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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ulbert, Homer Bezaleel(1863-1949, M) / Hulbert, H. B. (Mrs.)
 작성자 : 손아론  2017-06-26 14:19:33   조회: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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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Hulbert, Homer Bezaleel / 헐버트/ 한국명: 홀법
2. 생몰연도: 1863.1.26-1949.8.5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북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5. 연표
1863.1.26 미국 버몬트주 출생
1884 다트머스(Dartmouth)대학 졸업,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입학
1886 유니온신학교 2학년 때 한국에 오기 위해 학업중단
1886.7.4 벙커(D.A. Bunker), 길모어(G.W. Gilmore) 부부와 함께 내한
1886.7.5 육영공원의 교사, 같은 해 가을 학생 35명으로 개교
1886.9.23 육영공원 개원후 교사로 육영공원 제정
1888.9.18 메이 한나(May B. Hanna)와 결혼(New York시 35번가 Grace 장로교회에서)
1889 Seoul Union 클럽(스포츠클럽:테니스)을 만듦
1889 육영공원의 교재용으로 지리총서를 발간
1891 간이 천문지리서 <<ᄉᆞ민필지>> 순한글판으로 발행
1891.12 육영공원 축소 등의 문제로 교사직 사임후 귀국
1892 남군사학교(Putnam Miltary Academy, Ohio) 운영책임자
1893.9 미감리회 선교사로 재내한, 삼문출판사 운영책임자로 문서선교
한국학 연구지 의 인쇄, 운영 맡음
1893-1897 한국사를 계속하여 공부하면서 언론출판업에 적극적으로 종사
1893 볼드윈교회(현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1895 영문월간지 “Korean Repository"의 운영책임자(Business Manager)
1895.11.28 출생문사건에 관여
1896 구전만으로 불려왔던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서양식 악보로 채보함
1895-1897 이승만, 서재필, 윤치호 등을 만나게 되며 독립협회, 교육, 언론, 개방등 문명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전개함
1896 서재필을 도와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 창간
1897 정부가 세운 관립학교 교장에 취임-고종의 환심
1897-1905 고종황제의 후원아래 교육창달에 힘쓰며 교과서 시스템을 개발, “헐버트 교육 시리즈” 프로그램하에서 “초학지지”등 교과서를 출판
1898 고종황제로부터 교육최고책임자로 임명(Superintendent of Education)
1898 "The Mongols in Korea"를 저술
1898 "Times"지 특파원
1898 “Royal Geographical Society" 회원
1899 한국 YMCA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
1901 창간, 를 통해 한국을 전세계에 알렸고 구독나라를 19개국까지 넓힘(1906년까지 운영), 연구와 문필활동
1901-1904 한국사에 관한 각종 연구논문을 에 4년에 걸쳐 기고
1903. 한국 YMCA 초대 회장에 선출, “대동기년”이라는 조선왕조 역사서 저술,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교사
1903-1905 “AP" 통신 특파원
1905 영어로 된 최초의 역사서 “한국(History of Korea)”를 출판
1905 고종의 밀사로 워싱턴에 파송, 미 대통령은 면담 묵살
1905.6 한국의 역사, 풍물 등이 포함된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를 출판
1906.6 내한, 1907.4 헤이그에서 세 밀사의 활동 후원
1907.5.8 미국의 소환형식으로 한국을 떠남
프랑스에서 YMCA운동 전개후 귀국, 매사추세츠주에 거주
1911 스프링필드 훼이스(Faith) 회중교회에서 목사 안수
1909-1945 미국 전역과 전세계에 걸쳐 초토쿠어(Chautauqua) 및 YMCA를 포함한 각종 회의와 강좌에서 조선의 독립을 역설
1919 미국상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
1942 이승만박사와 함께 워싱톤에서 열린 한국자유대회(Korea Liberty Conference)에 참석
1948 아내 메이 한나 별세
1949.8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
1949.8.5 여독으로 서울 위생병원에서 사망, 8월 11일에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 양화진 안장
1950.3.1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The Republic's Order of Taeguk)추서
1999.8.5 헐버트박사 서거 50주기 추모식에서 김대중 대통령 휘호를 받아 50년 동안 비어있던 묘비명을 각인, 별도의 기념비 제막
6. 가족사항
부인: Hulbert, H. B.


II. 선교사 소개: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1. 한국에 온 교육자
미 감리회 선교사, 목사, 교육자, 외교 활동가, 문필가. 한국명 홀법 혹은 할보.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 주에서 회중교회 목사이자 미들버리(Middlebury)대학 학장이던 헐버트(Calvin butler Hulbert)의 차남으로 출생. 그의 모친 (Mary Woodward Hulbert)은 다트머스(Dartmouth)대학 창설자 (E.Wheelock)의 후예로 그녀의 부친은 인도 선교사였다. 이같은 기독교적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다트머스 대학을 거쳐 1884년 유니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한국정부에서는 국립으로 육영공원을 설립하고 그 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미국 국무성에 요청하였는데 당시 국무성 교육 구장 이튼이 다트머스 대학 동창인 헐버트의 부친에게 유니언 신학교에 재학 중인 두 아들 중 하나를 교사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문의하여 이에 형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그가 교사로 선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초빙교사 벙커(D. A. Bunker). 길모어(G. W. Gilmore)와 함께 1886년 7월 4일 내한하였다.

2. 육영공원의 운영과 저술활동
1886년 9월23일 개원한 육영공원에서 그가 한 첫 사업은 「육영공원설학절목」을 제정하는 일이었다. 이는 육영공원의 운영과 교육내용 및 방법에 대한 규정으로 신식학제를 갖춘 비교적 손색없는 규칙이었다. 그를 비롯한 교사들은 영어 역사 자연과학 지리 수학 등 근대적인 서양학문을 가르쳤고 학생들도 현직 관리와 재능이 있는 선비들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호응이 높았다. 특히 학생들이 세계지리에 관심을 보이자 헐버트는 1891년 간이 천문지리서의 성격을 갖춘 《사민필지》를 순 한글판으로 냈다.
《사민필지》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헐버트박사는 교과서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첫번째로 세계지도를 만들고 각국의 정부형태, 산업, 교육, 종교, 군사 등을 포함시킨 일종의 사회, 지도 백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1889년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색상을 넣은 지리부도를 만들어 교과서로 사용하게 된다. 이책은 1889년 또는 그 이전부터 준비가 되어 보완을 거쳐 사민필지라는 제목으로 1891년 출간하게 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한글 교과서가 된다. 기념사업회는 2004년 헐버트의 모교인 미국 동북부 Dartmouth 대학에서 헐버트박사가 자신의 한국 생활 소식을 동창 회보에 전했음을 발견하였다. 1890년 초 동창회보에 사민필지를 곧 출간하게 될 것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 도착한지 3여년 만에 이미 한글을 독파하여 지리부도를 만들어 사민필지의 출판이 준비되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사민필지를 통하여 헐버트박사는 사람들이 세계지리, 각국의 지형, 정치제도, 풍속, 군사력 등을 알기를 바랐으며 출간 후에 상류층을 중심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서방 세계를 제대로 몰랐다가 사민필지를 통하여 새로운 국제적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하와이에 이민단이 갔을 때에도 사민필지가 이민 결행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것은 1892년 이후 기독교계통 학교는 물론 일반학교에서도 필수적인 교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헐버트는 1891년 12월 육영공원축소책에 ᄄᆞ른 급료지급 문제등으로 일단 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가 1893년 9월 목사안수를 받고 미감리회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내한하였다. 이미 육영공원 교사 시절부터 기독교 선교를 측면 지원하였고 성경과 종교서적 번역사업에도 참여한 바있던 그는 정식 선교사로 내한한 후 미감리회에서 운영하는 「삼문출판사」운영의 책임을 지고 문서 선교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가 삼문출판사에 부임한지 9개월 만에 전도지와 종교서적 1백만여 면을 인쇄 반포하였으며 운영을 자급자족할 수준에 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또 삼문출판사에서 1892년부터 펴내기 시작한 <코리안레포지터리>란 영문 한국한 연구지 인쇄와 운영도 맡았고 이를 통해 한구의 영사 풍속 언어 등에 관한 자신의 연구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고종의 환심을 사게 되어 1897년에는 새로 정부가 세운 관립학교 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1901년부터는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를 창간, 그 편집을 맡으면서 보다 전문적인 한국한 연구지로 꾸며 나갔고 계속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이같은 연구와 문필활동을 통해 그는 어느 선교사 보다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더욱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고 실제적인 행동의 개입에 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3. 정치참여
그의 구체적 정치참여는 1895년 11월 28일 국왕탈권 미수사건인 춘생문사건을 통해 이루어졌다. 민비시해사건(1894년) 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고종은 외국 선교사들을 항상 주변에 둠으로써 보호받으려고 했다. 이때 헐버트를 비롯하여 존스, 게일, 언더우드, 에비슨 등이 교대로 고종을 호위하였는데 이같은 분위기에서 친미 친로파가 주도하여 국왕을 춘생문을 통해 궁궐 밖으로 모시려했던 춘생문사건에 관련된 것이다. 한국의 정치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던 헐버트는 상류층 청년지사들을 당시 교회가 수렴할 수 없었음을 주시하여 이들 유능한 청년들에게 근대적인 사회개혁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에로 접근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착안해 낸 것이 곧 YMCA운동이었다. 즉 YMCA를 한국에도 설치, 이를 통해 청년들의 의식을 개조하고 이 운동을 사회운동의 성격을 띤 청년운동으로 발전시키려했던 그의 입장은 이 운동을 순수 신앙운동으로 언더우드의 입장과 거리가 있어 초창기 YMCA운동에 혼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의 YMCA운동은 헐버트의 입장대로 방향을 잡게 되었고 창설의 주동적인 역할을 그가 감당하였으며 1903년 한국 YMCA(당시 활성기독청년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4. 밀사활동과 일제의 추방
한편 1905년 접어들어 카츠라태프트밀약(1905.7), 영일동맹체결(1905.8), 포츠머드조약 등으로 일본의 한국병합이 구체화되자 한국정부는 미국의 도움으로 이러한 일본의 획책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정부에 밀사를 파송키로 하였는데 헐버트가 그 밀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1905년 10월 중순경 비밀리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무력에 의해 강압으로 이로어진 것이라는 사실”과 미국이 한 미 수호조약의 규약에 따라 한국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고종의 친서를 받아 워싱턴에 파송되었다. 그러나 그가 워싱턴에 도착하는 날 11월27일 국내에서는 을사보호조약을 체결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미국은 카츠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한국지배를 묵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던 터라 수차에 거쳐 루즈벨트대통령을 만나려는 헐버트의 시도를 묵살하였다. 워싱턴 밀사활동에서 실패한 그는 1906년 6월 다시 내한하였고 오던 도중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소식을 듣고 이를 고종과 YMCA회원들에게 전해주었다. 이후 그는 헤이그밀사사건에도 관련되어 고종의 신임장을 가지고 헤이그에 파송된 이준 등 세 밀사보다 먼저 헤이그에 가서 이들 세 밀사들의 활동을 후원 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그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태도에 대하여 선교사들 간에 말이 많았으며 특히 일제는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1905년 5월 8일 본국의 소환 형식으로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한국을 떠난 후 그는 프랑스에서 제 1차 세계대전까지 YMCA운동을 전개하였고 그후에는 은퇴하여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머물러 있다가 1949년 8월 이승만대통령의 초청으로 해방된 한국을 방문하였으나, 여독으로 서울 위생병원에 입원하여 8월 5일 별세하였다. 유해는 그의 소원대로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5. 한국학 연구
헐버트는 뛰어난 업적은 무엇보다 그의 폭넓고 깊이 있는 한국한 연구라 하겠다. 그는 한국민족의 기원을 한국의 언어, 풍습, 종교, 유물, 유적을 섭렵하여 문화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밝히고 있다. 특히 우리민족을 북방민족과 남장민족의 두 계통으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로 기자조선 성립시에 그 세력이 남쪽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남해안에는 타종족이 존재했다는 것과 삼한의 도시명이 남방언어의 특징인 다음절이라는 점, 그리고 문신의 풍습이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기자조선 건국을 사실로 전제하고 있는 점이나 인도 드라비다 (Dravida)족 유입설 등은 지나친 비약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착상과 주장이 정당한 자료로 근거로 하고 있다는 데에서 높이 평가될 만하다. 또한 헐버트 자신이 한국민을 접촉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특성을 설명하였다. 먼저 합리적이고 이상주의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 당시 사회상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 즉 진실성과 정의감의 결핍, 공공의식 및 위생관념 부족 등의 단점으로 들기도 한다. 헐버트는 한국사를 주변국가와 구별되고 독립된 개성이 뚜렷한 역사로 인식하고 있었고,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생각했던 게일 등과는 의견을 달리했다. 그러나 역사 발전 단계가 다른 서양의 서술로 인해 사회 경제 문화를 소홀히 다루는 등 서술 방법에는 문제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깊이 연구한 것과 특히 19세기 이후의 부분은 사료로서의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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