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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Moore, Samuel Forest(1860-1906, NP) / Moore, Rose Ely
 작성자 : 오기환  2019-12-14 00:05:36   조회: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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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A027/Moore, Samuel Forrest (1860-1906) /C059 /Cooper, Harrison (1904-????)/3학년 5반/오기환, 이예찬


무어 선교사 / Moore, Samuel Forest (1860-1906)

I. 기본사항

1. 이름: Moore, Samuel Forest (무어/ 牟三悦 / 미국 / NP)
2. 생몰연도: 1860-1906.12.22
3. 학력: Montana College 졸업
1889-1892 맥코믹 신학교 졸업
4. 경력: 1892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893 예수교학당, 곤당골교회 설립
1896 홍문수골교회 담당
서울에서 백정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
신분제한 철폐 등 권리보장을 위해 탄원, 계몽과 복음전도
양반과 천민이 함께 예배(->승동교회)
서울 근교의 순회전도로 많은 교회 설립
1906.12.22. 한국에서 소천
1907.11.18. 부인은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5. 가족사항: Moore, Rose Ely(부인)
6. 논저: [논문] Note on haiju, KRV, 4, 1904; The Butchers of Korea. KRP, 5, 1898; Present day Buddhism in Korea, Missionary Review, N.Y., 1907; An Epoch
-Marking Conference in Korea, Missionary Review, N.Y., 1905; Step toward Missionery Union in Korea, Missionary Review, N.Y., 1905;
Native Evangelism, Missionary Review, N.Y., 1907
7. 참고문헌: 기백 6권; HKMP 1,2; KRP, 1898; KRV, 1905-06; H.H. Underwood, 4 Patial Bibiography of Occidental Literature on Korea, 1931; 전휘집 18; 기독교회사; 기독교사연구; 서울육백년사, 제3권, 1979.
II. 선교사 소개: 무어 선교사 / Moore, Samuel Forest (1860-1906)

1. 백정해방운동, 곤당골교회 설립
백정의 해방운동에 앞장섰던 무어 선교사는 1892년 9월 한국에 도착했다. 때 마침 인천 재물포항에 마중 나왔던 이길함 선교사와 마포삼열 선교사의 도움으로 종로5가에 자리 잡고 있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서울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무어 선교사는 필기도구를 내놓고 메모하기에 바빴다. 그가 놀란 사실은 종로 5가 연못골에 모여 사는 갖바치(가죽신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흥미를 갖게된 무어 선교사는 그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마포삼열 선교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곤당골에 살고 있는 백정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 두 지역을 보고 난 무어 선교사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네 가지 계층으로 신분을 구별했다. 양반, 중인, 상인, 천인으로 그중 천인은 사회적으로 가장 인생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기생, 관노비, 역졸, 사노비, 창 점치는 사람 등이었지만 이들 보다 더 천하게 여기는 직업은 포졸, 갖바치, 백정 등이었다. 이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와집을 지을 수도 없으며 족보도 소유할 수 없었다. 장가를 가는 경우 가마나 말을 타고 갈 수 없으며, 사람이 죽게 되도 상여 대신에 지게에 지고 시신을 산에 묻어야 했고, 묘에 떼를 입히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계층 사람들로부터 반말을 받아야 하는 딱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무어 선교사는 1893년 백정이 많이 모여 사는 곤당골에 백정을 중심으로 해서 곤당골교회를 설립하였다. 이 교회 양반들이 교회내에서 신분제를 유지하려하자 무어 선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없습니다 라고 거절했다. 거절 당한 양반들은 곤당골교회를 떠나서 홍문동에 홍문동교회를 설립했다. 1904년 두 교회 교인들이 한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종로2가 인사동에 승동교회를 설립하게 됐다. 무어 선교사는 정치 방면에 서도 역사적인 구실을 다했던 것이다. 곤당골교회는 1893년 6월, 곤당골 높직한 곳에 2층집을 지어 터를 잡았다. 무어 부인은 집 구경하러 온 이웃 아낙네들에게 재봉틀도 보여 주어 그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환심을 샀다. 약 9m 깊이로 판 우물에서는 다른 집보다도 수질이 좋아 이웃사람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선교활동을 하면서 어느 해에는 100명에게 세례를 집례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에서 백정을 대상으로 많은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양반과 천민이 함께 예배하도록 하는데 전력하였다. 1896년 에비슨 선교사와 협력하여 신분제한 철폐와, 천민의 권익 보장을 위해 고종 임금에게 탄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조정에서는 복장제한제도를 철폐하여 양반과 천민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기 여했다. 다시 말해서 무어 목사는 오랫동안 천대 받던 백장들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 링컨의 노예 해방 운동과 맞먹는 굉장한 사건이다. 마르다 헌틀리(Martha Huntley)여사는 〈세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 (Turning the World Upside Down)〉이라는 글에서 무어 목사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무어 선교사의 제자 백정출신의 장로 박성춘의 노력으로 백장 해방 운동이 성공했다. 백장들은 그때에 비로소 국민의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적에 오를 뿐만 아니라 남과 같이 갓도 쓰고 망건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법률 상으로는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박성춘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서울과 수원까지 전도 구역을 확대한 결과 수백 명의 백장들이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2. 무어 선교사의 선교의 원동력은 한국말 습득
무어 선교사는 1892 년 선교사로 내한하는 즉시로 한국말 공부에서 동료선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자기 집에서 여러 마일 떨어진 조그만 한국인 집에서 매일 살았다. 한국말을 빨리 익히기 위해서는 외국인들과 한국인 구경꾼들로부터 격리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지 수주일 안에 자기집 식모를 신자가 되게 했으며, 6개월만에 한국인들과 담화를 하고 교회에서는 기도를 할 수 있을 만큼 어학 실력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는 매 일 아침 2,30명의 한인들과 만나 사귀면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다. 매일 오후에는 서울 거리에도 나가고 한강 여가리에 있는 시골 마을에도 나가 전도를 했다. 그리 하여 무어 목사는 1900년까지 25개의 예배 처소를 세우게 되었으며, 성인 교인 총수는 850명에 달했고, 어느 한 해 에는 그 중 1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또한 그는 서울 서쪽 변두리에다 교회 두 개를 세웠다.

3. 무어 선교사의 교육사역
그는 1889년 몬타나대학을 졸업하고 새로 설립된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에 진학했다.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기를 서원하고 입학을 하였기에 그는 더 많은 영적인 생활로 시간을 보냈다. 1892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부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한국에 오게 됐다. 그가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은 동기는 한국에 오는 도중 잠시 들린 일본에서 미국 개혁파 소속 선교사를 만나 교육사업이 선교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경험담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도 한국에 가면 교육사업을 하겠다고 준비하면서 한국 서울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미 언더우드 선교사가 예수학당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무어 선교사도 자신이 설립한 곤당골교회 부속으로 예수학당을 설립하고, 천대받고 자란 백장들의 자녀를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무어 선교사는 처음부터 주기도문을 암송하게 하였으며, 그 일이 끝나면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훈련을 시키었다. 이와 함께 한글과 산수를 가르쳤으며 소요리문답을 가르쳐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갔다. 무어 선교사는 1906년 평양신학교 교수진을 임명되어 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4. 한국교회에 끼친 기타 영향
장로교 선교회는 감리교 대표들과 선교지 분할 협정을 논의하기 위해 1893년 1월 23일 선교지분할위원회 위원로 기포드, 스왈른, 무어를 임명하였고, 그 해 한국에 파송된 전체 장로교 선교회와 감리교 선교회는 한국 내에서의 불필요한 선교 경쟁을 피하고 선교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교계예앙이라는 선교분할 협정을 체결했다. 무어 선교사가 세운 승동교회는 1907년 2월 17일 서울장로교 연합 사경회 때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인 길선주 목사님이 회개를 선포하며


5. 한국에서 순교
무어 선교사는 비록 짧은 삶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그의 묘비는 양화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고통받고 살았던 수많은 백정들에게 해방을 주고 그의 영혼은 잠들었다. 열심히 선교를 행하였던 무어 선교사는 1906년 12월 성탄절을 3일 앞두고 46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시신은 양화진에 묻혔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1893년 영어공의회 서기였다


▲ 무어 선교사님 가족

▲ 사무엘 무어 선교사님 사진
IV. 참고문헌

[무어 선교사 저술]


[단행본 및 논문]
찰스 알렌 클락 저. 이교남 역. 「장로교회사전휘집」. 서울:한국기독교교회사주영연구소 2018.
박용규 저. 「평양대부흥운동」.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7.
박용규 저. 「한국기독교회사 1」. 서울: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9.
박용규 저. 「한국기독교회사 2」. 서울: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8.
김수진 저. 「한국초기 선교사들의 이야기」.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0.
전택부 저. 「이 땅에 묻히리라」. 서울: 홍익사 1986.
신호철 저. 「양화진 선교사의 삶」. 서울: 양화진선교회 2005.
신호철 저. 「이 땅에 떨어진 밀알들 양화진 선교사」. 서울: 양화진선교회 2003.
S.F. Moore, “The Revival in Seoul”, K.M.F., The Korea Mission Field
S.F. Moore, “Genesis and English History”, K.M.F., The Korea Mission Field
2019-12-14 00: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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