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임한 성령의 불길(1907년 4월)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부흥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강하게 일고 있는 가운데 1907년  대구 겨울 사경회에서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재령 주재 북장로교 선교사 헌트가 부흥을 불을 대구로 가지고 온 것이다.

부흥을 사모하는 수백 명이 통성으로 기도를 계속했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모인 이들 가운데 임했다. 그 현장에 있던 맥팔랜드는 3월 3일자 편지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죄의 실체를 깊이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 사경회는 그가 지금까지 주관했던 사경회 가운데 가장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사경회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브루엔도 1907년 4월호 코리아 미션 필드에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나는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결코 전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지금 나는 내 옆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겨울 남자 사경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는 다시 대구 시내 중심 교회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대구 시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07년 한 해는 “선교사들과 한국인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대단한 영적 축복이 임했던 한 해였다.”

대구 지역의 경우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급신장을 기록한 1906년에 비해서도 세례교인이 235명에서 564명으로 140%가, 학습교인은 1,318명에서 2,796명으로 112%가, 그리고 등록교인은 3,876명에서 6,371명으로 64%가 성장했다.

대구 선교부 현장에서 이와 같은 놀라운 성장을 목도한 북장로교 선교사 어드만(W. C. Eerdman)이 1907년 5월 24일 미선교부에 보낸 편지에서 “여기 선교 사역의 대단한 진보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가장 경이적인 하나님의 역사의 장면(the scene of the most marvelous working of God)이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불과 수개월 만에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운동이 대구 지역에까지 놀랍게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생명의말씀사, 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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