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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Nisbet, John Samuel(1869-1949, SP) / Nisbet, Anabel Lee Major
 작성자 : 솔로몬1  2017-06-25 17:43:20   조회: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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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Nisbet, John Samuel / 니스벳 / 한국명: 유서백(柳西伯)
2. 생몰연도: 생몰연도: 1869-1949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6년-1940년
5. 연표
1906 남장로회 선교사로 임명되어 부인과 함께 전주선교부에 부임하여 교육선교 발전의 기반을 마렴함.
1907 전주에서 학교 책임자로 교육(1908 신흥학교 명명)
1908 기와집 8칸을 건축하여 전주 신흥학교의 설립자 겸 교장으로 활동했다.
1909 10월부터 전주 서문교회에서 당회를 치리하기도 함.
1910 신흥학교 제1회 졸업생 배출
1911 목포로선교지 이전, 영흥학교 교장으로 학교 발전
1911.10.15 전주 서문밖교회의 전라노회 조직에 참여
1913 강진군 남성교회를 설립하고, 신풍, 무영교회 동사목사로 시무하였다.
1914 목표교회 동사목사로 위임되었으며
1915 강진군 축현, 서산교회를 순회시무함.
1916 함평군 순성, 내교, 석성교회와 영암군 쌍효 교회를 시무함.
1917.9.17 전라노회 창립총회에서 노회장으로 선출
1918 영암군 교동교회에 시무
1920 부인 사망후에도 목포중심으로 농촌전도, 제주도 선교
1921 워커와 제혼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귀국
1949 미국 노드캐롤라이나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Nisbet, Anabel Lee Major(1869-1920)
딸: Waker, Elizabeth R.

1. 이름: Nisbet, Anabel Major / 애너벨 M. 니스벳 / 한국명: 유애나
2. 생몰연도: 생몰연도: 1869-1920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6년-1920년
5. 연표
1869.1.19 미국 테네시 주(Claksville)에서 출생함.
1875 클락스빌 여자전문학교 졸업
1899 6.13 J. S. 니스벳과 결혼
1906 남장로회 한국 선교사로 파송
1907. 3 전주선교부로 부임하고 기전여학교를 책임 맡음.
1911 선교부의 결정을 따라 목포로 이동하여 정명여학교를 책임 맡음.
1919. 11 “Day In and Day Out in Korea(한국에서의 나날)” 책 출판.
1920. 2.21 목포에서 별세


II. 선교사 소개: 유서백(John Samuel Nisbet, 1869-1949)

1. 전주· 목포 교육선교의 개척자
미국 남장로교회 목사. 한국명 유서백(柳西伯). 그는 미국에서 8년간 목회를 하다가 1906년에 남장로회총회 해외선교부의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그의 부인(Anabel Lee Major)과 함께 1907년 전주에 도착했다. 1901년 해리슨(W.B.Harri-son; 하위렴) 목사가 주간학교로 개설하였던 학교를 1904년에 정식학교로 발전시키고 중등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남장로교 선교부는 교육에 종사할 선교사를 대거 파송하였다. 이 때 니스벳 부부는 전주에 부임하여 이 학교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1908년 학교 이름을 「신흥」(新興)으로 명명했다. 1909년 한국선교후원자 그레이엄(C.E.Graham)으로부터 1만불의 재정지원을 받고 교사(校舍)와 기숙사를 건축하였다. 1910년 제 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이 때 14명의 학생이 중등과에 입학하게 되어 새로운 건물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업적은 선교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 무렵 목포 영흥(永興)학교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교장과 교사가 자주 경질됨으로 자연히 학생들이 감소되어 학교운영이 부진하였다. 이런 영흥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니스벳은 1911년 선교지를 목포로 옮기고 그가 70세로 은퇴할 때까지 목포에서 선교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목포에 도착하자 영흥학교 교장의 책임을 맡아, 1914년에는 학제를 변경하여 보통 고등과로 나누고 학교명은 사립(私立)목포 영흥학교로 개칭하였다. 그는 학교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교육 전문가인 커밍(D. J. Cumming)목사를 목포에 청빙하여 영흥학교를 맡기었다.

평가:
니스벳 선교사는 전주와 목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교육을 제공해주고자 노력했다. 그 당시 일반 대중들은 없이 살면서 고통당하고 사는 처지인지라 새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된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쉽게 받아 들였던 것 같다. 학교와 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필요한 기관이었고 그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돌보아 주고 가르쳐주었다. 한국선교는 교육·의료와 같은 간접 선교를 통하여 확산되었는데, 남원제일교회 연표에 의하면 1906년에는 니스벳 선교사에 의해 30여 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1908년엔 윤성만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에 이어서 최극재, 윤종현 등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시작된 것이다. 한국 기독교회사는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또 다른 생명을 낳는 생명의 역사 즉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2. 한국교회 조직형성을 위한 노력
니스벳은 학교에만 종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노회를 조직하는 데도 참여하였다. 1911년 10월 15일 전주 서문밖교회에서 개최한 전라노회를 조직하는 데에 참여하였다. 또 미 남장로교회 호남선교 25주년을 맞이했던 1917년에는 전라노회가 전남·북의 두 노회로 분립하게 되었는데 전남노회는 그가 조직책을 맡았다. 1917년 9월 17일 그의 주재하에 목포 양동(陽洞)교회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첫 노회장의 명예를 얻을 수 있을만큼 그는 열심히 선교에도 앞장을 섰었다. 또 그는 1910년 순천선교부를 개설하는 데도 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순천을 선정하였다.



3. 교회의 사회개혁 활동에 앞서다
1920년 그의 부인이 선교지인 목포에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계속 목포를 중심해서 무안·함평지방과 영안·강진·장흥지방에까지 농촌전도에 힘을 기울였다. 또 그는 제주선교를 총회로부터 전라노회에서 인수받기 위해 데이트(L.B Tate; 催義德)목사와 같이 제주도에 실정을 파악하러 내려갔었다. 이 때 그의 부인과 데이트 부인은 여자 제직들을 모아놓고 제직사경회를 인도했다. 이 모습을 본 그는 성공적으로 선교할 자신을 얻고, 제주도를 남북으로 구분하여 각각 전도목사 1인을 파송하여 선교사업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1921년 그는 워커(E. R. Walker) 와 재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으며, 1938년 70세를 맞이하여 은퇴하게 되었지만 신사참배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한국신도들의 고통을 다소라도 나누고자 은퇴의 생활도 사양하였다. 1940년 마지막 선교부가 일제의 강제퇴거를 당할 때까지 한국에서 선교했다. 그 후 미국 노드 캐롤라이나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였으며 영력이 풍부하였고 정의에 앞장섰으며 가난한 자를 늘 돌보아온 사람이었다고 평하여진다.

평가: 니스벳 선교사는 교육과 더불어 농촌전도에도 힘을 다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은 사회개혁 운동으로 확장되어 복음의 확산에 문을 열어주는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는 민중에 한글 전파, 노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 성차별 악습폐지 등 사회와 문화의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복음은 개인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역사는 개인을 구원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애너벨(Nisbet, Anabel Major, 1869-1920)
1920년 2월 21일 별세한 전주와 목포의 여학교를 세우고 가르친 애너벨 니스벳 선교사. 그녀는 교육자로서 전라도 지역 여성 교육에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남장로회 초기 한국선교회의 역사(1892-1919)를 정리하고 많은 사진을 담은 책 Day In Day Out in Korea (Richmond, VA: Presbyterian Committee of Publication, 1919)을 저술, 출판하였다. 이 책은 호남선교 초기의 역사로서 미국 남장로회 최초 선교사 데이비스(Linnie Davis), 전킨(Junkin)부부, 레이놀즈(Reynolds)부부, 테이트(Tate) 남매 등 7인의 선교사를 비롯하여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선교사를 통하여 받아들인 한국인의 신앙과 삶의 4반세기 역사를 수록한 책이다. 집필 동기에 대하여 저자는 “어떤 사람은 책을 쓰기위해 세상에 태어난다. 또 어떤 사람은 필요할 때 저술 활동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억지로 저술을 떠맡는다. 나는 마지막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이책을 옮긴 한인수 교수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감명 깊게 읽혀졌고, 미국 교회 내에 한국선교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 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는 이 책을 주일학교 교재로 사용 했다.”라고 하였다.

1906년 남편 존 니스벳 목사와 함께 한국에 임명받았다. 애너벨은 테네시 주 출신으로 1875년 클락스빌여자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3년간 교사로 근무했다. 1899년 존 사무엘 니스벳 목사와 결혼하고 사모로 봉사했다. 부부는 1906년 남장로회 해외선교부 한국선교회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1907년 3월 전주에 도착하여 기전여학교 교사로 일하였다. 전주에서 함께 활동한 랭킨(N. B. Rankin) 선교사는 “그는 자신보다 한 달 뒤에 내한하였으며 아주 총명(Bright)하고, 1909년 선교부 회계를 담당하였으며, 언어에 다른 선교사보다 훨씬 앞섰다. 3년차 과정의 한국어 시험에도 2년 3개월에 합격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하였다.

1911년 목포에 전임되어 정명여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사했다. 교사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정명학교 교장으로 이 학교를 정규학교로 개편하고 고등과를 설치하였으며, 새 교과를 건축하고 교육과정을 제정하는 등 교육 전문가로 1919년까지 8년간 활동하면서 정명여학교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7-06-25 17: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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