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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mith, Roy Kenneth(1885-1957, NP) / Smith, Laura McLane
 작성자 : owen  2017-06-22 00:31:47   조회: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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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 사항

1. 출생-사망 1885-1957.7.31
2. 경력
1911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서울 세브란스 병원 임시직원으로 의료선교
1920-22 대구 지방으로 이전하여 안동지방까지 순회진료
1922-34 황해도 재령으로 전임되어 활동
1931-34 세브란스의과대학 이사로 활약
1934-40 평양에서 활동,
1940-41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
1945 미군정청 의료고문으로 임명
1948-49 대구 동산병원장 및 의료선교 감독
1950 부인과 함께 은퇴하여 귀국
1957.7.31 72세를 일기로 사망
3. 가족사항 : Smith, Laura McLane(부인)과 4남


Ⅱ. 선교사 소개 : Smith, Roy, Kenneth / Smith, Laura McLane

1. 한국에 들어온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케네스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이다. 케네스의 한국명은 심의도이다. 1911년 맥클레인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왔다. 케네스는 서울에서 세브란스 병원의 임시직원으로 의료선교에 종사하였다. 1920년 대구지방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안동지방까지 순회진료를 하였다. 1922년 황해도 재령으로 전임되었고 이곳에서 평양으로 전임된 1934년까지 헌신하였다. 평양에서 다시 1940년 평북 선천지방 선교부로 전임되어 41년까지 사역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9월 미군정청 의료고문으로 임명되었고 1948년 대구 동산병원장 및 의료 선교 감독이 되었다. 1950년에는 부인과 함께 은퇴하여 귀국하였다. 1957년 7월 31일에 72세로 별세하였다. 한편 그는 세브란스의과대학 이사로도 활약하였다. 개신교 초기의 한국 의료선교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4형제의 자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이 내과의사로 의업을 이었다. 부인은, 캘리포니아 듀아트에 거주하였다.


2. 재령에서 장기간 봉사한 케네스
케네스가 활동했던 지역은 대표적으로 황해도 재령이다. 1922년에서 34년까지 활동하였다. 34-40년에는 평양에서 활동한다. 20년 간을 재령과 평양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초창기에는 대구, 안동, 서울에서도 활동한다.
그가 처음 입국한 것은 1911년 8월 23일이다. 그의 부인과 함께 입국하였다. 그는 서울 선교기지와 관련하여 1911-12년에 활동하였고 1932-34년에도 활동하였다. 서울에서는 5년을 사역한 것이다.
초창기인 1911년에서 1912년과 서울의 사역을 마치고 20년 후인 1932-34년까지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서울에서 1911-12년에는 세브란스 병원(Severance Hospital)에서 사역하였고 32-34년에는 조선기독교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에서 사역하였다.
서울의 사역을 마치고 20-22년까지는 안동에서 사역하였다. 또한 대구에서는 1920-22년까지 사역하였으며 안동지역까지 진료를 하였다. 대구와 안동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서는 1920년에서 22년까지 2년을 사역한 것이다.
정리해보면 서울로 부인과 함께 1911년 8월 23일 입국하여 2년 간 의료선교를 하였다. 서울의 사역을 마치고 안동과 대구에서 2년을 사역한다. 그리고 22-34년까지는 평안도의 재령과 34-40년까지는 평양에서 활동한다.
케네스 선교사가 가장 많이 선교한 곳은 재령과 평양이다. 그렇다면 평양은 어떤 곳인가? 평양은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대동강에서 조선의 선교를 위해서 순교한다. 그 후 선교사 파견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였다. 이어서 평양에서는 40년의 세월 동안 86명의 정규 선교사와 5명의 준회원들이 지나갔다. 케네스도 그 중 한 명의 선교사였다.
평양은 선천 선교기지에 대해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재령을 많은 면에서 보조하였다. 1930년에는 이 평양, 선천, 재령에 북장로회 선교회 소속의 52%, 세례교인의 73%, 65%의 초중등학교의 학생이 있었다.


3. 크리스마스 씰을 판매한 스미스 부인
34년에서 40년까지 스미스 부부가 사역한 평양의 구체적 기록을 본다. 스미스 부인은 크리스마스 씰을 판매하였다. 또한 수익금은 결핵 환자들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케네스 선교사가 20-22년까지 사역한 안동과 대구 중에서 대구는 1895년 이미 베어드 선교사가 선교기지를 개설하였다. 대구를 선교 기지로 만든 것은 도청 소재지이며 주민이 많고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에서 선교 기지가 개설되고 7년이 지난 1902년에는 기독교인 집단이 8개, 성인세례자가 6명, 학습자가 18명, 교인이 77명, 예배당이 1개였다. 그런데 6년이 지난 1908년에는 성인 세례자가 700명, 교회와 예배 처소가 130개로 늘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미스 부부는 대구와 안동으로 가서 의료선교를 하였던 것이다.
스미스 부부는 1911년에 한국에 와서 1920년에 대구로 배정받았다가 2년 후에는 새로 도착한 선교사인 스펜서 호이트 박사 부부에게 일을 넘겨준다.
스미스 부부가 가장 많이 사역한 재령은 어떠한 곳인지 살펴보겠다. 케네스는 22-34년까지 13년 간 이곳에서 사역한다. 황해도의 해변은 서울에서 가기가 쉬우며 평양에 있는 선교사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다.
쿤스 목사님은 선교 기지의 개설에 대해 설명하면서 1905년 봄에 재령에 선교기지를 매입한다. 1906년에 선교기지가 개설되었을 때 관할 영역에 100개의 교회, 2,000명의 세례자와 5,000명의 교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스미스 부부가 가기 이전에 이미 목사이며 의사인 해리 화이팅(Harry C. Whiting)이 1905년에 도착하였다. 파이팅 박사는 1919년에 사임하였다. 이 때 로이 스미스(Roy K. Smith) 박사 부부는 1922년에 대구에서 재령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10년 동안 의료사역에 종사하였다.
재령은 북장로교의 선교 중심지였다. 그리고 450,000명의 주민이 거주하였다. 이전 선교사였던 Whiting(화이팅) 박사는 이미 330,000명의 인원을 치료하였다. 그러므로 주민의 대다수를 치료한 것이다.
스미스 부부가 오기 이전과 이후의 급격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1921년에 격리병동이 지어졌으며, 이듬해에 외국식 병동이 세워졌다. 두 개의 건물을 추가로 짓는데 3,000달러가 소요되었다. 10년 후 1931년에는 사무실들, X-ray 작업실, 환자용 개인방들이 들어설 건물이 지어졌다. 한국인 직원은 13명이 있었다. 환자의 60%가 비기독교인이었다. 병원은 자급으로 운영되었고 매년 5천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25년 간은 35만 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다. 재령에서는 최소한의 비용과 인력으로 엄청난 의료사업이 수행되고 만족스러운 전도 결과를 얻었다.


Ⅲ. 선교사에 대한 평가

자신의 일생을 바쳐 한국에서 선교한 스미스 부부를 평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스미스 부부는 그들의 젊은 시기를 모두 한국에서 보내며 그들의 일생을 한국의 아픈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1911년 입국하여 1950년 나가기까지 그들은 한국사의 거대한 흐름을 보았을 것이다. 한일강제합병과 1919년의 민족적 운동과 30년대의 대동아전쟁과 1945년의 해방을 그들도 한국 민족과 함께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역사의 흐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였다.
가장 오래 된 도시인 평양에서 그리고 재령에서 그들은 22년부터 40년까지 20년 가까이 사역하였다. 그리고 그 앞과 뒤는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인하여 수많은 한국의 아픈 이들이 치료 받았으며 또한 복음을 듣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스미스 부인은 재령에서 활동하면서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결핵 환자를 도왔다. 남성만이 선교하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한국 선교와 의료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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