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의 사도바울 다니엘 로우랜드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1)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  

다니엘 로우랜드의 회심

다니엘 로우랜드 (Daniel Rowland, 1713-1790)는 1713년 웨일즈 판티뷰디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히어포드 문법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세상의 모든 학문에 대해 급속한 진전을 보였으나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18세 때 아버지 죽음 후 존 로우랜드는 아버지 자리를 이어 받았고, 다니엘 로우랜드는 1733년 20세의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고서 형인 존이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을 하게 되었다.

로우랜드는 대다수의 웨일즈 성직자처럼 자기 임무에 태만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과 술 마시는 일에 보내고 있었고, 자신의 사명에 대한 어떤 분명한 소명 없이, 더욱이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사역자로서의 직분을 시작했던 것이다. 로우랜드가 언제, 어떻게 회심을 경험했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로우랜드는 자신이 아무리 설교를 잘하려고 노력해도 자신의 성도들이 퓨 (Pugh)라는 비국교도 사역자에게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깨어난 로우랜드는 탁월하다고 소문이 난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란데비브레피 교회 그리피스 존스 (Griffith Jones) 목사를 찾아갔다. 그날 존스 목사는 큰 회중들에게 설교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한 성직자가 군중 가운데 서서 교만함과 경박한 태도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서 갑자기 설교를 중단하더니 회중들에게 그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제안했다. 그리고 존스는 하나님께서 동료 목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수많은 영혼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가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는 로우랜드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는 그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로우랜드가 목사 안수 후에 경험했던 온전한 회심이었다. 로우랜드는 1735년에 회심하였다.

성찬식 때 능력의 세례를 받은 로우랜드

로우랜드가 회심을 경험하고 난 후에도 4년 동안이나 설교에 자신의 위로나 회중들의 유익을 위해서 율법에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할애 했다. 로우랜드는 란데비브레피 교회에서 그리피스 존스 (Griffith Jones)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하는 설교를 듣고서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지만 그 진리의 능력을 체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다니는 랭게이토 마을의 교회에서 성찬식 예배 중에 함께 낭송할 기도문을 읽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임하여 그를 충만케 했고 “두 배의” 확신을 주셨다.

1735년 다니엘 로우랜드는 하웰 해리스처럼 능력의 세례를 받았다. 로우랜드의 삶과 사역에 완전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놀라운 방법과 능력으로 뜨거운 불을 품은 사람처럼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죄와 사망, 심판, 천국과 지옥이 엄청난 현실임을 발견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과 영혼과 마음을 설교에 완전히 쏟아 부었다.

로우랜드 설교의 주된 특징

교회사를 읽어보면 부흥 뒤에는 꼭 위대한 설교자가 있었다.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다니엘 로우랜드 설교의 독특한 특징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의 모든 메시지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설교 주제는 죄, 지옥,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 구원의 은혜였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을 모든 통로를 통하여 청중들의 심령 속에 깊게 새겨 놓았다.

둘째는 그의 설교는 자신의 생각을 놀라울 만큼 표현해 내는 적절한 언어 사용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간결하고 힘차며 박력 있고 속담식의 문장이나 비유와 예를 끌어 와서 사용하는 일에 능하기 때문에 청중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셋째는 그의 설교는 매우 실제적이고 경험적이다. 그는 죄인들을 회심시키고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면서도 믿는 자들을 경고하고 상담하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을 계속 하였다. 즉 회심자와 비회심자 모두에게 도전과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그는 남다르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네번째는 신선한 사고와 주제에 대한 로우랜드의 남다른 풍성함이다. 그는 평생 배우는 일에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잃지 않았으며 설교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엄청난 독서가요, 묵상가였으며 그것을 청중들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었다.

랑게이토에서의 놀라운 부흥

18세기 영적 부흥의 주역인 다니엘 로우랜드는 랑게이토에서 목회하였으며, 1738년에 랑게이토(Llangeitho)에서 놀라운 부흥이 시작되었다. 로우랜드는 갈수록 그리스도의 진리의 충만한 빛의 사람으로 변해 갔고 온전하고 명료하고 균형 잡힌 복음 설교자로 서게 되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웨일즈 지방의 각처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곤 했는데 어떤 이들은 50-60 마일 떨어진 먼 곳에서도 왔다. 로우랜드는 성찬식이 있는 주일에는 1천5백 명, 2천 명, 2천 5백 명의 성찬식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성찬식이 끝나고 돌아갈 때가 되면 그들은 피곤함도 잊은 채 찬송가와 시편을 부르며 다시 되돌아갔다.

어느날 로우랜드는 교구 밖 에스트라드핀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곳 사람들의 심령에 커다란 은혜를 끼쳤다. 30명의 넘는 사람들이 그날 회심하는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청중들의 삶이 그의 설교를 들은 후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웨일즈 전역을 통해서 죄를 점검하고 기독교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되었다. 로우랜드는 수백 명의 영혼들에게 복의 도구가 되었다. 그가 설교하는 교회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사역은 죄인들을 일깨우고 소생시키는 일에서 엄청나게 놀라운 열매를 가져왔다. 로우랜드의 설교를 통하여 웨일즈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 일은 여러 해 동안 계속 되었다. 연이어 계속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고, 로우랜드가 생을 끝마치기까지 그 부흥의 파장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그가 죽은 뒤에도 그 여파는 계속 남아 있었다. 그는 50년 동안 랑게이토에서 설교를 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사도 시대 이후로 그토록 놀라운 영적 성공을 거둔 설교자가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산 속 깊은 교회 집회에 성령의 부으심이 가득함

웨일즈 전 지역을 다니면서 설교하였던 다니엘 로우랜드는 자신의 교구를 벗어나 설교하는 일에도 열정을 다 하였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를 바랐지만 교회가 허락해 주지 않을 때에는 방이나 헛간, 노천에서 설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로우랜드는 영원한 멸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수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교회에서도 여러 번 집회를 가졌다. 웨일즈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어느 한 교회이지만 바로 그 교회에서 다니엘 로우랜드가 설교할 때 천 여명씩 모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통신 시설도 없어 집회에 대한 어떤 홍보나 광고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로우랜드가 설교한다고 하면 어디선가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곤 했다. 이러한 일들은 오직 성령의 역사였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산골짜기 깊은 교회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것이다. 부흥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는 절대적임을 깨달을 수 있다.

18세기 웨일즈 부흥의 요인 3가지

첫째,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임재하심이다. 사람의 노력이나 계획보다는 하나님이 직접 웨일즈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신 것이다. 그래서 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둘째, 하웰 해리스나 다니엘 로우랜드 두 사람 모두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칼빈주의적 교리와 종교 개혁자들의 교리와 17세기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교리를 붙잡고 있었다. 이 두 사람 모두 바른 교리에 충실했고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늘 바른 교리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하웰 해리스나 다니엘 로우랜드 두 사람 모두 다 영혼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죄인들을 향한 뜨거운 불타는 열정,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미지근하지 않았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웨일즈에는 위대한 사람이며 위대한 설교자가 두 사람-다니엘 로우랜드와 하웰 해리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을 통하여 웨일즈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뜨거운 불을 품은 설교자 로우랜드의 임종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웨일즈 부흥을 경험하고 있던 로우랜드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30년 동안 오로지 영국 국교회 목사로서 신실하게 교회를 섬겼던 그가 1763년 국교회로 부터 축출을 당한 것이다. 단지 너무 지나친 열정을 품었다는 것과 국교회의 시기 때문이었다. 성 다윗 교회 주교는 다니엘 로우랜드의 여러 부정 행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의 비난과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그의 직분을 박탈한다는 명령서를 내렸다. 어떤 사람이 로우랜드를 찾아와서 주교가 보낸 통지서를 건네주었다. 그때 로우랜드 목사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 막 단상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더 높은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면서 교우들에게 지금 교회를 나가 달라고 말하였다. 그날 밖에서 오전 예배를 드리는데 그들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흐느끼고 있었으며 로우랜드의 설교는 이제껏 어느 설교보다도 사람들의 심령을 깊이 파고드는 은혜로운 설교였다. 더 이상 국교회의 상위 성직자들로부터 시달림이나 핍박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크게 쓰임 받는 은혜를 누리다가 랑게이토 교구에서 마침내 1790년 10월 16일 77세의 나이로 풍성한 삶을 마쳤다. 그는 자주 라틴어로 웨슬리가 임종 때 했던 것과 똑 같은 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다. 웨일즈에서 나타난 가장 빛나는 별 로우랜드는 평안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우랜드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영혼 구원을 위해 뜨거운 열정과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불꽃처럼 타올랐던 로우랜드는 설교 전체를 통해서 복음의 영광스러운 진리를 적용하고 강조하였다. 그 당시 로우랜드를 능가하는 설교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위대한 설교자 휫필드도 로우랜드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로우랜드의 사역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가장 놀라운 요소는 바로 그의 설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그의 능력있는 설교를 통하여 웨일즈에 부흥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로우랜드의 중요성은 부흥에 있어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며

오늘날 교회에서는 설교의 권위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설교의 영광을 찾아 보기 힘들다. 웨일즈의 사도바울 로우랜드 처럼 설교의 권위를 높이고 설교에 목숨을 건 위대한 설교자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흥이다. 18세기 웨일즈의 사도 바울 로우랜드와 같은 위대한 설교자가 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부흥을 갈망하는 교회에 로우랜드와 같은 불을 품은 설교자가 나와야 한다. 설교가 살아날 때 이 땅에 참된 부흥이 다시 임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 로우랜드와 같은 위대한 설교자를 통하여 조국 교회 부흥, 유럽교회 부흥, 온 열방의 교회아 신자들의 메마른 심령에 또 다른 부흥이 일어날 것을 소망한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4.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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