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거목(巨木), 옥한흠 목사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거목(巨木), 옥한흠 목사

늘 성령충만을 사모했던 옥한흠 목사/사진제공: 사랑의교회(국제제자훈련원)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게재원고]
“나는 여러분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2003년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통해 한국교계와 한국사회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옥한흠 목사가 2010년 9월 2일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교회는 지난 해 김준곤 목사에 이어 또 한명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마치 암흑기에 태어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데 쓰임 받았던 모세처럼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절정에 달하던 1938년 12월 5일 경남 거제에서 출생한 옥한흠은 한국교회 영적갱신과 개혁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불태웠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주신 지도자였다. 그는 한국교회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제자훈련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갱신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같은 꿈을 품은 수많은 후배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하용조 목사가 “한국교회가 낳은 가장 탁월한 목회자 중 한 분”이라고 예찬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니었다. 일생동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자신과 가족을 뒤로 하고 ‘한 사람의 제자훈련 철학’을 가지고 자신이 섬겼던 사랑의교회를 넘어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했던 옥한흠은 한국교회의 큰 별이었고, 한국교회가 배출한 위대한 개혁자였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옥한흠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현대 한국교회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첫째, 지난 1978년 사랑의교회를 창립해 짧은 기간에 그 교회를 국내외 제자훈련의 모델, 복음주의 모델, 한국교회의 모델로 발전시켰다. 옥한흠은 사랑의교회를 통해 형식적인 복음주의 교회가 아닌 신앙고백적 복음주의의 가능성을 현시하며 변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복음을 너무도 효과적으로 제시했다. 복음의 순수성을 계승하면서도 복음전파의 사명을 소홀이 하지 않았고 복음의 대 사회적 문화적 민족적 선교적 책임을 구현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교회는 이동원의 말대로 “본격적인 복음주의 교회상을 한국교회에 제시한 하나의 견고한 구체적인 샘플”이었다.

둘째, 제자훈련의 저변확대를 통해 한국교회를 깨우는 사역이다.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를 깨워 사랑의교회를 제자훈련목회의 모델로 만든 다음 그 모델을 한국교회에 공개하며 한국교회 전체를 깨우는 작업을 단행 한 것이다. 옥한흠은 성도교회 대학부 지도자 시절부터 교회에 접목시키기 시작한 후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훈련에 올인 했다. 지난 30년간 옥한흠은 일관되게 이 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옥한흠의 리더십 아래 국제제자훈련원의 칼 세미나를 이수한 목회자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1만 8,000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통해 제자훈련을 이수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수 없이 배출되었다. 7개 국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는 가장 오랫동안 팔리며 제자훈련을 통한 한국교회 영적갱신의 가장 견고한 텍스트로 자리 잡았다. 목회자 중심의 한국교회에 잠자는 평신도를 깨워 교회의 주체이자 목회의 동역자로 삼는 혁명을 이룩했다. 그 결과 한국의 교회 성장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양적인 성장이 중시되던 한국교회에 질적 성장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셋째, 한국교회연합운동이다. 한기총과 한국기독교연합회로 양분된 한국교회 상황에서 옥한흠은 한경직 이후 한국교회연합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연합운동에 미온 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예장합동 출신으로 보수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며 전체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진보와 보수를 넘어 연합운동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를 깨워야 한다는 거룩한 사명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깨우는 그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교갱협을 결성하고 다시 한목협과 교단장협을 결성하여 전체 한국교회의 갱신과 일치 연합을 위해 자신의 혼을 불태운 것이다.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김명혁, 이종윤, 손봉호, 홍정길 등과 강남신학강좌를 개설했고, 예장합동교단의 영적갱신과 개혁을 위해 1996년 교갱협을 결성하고 1998년에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개혁기구로 자리 잡은 한목협과 이어 2001년 교단장협의회 결성을 견인하며 한기총과 KNCC로 양분된 한국교회의 양극화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들 연합단체들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선봉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와 화합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2004년 이후 한기총과 KNCC가 연합으로 드리고 있는 부활절연합예배, 이 땅에 진정한 부흥을 사모하며 한국 개신교 전체가 동참한 2007년 한국교회대부흥 100주년 기념예배 성사 배후에는 옥한흠의 노력이 지대했다.

넷째, 한국교회 영적갱신과 영적각성운동이다. 제자훈련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제자훈련이 영적대각성전도집회와 병행하여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에 접목시켜 큰 성공을 거둔 ‘영적대각성전도집회’는 이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한국교회의 새로운 갱신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옥한흠은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교회의 부흥을 그토록 사모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말씀 중심의 제자훈련과 성령의 역동성을 축으로 하는 영적대각성전도집회 두 개의 기둥을 자신의 사역의 중심에 놓았던 옥한흠은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의 제자들, 종교개혁자 존 칼빈, 미국 제 1차 대각성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를 너무도 빼 닮았다.

마지막으로 근대복음주의운동의 저변확대의 기여다. 근대복음주의운동은 성경의 권위, 복음전파, 영적각성, 사회적 문화적 책임, 연합운동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옥한흠과 근대복음주의 정신은 통하는 것이 많다. 그가 설립한 사랑의교회, 일생동안 흔들리지 않고 추진해온 제자훈련, 연합운동, 대각성전도집회, 사회복지와 대 사회적 책임, 해외선교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사역은 근대 한국복음주의운동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는 일생동안 성경의 권위와 개혁주의 신앙에 서서 근대복음주의 운동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개혁파 복음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혁과 연합운동에 앞장섰던 존 칼빈을 연상케 한다.

옥한흠은 기성교회의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히 읽어내는 시대적, 역사적 안목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1986년 제자훈련세미나를 단행한 것이나 10년 후 1996년 교갱협을 결성한 것이나 이를 토대로 1998년 한목협을 창립하고 이어 2001년 교단장협을 결성한 것 등 모두 돌이켜볼 때 조급한 것도 늦은 것도 아닌 아주 시의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읽을 줄 아는 역사적 안목이 있었다.

그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진보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여전히 기성교회의 자식이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그 유산을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마치 맛좋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내듯 변하지 않는 복음을 변하는 시대에 진부하지 않게 전달하는 일에 있어서 그는 유난히 뛰어났다. 그는 고려파 배경에서 성장했으면서도 고려파 사람들에게 찾을 수 있는 근본주의적 잔재들이 없고 합동교단에서 교육을 받고 사역했으면서도 대 연합, 사회적 관심에 누구보다 민감했으며, 그는 박형룡과 박윤선에게서 교육을 받아 성경의 권위를 철저히 신뢰하면서도 그들에게 부족한 역사의식과 사회를 읽어내는 혜안이 뚜렷했다. 개혁파 복음주의 전통에 서서 대 사회적 문화적 민족적 책임과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그는 한경직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나라를 확장해 나가셨겠지만 만약 옥한흠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세대교체, 부활절연합예배, 2007년 한국교회대부흥운동 100주년기념대성회,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를 비롯한 최근 10년간의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발자취는 아마 성사되지 못했거나 이루어졌다 해도 그 의미가 상당히 축소되었을 것이다. 옥한흠, 그는 근대 한국교회 영적갱신과 개혁을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특별한 지도자였다. 일생동안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자신의 온 생애를 불태웠던 옥한흠 그는 확실히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거목(巨木)이었다.(*)

박용규 목사(총신대 역사신학 교수)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0.09.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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