에 동화되고 자신의 보신만 생각하는 군중에 아부하는 10명의 정탐군보다 여호수아 갈렙 같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인은 불과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기독교는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영적각성을 통해 사회적 민족적 책임의식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우상을 타파하고, 축첩제도와 신분제도를 타파하였으며 여권 신장을 꾀했고, 수많은 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자기 교회만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가 잘되기를 사모했고, 한국민족 전체가 잘 되기를 사모했습니다. 1907년 대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고, 고종의 퇴위 앞에 흔들리지 않았고 1910년 일제의 강제합병 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그치지 않았으며, 1911년 105인 사건과 1919년 삼일운동 그리고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신사참배반대운동에서 보여주었듯 사회와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병이라는 민족적 아픔에 교회만큼 깊이 고민하고 동참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수많은 애국자들이 나왔습니다. 1911년 105인 사건 때 구속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삼일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중에 길선주, 한석진, 유여대 세 사람은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장로교 목회자들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말할 것 없고 천도교보다 더 많았습니다. 신사참배 강요에 끝까지 맞선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 때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 공동체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일제의 식민침략 앞에 한치의 앞날도 예견하지 못하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우리 민족이 시름하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희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1922년 남궁억은 실의에 빠진 이 민족에게 이렇게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봄 돌아와 밭 갈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누구가 대령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길선주와 김익두는 암흑 속에 헤매는 민중들에게 대부흥운동을 통해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주기철 목사 박형룡 박사 김재준 목사가 그들을 통해 주님을 만났고, 기실 그리스도인 치고 그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민족의 수난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김양선 목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들은 한국교회에 새 빛과 희망을 주었고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대 정신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언제나 진리는 승리한다고 외쳐서 우리의 각성을 새롭게 하여 주었다. 그들에게서 비로소 희망에 굽힌 절망을 보았고 모진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멸의 등불을 보았다.”(김양선, 한국기독교사연구, 125)
교회는 겨레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동참했습니다. 언제나 겨레와 함께 했습니다. 때문에 누구 하나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분명 한국은 기독교를 빼고 근대화를 논할 수 없습니다. 근대 서양교육, 서양의학, 민주주의, 자본주의, 신분타파, 여권신장, 최저의 문맹률, 오늘날의 한국경제발전과 국제화에서 한국교회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보디발 장군의 집에, 바로 왕궁에 축복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 때문에 이 민족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의 발전은 분명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국의 근대 경제 발전과 민주화 발전에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이 민간 대사 역할을 했고, 국위 선양을 했으며, 한국을 홍보하는 채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놀라운 교회 성장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과연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한국사회와 민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 개인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본연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때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살아 있는 한 한국은 저력이 있습니다. 본래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근면한 민족입니다. 또 성실합니다.

그런데 최근 너무 한국사회가 변하고 있습니다. 감성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연예인들이 자라는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고,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파률리즘에 빠졌으며, 아름다움이 우상을 넘어 권력화되고 있습니다. 성형 수술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형공화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키작고 못 생긴 사람들은 사회의 루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보톡스를 맞고 1주일의 집무를 뒤로 하고 쌍커플 수술을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좋은 것입니다. 어쩌면 본능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그 방향으로 흘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피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감성”과 이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면에 감추어진 영원한 보화보다 잠깐 지나면 꽃처럼 시들어 버릴 외모에 목숨을 거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감성이 지배하는 오늘 우리 시대는 옳고 그름의 시대가 아닌 좋고 싫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리판단을 통해 사회를 읽은 수 있는 안목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감성이 중요하지만 감성과 이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맺는 말

오늘 욥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우리 민족에 적용하십시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대한민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신다.” 우리 민족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국가관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민족을 축복하셔야 미래가 밝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민족의 죄악을 놓고 철저하게 통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청교도 공동체가 그것을 실천했고, 초기 한국교회도 그랬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민족의 죄악을 가슴에 품고 철저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에서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한 나라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우리 민족이 돌아갈 때 두손들어 이 민족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초대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아시아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 민족을 귀하게 사용하시기 위해 영적으로 우리 민족을 택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선교사들 가운데서 강했습니다. 실제로 초기 선교사들은 조선(Chosen)이라는 말은 선택이라는 말이고 앞에 the 붙어 선택된 민족이라고 불렀습니다. 갈급한 심령처럼 복음을 받고 사회와 민족적 책임의식을 가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택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연상한 것입니다. 아시아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하나님이 이 민족을 택하셨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은 다름 아닌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나라 사랑과 영적인 선민의식이 한국교회에 그대로 심어진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들은 사회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그 옛날의 초대 한국교회의 영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나라 사랑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입니다. 나라 사랑이란 민족 사랑을 말합니다. 지금 한국민족은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민족 전체를 염두에 두기보다 당리당략이 우선이고, 지역감정에 막혀 참된 민족애를 찾기 힘든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우리는 당리당략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민족애를 가지고 민족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도자들을 찾고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저는 주기철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그가 신사참배에 맞서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갖고 있는 민족정신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신학교 시절 평양신학교는 지역별로 기숙사가 따로 있었습니다. 작은 땅 덩어리에다 지역감정이 강한 한국민족인데 신학교 마저 기숙사를 지역별로 따로 운영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학교에 건의해 지역 별 기숙사를 폐지하고 지역을 넘어 함께 기숙하는 방식으로 기숙사 제도를 바꾸었습니다.

다윗은 역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지역적으로 남북이 대치될 수 있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통일 시대에 맞게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김준곤은 호남 출신이지만 지역을 넘어 민족복음화를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이 민족 가운데 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오기를 사모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어떻습니까? 그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이 속한 합동교단만 아니라 전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갱신을 온 몸으로 실천했습니다. 자신의 교회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가슴에 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 옛날의 영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각 개인이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가 유기적인 관계라는 인식을 갖고 사회적 민족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그리스도인, 실천이 없는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초대 한국교회의 위대한 힘은 실천에 있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행동으로 복음을 실천했습니다. 백낙준 박사가 자신의 예일대학교 학위 논문 한국개신교사(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 232쪽에서 초기 선교사들은 행동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preaching by deed")고 증언합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보여준 사랑과 상호존중의 건전한 가정생활은 사람들의 부러운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초기 선교사들은 1886년 여름 국내에 코레라가 만연할 때에 봉사를 통하여 웅변적인 설교를 하였다. 이 전염병은 서울안의 빈민층과 서울근처 각 동네에 꽉 퍼졌다. ...소수의 개척 선교사들은 이 병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가장 희생적인 봉사를 수행하였다.”(백낙준, 한국개신교사, 163)

다시 10년 후 1895년 청일전쟁 기간 다시 코레라가 만연했을 때도 아비슨 선교사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이 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초대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헌신과 봉사정신을 한국교회가 잊지 말고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말로는 화려한데 실천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각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로만이 아닌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행동이 없는 구호만의 종교로 점점 전락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주의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고, 한국교회 보수주의 역시 보수신앙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지만 구호만 화려합니다. 보수신학자들이 지도자들 가운데 정작 대가를 지불하는 데는 인색한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고 말로만 외치는 보수주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보수주의는 사이비입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가 기독교에 거는 기대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방송의 한 기자가 제게 한 말입니다. 언론들이 목회자들의 타락과 성적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늗 데도 말입니다. 하도 궁금해서 어느 방송 기자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중들은 어련이 그렇지만 목사들에게는 더 높은 윤리기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는 말을 제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복 65주년 강제 합병 100주년을 맞는 지금 청교도 공동체와 초대교회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저는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려고 합니다.(물론 제가 새롭게 제안하는 것도 저만의 새로운 독자적 제안도 아닙니다. 그저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교훈들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한나라의 흥망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민족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창대케 하실 것입니다. 통일의 그날을 앞당겨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일생을 사역했던 예레미야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예레미야 18 6-10)

둘째, 청교도들처럼 개인과 사회, 개인과 민족을 유기적 관계로 이해하고 사회와 민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민족의 수난을 나의 수난으로 인식하고 사회와 민족의 아픔과 수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 모두가 사회적 민족적 책임의식을 깊이 깨닫고 삶 속에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최근 저는 5년 전 어느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분(황의선 원사)이 30년 동안 417회 헌혈해 16만 6800cc의 피를 기증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52세의 나이인데도 그는 매달 두 번씩 헌혈에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건강이 허락한 하는 한 헌혈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저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믿지 않는 자들도 사회와 민족적 책임을 이렇게 열심히 감당하는데 하물며 믿는 사람들인 우리들이 도전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역시 선한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산동산교회가 동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또한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한동대학교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많은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민족적 책임의 귀한 모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영광을 받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교회적인 차원에서 교단적인 차원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서든 우리는 사회적 민족적 책임을 구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민족이 되도록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자의식을 가지고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80년대만 해도 기도원에는 젊은이들이 북적 거렸습니다. 그들 중의 상당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루 이틀 삼일 혹은 1주일씩 금식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공식적인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 강단 마다 철야기도회 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도가 요즘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개인과 교회와 가정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넷째, 목회자들은 이런 사회적 민족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기독교 부모들은 가정에서 그런 방향에서 가정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처럼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연합으로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갖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격려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될 때 신명기의 약속처럼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세계 민족위에 창대케 하실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신명기 28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명기 28 1-19, 2: 9)

교회가 사회적 민족적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말라기의 약속이 그대로 우리 민족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라기 1 11)

저는 우리 민족이 청교도와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해 외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국교회와 민족을 향해 여전히 이렇게 외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사진출처: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박용규 교수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0.08.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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