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07월 19일

1945년 07월 19일/일본 기독교 조선교단 조직              

 

해방을 불과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1945년 7월 19일,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장로교와 감리교는 물론 한국의 모든 교파 교회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소위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라는 이름 하에 통합되었다.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설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1943년 들어 각 교단은 일본의 압력과 회유로 교단의 응집력이 모두 파괴되어 더 이상 예전의 결집된 힘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943년 5월 장로교는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감리교도 같은 해 8월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으로 교단명이 개칭되었다. 그해 침례교의 전신 동아기독교, 성결교, 안식교가 재림사상을 이유로 강제 해산되었다.

일제는 조선 통치에 방해되는 국내의 교단들과 교회 그리고 목회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교회들을 일본의 친일화 작업에 참여시켰다. 그 결과 급기야는 해방을 눈앞에 둔 1945년 7월, 장로교 대표 27명, 감리교 대표 21명, 구세군 대표 6명 그리고 5개 소교파 대표  1명이 모여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조직을 발표하는 몰역사적인 일이 발생하고만 것이다.

이 교단의 초대총리는 일찍이 함흥성경학교에서 진보적인 성경관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관식 목사가 선임되었다. 이상하게도,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이들이나 친일화 작업에 앞장섰던 인물들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자유주의 혹은 진보주의 신학사상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들이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7.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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