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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Robertson, Moore Owen(1886-1952, SP) / Robertson, Katherine W. Rowland
 작성자 : 유태상  2017-06-29 09:54:51   조회: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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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Moore Owen Robertson, M.d. (로버트슨 / 한국명: 나베손)
2. 생몰연도: 1886-1952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남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1915-1922 2월귀국
5. 연표
1886년 출생
이후 학교, 생애에 관한 내용 없음
1915년 전주, 어학 의료사역 의사
1916년 전주, 어학 의료사역
1917년 전주, 어학, 의료사역, 군산병원감독
1918년 전주, 의료사역, 군산병원감독
1919년 전주, 의료센타, 의료사역
1920년 전주, 의료센타, 의료사역
1921년 전주, 의료센타, 의료사역
1922년 2월 귀국

5. 가족사항: Robertson, Katherine W. Rowland(부인)외 자녀3명
6. 논저: 정보없음


Ⅱ. 선교사 소개: 로버트슨(Moore Owen Robertson, M.d. 1886-1952)

1. 전주지역에서 의료 사역에 힘쓴 선교사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의사, 한국명 나배손(羅培孫).
1915년 부인(L’Mee Lehmann)과 함께 내한하여 전주에 머물면서 의료 사업에 종사하였다. 1916년 전주 예수병원에서 어학과 의료사역을 했고, 1917년 어학, 의료사역, 군산병원 감독하였다. 1918년 의료사역과, 군산병원 감독하였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서노회 역, 남장로교선교사총람
1919년 사임했다가 이듬해 다시 부임하여 의로센타와 의료사역을 했다. 1920년 의료센터와 의료사역을 하였고, 1921년 의료센터와 의료사을 하였다. 1922년 귀국한 후 다시 오지 못했다.

2. 로버트슨의 전주 예수병원의 사역

로버트슨 선교사의 주된 사역지인 전주예수병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남장로교의 전주병원 개설 작업은 동학으로 인해 1년가량 지연되었다가 1895년부터 본격화 되었다. 전주예수병원의 의료선교는 먼저 해리슨에 의해 시작되었다. 1986년 11월 전주예수병원에 합류하기 전에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위해 1년동안 의학을 공부하고 올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전주에서 의료사역을 활발히 하고 있던 찰라에, 의료사역은 잉골드의 내한을 전후로 중단되고 해리슨은 복음 전도 사역 분야에 활동하게 된다.

전주 예수병원의 의료사업을 잉골드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897년11월 전주에 와서 완산의 초가집에 진료소를 열었는데 이것이 전주 예수병원의 전신이 된다. 완산에서의 초기 진료활동은 유동적인 주변 상황의 전개로 인해 매우 불안정 하였다. 전라감사 이완용은 완산이 전주의 주산일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를 들어 전주병원의 이전을 요구, 남장로교 선교부를 대표하고 있었던 레이놀즈는 주한미국공사관을 통해 정부와 협상을 벌여 화산 이전으로 합의 한다, 지금의 전주서문교회 터와 화산 언덕 일대의 전주 스테이션 구내는 이렇게 조성된다.

기와지붕으로 된 30평의 새 진료소 건물은 1902년 10월 완공되었고, 엄청난 환자들이 몰려 들었다. 이때 한국인 조사들은 아침마다 환자들과 함께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치료를 받은 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보게 될 수 있다. 이후에 여러명의 선교사들이 다녀가고 협력하여 발전을 이루려 했지만, 확연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은 군산의 다니엘이 부임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전주예수병원의 제4대 의료선교사로 부임한 다니엘은 처음 그가 군산에서 했던 것처럼 병원 건물 신축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1년 5월 기공하여, 1912년 9월25일 완공하여, 전주 예수병원 발전의 토대가 마련 되었다. 4개 병동 30병상의 이 신축 병원은 루지애나주 잭슨빌의 맥코완이 1만불을 기증하여 지어진 붉은 벽돌의 지하 1층 지상 2층이었다. 병원의 일과는 오전 8시30분 경건회로 시작하여, 30분의 경건회가 끝나면 9시부터 다니엘이 회진을 돌게 되었다. 점심을 지나 2시부터는 외래 환자 진료까지, 모든 회진을 한후 오후 6시쯤에 일과를 마무리 하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로터트슨이 부임하게 된다. 1915년 8월부터 1921년까지 재임하였다. 특히 그는 임상과 병원관리 분야에 있어서 병원 행정의 기초를 단단히 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설대위 지음, 오용-김민철 옮김,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 p.67 재인용
로버트슨이 사역하고 있던 1919년 전주예수병원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당시 로버트슨 부부는 1,350불의 연봉을 선교부로부터 지급받고 있었다. 독신여성인 케슬러 간호사의 연봉은 700불이였다. 남장로교 선교부는 1920년 전주예수병원 운영비로 3,000엔을 책정해 놓고 있었는데, 이 액수는 전년에 비해 400엔 정도 인상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의사 1명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1918~1919 회계 연도 전주예수병원의 총 입원환자수는 250명이었고, 그 중 180명이 수술을 받았다. 총 시약건수는 10,000여 회였고, 진료비와 약값으로 7,500엔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3. 로버트슨의 업적
한말, 일제강점기 남장로교의 선교구역이었던 전라도 일대에는 군산예수병원을 시작으로 전주예수병원, 목포프렌치병원, 광주기독병원, 순천안력산병원 등이 남장로교 한국선교부에 의해 잇달아 설립 운영되었다. 이 5개의 병원들은 의료선교의 차원을 넘어서 지역 근대화는 물론 지역민들의 보건 의료 상황 개선과 증진에 큰 기여를 행다고 평가한다. 잉골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주예수병원은, 여성인 잉골드의 당시 한구사회의 가부장적인 사회 질서와 부딪하며 의료 사역의 큰 진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10여년 동안 인내하며 전주예수병원의 초석을 놓았다. 로버트슨은 병원 행정 선진화에 이바지함에 있어서 큰 열할을 하였다.
2017-06-29 09: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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