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이 움트는 길목

한철희 교수 (나사렛대학교 기독교교육학)


부흥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서려있다. 창조의 아침, 태고의 공간을 여시던 숨결이요, 생명의 말씀을 조성하셨던 거룩한 호흡이다(디모데후서 3:16). 우주에 충일하던 그 건강한 생명력은 현대를 분주히 살고 있는 우리를 여전히 감싸고 계신다. 성경은 거룩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자에게만 무한한 영적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 말씀(‘다바르’)의 숨결이 부흥에 불을 지핀다. 가물어 메마른 땅을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뿌리를 자극하여 생명의 싹이 트도록 복을 주신다(시편 65:10). 말씀의 선혈이 실핏줄 타고 구석구석 흐르는 날 부흥의 여명은 기적처럼 우리의 눈앞에서 동터 올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기둥 늘어선 솔로몬 행각 위에서 베드로의 세 번째 설교가 선포되었다. “너희가 회개하고 용서 받으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사도행전 3장19절). 상쾌한 카이로스의 순간이라! 유쾌함(아나푸쉬크시스)의 나날이라! 여름 소낙비 그치고 햇살이 다시 돋는 숲속, 그 청아하고 상큼한 공기처럼 우리 영혼(푸쉬케)이 신선한 생명력으로 다시 깨어나게 될 것이다. 바로 부흥이 움트는 순간이다.

칠흑 같은 밤이 있었다. 성경을 교회에 가두어 두었던 중세의 밤이다. 엄한 교령으로 생명의 말씀은 교직자의 서재에 묶여 있었다. 그 혹독한 어둠 가운데서도 외로이 망루를 지키며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씀의 눈부신 광채를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나사렛 예수가 샤론의 장미이며 빛나는 새벽별임을 통찰한 사람들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왕권만이 진정한 알파와 오메가였다.

그러나 두려운 밤의 침묵은 깊어만 갔다. 황금사슬에 매인 고전어 성경을 백성들의 모국어로 옮길 것인가? 계시를 탈취한 성직자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하나님의 합법적 수신자인 쟁기 잡은 소년들의 손에 들려 줄 것인가? 종국에는 불붙은 장작더미의 열기 위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쉴 것인가?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마침내 옥합은 부서지고 위클리프 번역과 틴데일 번역 성경은 온 유럽에 생명의 향기를 진동시켰다. 베어 진 그루터기 뿌리에 단비가 적시니 영성의 잎새에 새 생명이 움터 올랐다. 천년 중세의 밤은 물러가고 복음과 경건의 아침이 밝아왔다. 루터는 ‘오직 성경’을 외쳤으며,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논증하였고, 웨슬리는 복음을 들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 나섰다.

개신교 신자들은 교권의 중재와 제례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새벽닭의 울음은 언제나 어두움을 몰아내는 신비로운 음향이었던가? 후대 역사가들은 용감한 성경 번역자들을 이름하여 ‘종교개혁의 샛별’이라 하였다. 성경이 없이 부흥은 없었다.

한강 변에 새남터라는 우거진 숲이 있었다. 이곳에 북소리가 울리면 놀란 새들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외방 선교사들의 머리는 모래 위에 선혈을 뿌리며 나뒹굴었다. 150년 후 한 장군 출신 정치인은 맞은 편 강 언덕 여의도에 거대한 광장을 만들었다.

두해가 지나고 외국인 복음전도자 한사람이 찾아 왔다.  빌리 그래함이었다. 모처럼 귀한 설교자를 모셨다기에 교단별로 벽을 쌓고 살아가던 신자들 200만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가 국가의 염원이던 시대였다. 검게 야윈 중년의 얼굴들과 한복을 정성스레 차려입은 진지한 표정들이 12만평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

단상 높이 선 서양목사는 다행히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성경의 능력을 확신했던 설교자였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쏟아냈다. 근대화의 고통과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던 개발도상국의 신자들에게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의 외침은 단순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이 작은 책속에 당신의 해답이 있습니다.”

8월 저녁하늘이 붉게 물들면 시원한 강바람이 새남터를 넘어 불어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숨결이 한국인들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교회들은 연합운동을 서두르고 청년들은 그룹성경공부(GBS)를 시작하였으며 한국교회 양적 성장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1980년대의 제자훈련과 아울러 질적 성숙을 정착시켰다.

성경 말씀은 영적변화와 영성회복의 동력이다. 하나님의 숨결은 부흥이 움트는 시작이며, 한국교회는 아직도 그 청아한 길목에 서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1.12.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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