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9.22 화 08:23
 
 내한선교사 / Pitts, Laura Mary(1879-1911, SP)
 작성자 : 임준섭  2017-06-26 16:42:40   조회: 1642   
 첨부 : 기말보고서_M0178_2015210188_임준섭.hwp (6831616 Byte) 
 첨부 : 기말보고서_M0178_2015210188_임준섭.pdf (873356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Miss Laura Mary Pitts, R.N. / 로라 매리 피츠
2. 생몰연도: 1879. 5. 2. - 1911. 2. 14.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주 콘코드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Southern Presbyterian U.S.)
4. 한국선교기간: 1910-1911. 2. 14.
5. 연표
1910 가을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전주 예수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의료선교활동
1911. 2. 14 니스벳(Nisbet) 부인과 말을 타고 광주로 가던 중 길을 잃고 진눈깨비 속에서 고생하다 정읍 근처 한국인 민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6. 가족사항
- 부친: C. A. Pitts


II. 로라 메리 피츠 선교사 소개

1. 로라 메리 피츠의 사역
전주에서 활동한 로라 메리 피츠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소속으로 1910년 가을에 한국으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라 메리 피츠는 한국에 도착하여 사역을 시작한 지,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순교하고 만다.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주 콘코드(Concord )에서 태어난 그녀의 나이는 불과 22세에 불과했다. 송현숙 편, 미남장로회 선교사역 편람: 1892-1982 (부천:대한예수교장로회 한서노회, 2012), 435.
비록 피츠 선교사의 사역 기간은 무척 짧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츠 선교사의 사역은 매우 열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숙련된 간호사로써 전주 예수병원에서 사역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언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그림1). 피츠 선교사의 순교는 한국의 여러 선교자들에게도 적잖은 충격과 슬픔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피츠 선교사의 순교는 모두 두 차례에 걸쳐서 ‘The Korea Mission Field’에 부고 형식으로 소개가 된다. 최초 보고된 1911년 4월 호에는 피츠 선교사의 순교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부고에는 피츠 선교사의 신상에 관한 내용과 어떤 징조나 고통없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 그리고 유족과 동료들의 슬픔 등이 담겨 있으며, 대체로 객관적인 정보를 전하고 있다(그림2).

“The sad news has come, of the sudden death of Miss Laura Pitts of Charlotte, N.C., who came out from America only this fall to join the station at Chunju. On Feb. 22nd, during the night, apparently without a pang, certainly without any sign, she passed from this life to the better, and we could not call the news sad, but for the sorrow of those who loved her here, and the great need and loss of the station, who were hoping and depending upon her for so much needed help. The sincerest sympathy is felt and expressed by all for the bereaved relatives and co-workers.” NOTES AND PERSONALS, ‘The Korea Mission Field’ vol 7, no 4, Apr, 1911.


한편, 다음 달 같은 저널에서 5월에 출간한 소식에는 그녀의 사인(死因)이 심장마비(heart failure)이며, 작은 도시 학교의 숙소에서 수면 중 순교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그림3).

“The following brief notice just reached us with regard to Miss Laura May Pitts, one of our missionaries in Chunju, of whose death, Feb. 14, mention was made in our April issue. She was on her way from Chunju ot Kwangju and died in the night of heart failure while she slept in a little Korean village school house. Her home was in Concord, N. C. She came out as a trained nurse to work in the hospital at Chunju. This seemingly irreparable loss to the work in Korea is something which it is impossible for us to understand. Happily it is not necessary that we should understand it. It is especially true in regard to everything connected with our great foreign missionary work that we must work by faith and not by sight. It seems that these losses should only cause us to pray more earnestly that the Lord of the Harvest would thrust forth more laborers into the fields where the harvest is so plenteous and the laborers so few.” NOTES AND PERSONALS, ‘The Korea Mission Field’ vol 7, no 5, May, 1911.


특히 여기에는 그녀의 순교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선교적 의미, 남은 선교사들에게 전하는 의의 등이 담겨 있다. 특히 그녀의 순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손실을 한국 선교 사역 남겼고, 이는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실임을 표현함으로 피츠 선교사의 순교가 무척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녀의 순교가 헛된 것이 아니며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사역해야 하는 것이 해외 선교 사역의 큰 사명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의 주권아래 그들의 선교 사역은 헛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기쁨으로 추수할 때가 올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피츠 선교사는 정규적인 간호사 교육을 받은 숙련된 간호사(trained nurse)였던 것 같다. 그녀가 사역했던 전주 예수병원은 그녀의 입국 보다 앞서 1902년 잉골드(M. D. Ingold)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특히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아주 소중한 병원이었다. 이곳에서 피츠 선교사는 한국인의 육적인 질병은 물론 영적인 질병까지도 예수님의 복음으로 아름답게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츠 선교사의 아름다운 사역과 22살 꽃다운 나이에 하나님 품으로 간 순교의 삶은 한국 기독교의 놀라운 성장과 부흥을 이루는 소중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음에 분명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2. 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와 전주지역 선교, 그리고 전주예수병원
시카고 맥코믹(McCormick) 신학교의 테이트(L. B. Tate: 최의덕)와 유니온 신학교의 레이놀즈(W. D. Reynolds: 이눌서), 전킨(W. M. Junkin: 전위렴)는 1891년 당시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머무르던 언더우드 선교사와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에 유학 중인 한국의 망명객 윤치호가 1891년 10월 미국 내쉬빌 신학생 연합연차대회에서 한국에 대한 강연을 했을 당시 감명을 받아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들은 바로 미국 남장로교 외지선교부 실행위원회에 한국 선교사 지원서를 냈다. 남장로교 외지선교부는 1892년 2월 테이트와 그의 여동생 테이트(Mattie S. Tate)양, 전킨과 그의 아내 메리 레이번(Mary Leyburn), 레이놀즈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Patsy Bolling), 그리고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 양 등 7명을 초대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였으며, 이들을 흔히 미국 남장로교의 ‘7인의 선발대(Seven Pioneers)’라고 부른다.‘7인의 선발대’에 대한 자료는 ‘순천기독교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전시실에서 얻을 수 있으며, 전주 예수병원과 더불어 관련된 자료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하였다; http://m.blog.daum.net/sunghwa/2201130; http://blog.daum.net/sunghwa/2217889


그림 . 전주 예수병원의 모습. 위로부터 1910년대, 1930년대,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다.
이들은 1893년에서 1894년 사이에 한국에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으로 선교활동은 중단되었으며, 1895년 이후부터 다시 선교에 전념하여 특히 전주 지역의 활동이 왕성했다. 이들의 선교활동으로 1907년에 이르러서는 전주 교회가 전주 시내 남문 교회를 분립시키는 한편 1911년 10월에는 전라노회가 전주 서문밖 교회당에서 조직되었다. 1900년대에는 전주와 군산을 중심으로 테이트 남매 선교사와 레이놀즈 선교사 내외, 약방을 설치하고 의료선교사역을 겸했던 해리슨(W. B. Harrison) 선교사, 잉골드 여의사 등의 활약이 현저했다. 특히 전주지역 선교활동은 병원선교로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전주 예수병원이 대표적이다. 전주 예수병원(Jesus Hospital)은 1902년 잉골드(M. D. Ingold) 선교사가 세웠으며 초기에는 주로 여성을 위한 진료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료의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사실상 기원은 1896년 내한한 해리슨(W. B. Harrison) 선교사의 의료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서문밖에 약방을 차리고 경증의 환자들을 돌보고 동시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던 중, 1902년 해리슨 선교사의 주선으로 병원 건물이 정식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일부 기록에는 1898년 11월 3일에 개원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 1가 300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기독교백과사전』 (서울:기독교문사, 2000) 12권, 992-993.
기록에 의하면 1904년 한 해에만 약 1,500여 명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주 예수병원을 통해서 혜택을 입었는지 모른다. 『기독교백과사전』 (서울:기독교문사, 2000) 12권, 993.

현재 전주 예수병원은 전주시 중화산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초창기 예수병원은 구 완산동 시외터미널 옆 골목길로 올라가거나 중화산동과 완산동을 잇는 강당재를 넘어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잉골드 선교사는 전주 성문 밖 은송리(현 완산초등학교 부근)에 조그만 집 한 채를 구입하여 어린이와 여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하였다. 그림 4의 사진에서 위쪽은 1910년대 전주 예수병원의 모습이며, 그 아래로는 1930년대, 그리고 맨 아래 사진은 현재의 전주 예수병원의 모습이다.
2017-06-26 16:42:40
49.xxx.xxx.169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22992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27124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39443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46390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72035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100516
1066
  내한선교사 / B051 / McCormick, Nettle Flower (Cyrus,NP)   최모세     2019-12-04   536
1065
  내한선교사 / B118 / Southwell, Linda(1899-1971 SA) / 3학년 6반 2017210343 김상규   김상규     2019-12-04   511
1064
  한국교회사 3권 전체 서평 /3학년 4반/2014210256/정대웅   정대웅     2019-12-04   465
1063
  한국교회사 3권 전체서평_3-6_2017210390_정이레   정이레     2019-12-04   480
1062
  내한선교사 / M0141 / Charles L. Phillips / 3학년 5반 / 2017210330 / 최장혁   최장혁     2019-12-04   498
1061
  내한선교사 / B044 / Malsbary, Dwight R.(1899-1977, NP) / 3-4 / 2017210250 / 임언약   임언약   -   2019-12-04   493
1060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학년 4반 / 2017210250 / 임언약   임언약     2019-12-04   459
1059
  한국교회사 3권 전체 서평 과제 / 2017210386 3학년 6반 장대희   장대희     2019-12-04   481
1058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학년5반 / 2017210334 / 홍이레   홍이레     2019-12-04   477
1057
  내한선교사 / Milton, Ensign(1877-1937, SA) / Milton, E.(미상, E)   주찬양2     2019-12-03   547
1056
  내한선교사 / Estey, Ethel M.(?-1929, M)   김사라     2019-12-03   569
1055
  내한선교사 / B061 / Moore David Hastings (1838-1914) / 3학년 5반 2017210305 유신혜   유신혜     2019-12-03   569
1054
  내한선교사 / B098 / Robb. Alexander Francis(1872-1935) / 3학년 5반 2017210319 장재민   장재민     2019-12-03   574
1053
  한국교회사 3권 13장, 23장 요약 3학년 5반 2017210318 임지훈   3학년5반임지훈     2019-12-03   445
1052
  내한선교사 보고소 Moffet, Samuel Austin, Brownlee, Ruby B. (3-5반 2017210318 임지훈, 3-5반 2017210326 조일흠)   3학년5반임지훈     2019-12-03   445
1051
  한국교회사3권전체서평/2015210367박진기/3학년6반   박진기     2019-12-03   433
1050
  내한선교사B094Daniel B.Ray 와 Frances J. Ray / 3학년 5반 2017210287 민찬홍   민찬홍     2019-12-03   474
1049
  내한선교사 / Bonwick, Gerald William(1872-1954, SA, CWS) / Bonwick, C. Amy Jones(미상, SA)   원신앙     2019-12-02   485
1048
  2012210365, 3/6, 13,23 Chapter   vivi0300     2019-12-02   397
1047
  한국교회사 3권 전체 서평 과제 / 2017210391 3학년 6반 정인선   정인선     2019-12-02   430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오늘 : 2,915 / 전체 : 15,807,996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