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치 참여의 올바른 방식

이은선교수 (안양대 신학대학원장)

최근에 기독교계의 중진목사들을 중심으로 ‘3000 대교회 초청 기독교지도자 포럼’을 개회하여 내년 총선에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정당을 조직하여 선거에 참여하는 방식이 다시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목회자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사례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 이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세속권력까지 장악하여 지배하였으나, 그 절대화된 권력이 부패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하여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다. 국가가 교회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경우는 영국의 성공회이다. 영국 교회의 머리를 국왕이라고 하여 국왕이 교회 정치를 지배하였고, 그러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청교도혁명이 일어났다. 교회와 국가를 완전히 분리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재세례파였다. 재세례파들은 교회가 국가의 권력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하여 군대도 가지 않고 공무원도 되지 않았으며 맹세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양 극단 사이에서 루터와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영역을 구분하고자 하였다. 물론 루터는 국가와 교회 사이의 적극적인 관계 설정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교회의 양립적인 관계를 설정하여, 교회는 국가의 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고 오히려 복종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래서 비판적인 학자들은 루터파 교회가 히틀러가 600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에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였고 따라갔던 과오를 범하였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해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하되,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예언자적인 위치에 서기를 원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할 때 국가의 실제적인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제네바 시의회가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도록 예언자적인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유럽 국가들은 종교개혁의 시기까지도 교회와 국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특정 교파를 지원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하여 헌법을 제정할 때 이미 미국에는 다양한 교파들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는 유럽과 같이 특정 교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정교분리를 시행하였다. 이때부터 현대 국가들에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 국가가 특정교회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들도 국가의 권력에 의존하여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되,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의 정치참여 원리를 교육하여 건전한 정치활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의 정치에서의 실현의 원리를 교회에서 교육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건강한 정치참여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갈 때에 성경적인 원리에서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이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이러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가지 비난을 받고 있다. 앞으로도 교회는 정치권력 앞에서 이러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바르게 할 것을 항상 요청받고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영혼 구원을 중심으로 한 특별은총의 영역의 담당자들이요, 세상 정치는 일반은총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이러한 양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일반은총에 속하는 세상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한국사회는 목회자들이 영적인 깊이를 가지고 이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러한 영적 차원에서 한국사회를 섬겨주기를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
한국사회 안에 안티 기독교 세력이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다. 이러한 안티기독교 세력이 퍼져 가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인 권위의 실추라고 판단된다. 한국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정당 조직을 통한 정치참여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권력까지 탐하는 추한 모습을 드러내 더욱더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키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추락시킬까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세상의 빛이 되는 방법을 깊이 성찰할 때이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1.09.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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