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은 진정한 의사였다"

신경하 감독, 셔우드 홀 기념 포럼에서 격려사

뉴스파워 정순주 기자  

강원도 고성군(군수 황종국)는 23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고성군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과 관련해 닥터 셔우드 홀의 업적과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이날 포럼에는 세계감리교협의회 공동회장 신경하 목사(감리교 직전 감독회장), 유진벨 선교사의 후손 인요한 박사, 고성군기독교연합회장 전영섭 목사, 닥터 셔우드 홀의 책 「조선회상」의 번역자 김동열, 굿피플 의사회 회장 최경숙, 문예창작학회 박덕규 교수, 서울대 우한용 교수, 가수 진미령, 이시스터즈 등 고성군과 교계 관련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신경하 목사는 “홀 선교사님의 일가족 전체가 대를 이어 세계 선교 역사에서 기념비 같은 업적을 세웠다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결핵치료를 위해 의사의 헌신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앞렸고, 패배주의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만국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진정한 의사였다”고 전했다. 또한 “오늘날 남을 위한 봉사와 헌신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모습이다”며, “고통과 가난 속에 있는 인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이 하나되는 평화통일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닥터셔우드홀포럼에서 결핵제로본부 김성진 부총재는 “내가 만난 닥터 셔우드 홀과 의료선교사업”이라는 발제에서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을 심어준 분, 교육의료 분야를 바로잡은 위대한 선교사”로 닥터 홀을 회상했다. 

이어 닥터 셔우드 홀의 출생부터 그의 업적을 발표했다. 그는 “닥터 셔우드 홀이해주 구세요양원을 설립하고 한국최초 현대적 결핵요양원을 설립, 당시 한국에 창궐하던 결핵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결핵환자 치료에 많은 비용을 충당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당시 결핵환자 진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덴마크에서 시작된 ‘크리스마스 씰’을 한국최초로 발행해 한국의 결핵퇴치 기금 모금의 방법을 제시했다”고 닥터 홀에 대해 설명했다.

닥터 홀은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당한 후, 1984년 대한결핵협회의 공식초청을 받고 서울에 도착했다. 김 부총재는 당시 닥터 홀이 “91살 생일을 한국에서 맞이해 감격스럽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표현한 닥터 홀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한국정부는 셔우드 홀에 국민훈장 모란 장을, 서울특별시에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이은일 교수가 “푸른 눈의 성자 – 닥터 셔우드 홀의 업적과 봉사와 헌신의 삶”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대부분 화진포와 관련해 사진자료를 통해 발표했는데 “1945년 이후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 1948년부터 김일성 가족들이 이용하면서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다”며, “1938년 건 후, 75년이 지난 2013년 이후 기독교 성지로 다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셔우드 홀의 어머니 로제타 홀에 관련한 설명도 이어갔는데 로제타 홀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서양여인, 최초의 서양과부, 최초로 맹인교육 시작, 최초로 여자의사를 양성했다”고 밝히며, “1891년부터 1933년의 가장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서 사역했으며, 미국에서 85세로 죽을 때까지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로제타홀 클럽을 다시 만들면서 굉장한 경험을 했다”며, “창립총회 당일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가 쓴 셔우드 홀 기념비 제작 관련 칼럼의 대부분이 로제타 홀 선교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다시 나타내신다”고 감격을 전했다.

한편, 강원도 고성 황종국 군수는 “닥터 셔우드 홀의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남한과 북한이 함께 나누고 이어받는 인도주의적 의료지원 사업인 ‘북한 결핵 퇴치 사업’ 추진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4.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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