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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46/ Steadman, Frederic W
 작성자 : 오건호  2020-07-03 17:50:58   조회: 175   
 첨부 : 내한선교사_3-3_46_오건호.hwp (444928 Byte) 
1.기본사항

이름: Frederick W.Steadman
생몰연도:1871.10.10. - 1948
출신 및 소속: 캐나다, 엘라딩기념 선교회(클라렌돈 교회의 독립 선교단체, 침례교)
한국 선교 기간: 1897-1901
연표
1871. 10.10.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 출생
1896. 엘라딩기념 선교회에서 선교사로 한국 공주로 파송
1897.09.29. 선교사 브라이든과 서울에서 결혼
공주 사역의 본격화
1899. 강경으로 이동해 사역 시작
강경 침례교회 2대 목사 부임
1901.4. 펜윅 선교사에서 사역 위임. 한국 선교 사역 종료.
1902. 미국침례교선교사연맹에서 파송. 일본 선교 시작
1933. 선교사역 은퇴
1948. 향년 77세로 미시간 렌싱 병원에서 사망

6. 가족 사항
부인: Agnes Taylor Bryden
자녀: 1명


엘라딩 선교회
잘 알려진 대로 19세기 말 충청도 강경에 와서 선교했던 ‘엘라딩기념 선교회’는 미국 북침례교의 총회 차원이 아니라 그 교단에 소속된 보스턴의 클라렌돈교회에서 개별적으로 세운 독립 선교단체이다. 유명한 부흥사이기도 했던 그 교회 목사 고든(Adoniram J.Gordon)은 보스턴선교사훈련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유력한 교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사무엘 딩(Samuel B.Thing) 집사의 후원을 기반으로 그 선교회를 조직하여 한국에서 활동하게 하였다. 엘라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고든이 세운 이 훈련학교에서 공부한 바 있다.

엘라딩기념선교회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6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였다. 고든 목사의 생전에 임명된 이들은 폴링과 가델린(Miss Amanda Gardeline)인 것 같고, 두 번째로 스데드맨(Fredrick W.Steadman), 엘머(Miss Arma Ellmer) 그리고 엑클스(Miss Sadie Ackles)가 선교사로 지명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1명은 스테드맨의 부인이 되는 브라이든(Agnes T.Briden)으로 추정된다. 2차 임명은 1895년 2월 2일 고든 목사의 사망 이후 엘라딩기념선교회가 이사회 체제를 갖추면서 이뤄진 것이다. 이 가운데 스테드맼은 1896년 4월 입국이 확인되지만 나머지 여성 선교사들의 내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위의 The Korean Repository 1896년 7월호의 엘라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을 소개한 글을 통해 좀 더 추정을 해본다면, 거기에서는 폴링 부부와 가델린, 스데드맨, 앨머의 순으로 적고 있는데, 혹시 이것이 입국 순서가 아닌가 한다. 즉 가델린은 1896년 4월 스테드맨 이전에 부임한 것 같고, 앨머 역시 1896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서울에 온 것 같은데, 스테드맨과 함께 1896년 4월 내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폴링을 비롯한 엘라딩선교회 선교사들은 서울에 있는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하였다. 일단 스테이션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방문과 서적 배포, 거리 전도도 빼놓지 않았다.


2.선교사 소개


스테드맨은 1896년 4월 4일 한국에 도착하여 정동에 머물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1897년 9월 29일에는 브라이든과 결혼하고 즉시 공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공주에 도착한 스테드맨 선교사는 공주를 거점으로 강경을 비롯한 중부권에 선교의 지경을 넓혀나가게 된다. 이 때부터 공주침례교회는 교회로서의 틀을 갖추고 한국 침례교 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 침례교회의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1905년 공주를 잠시 방문한 스테드맨은 “자신이 살던 집에 도착하자마자 옛 친구들과 이웃들에 둘러싸였다”고 술회한다. 그들 가운데는 1897년 1899년 사이에 공주와 그 인근에서 스테드맨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읃로 생각된다. 그러나 공주의 그 공동체는 강경에 비해 약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스테드맨은 1899년 말 강경에서 사역하던 폴링이 본국으로 돌아가자 곧바로 공주에서 강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주에 자신이 지도하는 신앙공동체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면 스테드맨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강경을 순회 사역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의 강경 이주가 지연되었을 것이다. 스테드맨의 그런 행동을 통해서 공주보다는 강경에 더 유력한 신자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1 선교사 브라이든과의 결혼
스테드맨은 1896년 25세 나이로 엘라딩기념선교회에서 2차로 한국 공주로 파송되었다. 그는 먼저 1897년 5월 공주에 거주지를 마련했다. 그는 이 선교회를 통해 만난 브라이든 선교사와 1897년 9월 29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마 브라이든은 엘라딩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파송받았다가 스테드맨과 결혼한 듯하다.

2-3 선교의 열매
스테드맨 일행은 처음에는 서울의 서북지역에 자리를 잡고 전도용 소책자들을 나누어 주는 등 노방전도와 개인전도를 하였다. 첫 번째 구령의 열매로 서울에서 침례를 받은 이는 지병석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인천 태생으로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고 서울과 충청도 강경을 배편으로 오가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강경 옥녀봉 중턱에 있던 지병석, 천성녀 부부의 집에서 1896년 2월 9일에 첫 예빼를 드림으로써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를 세우는 데 기틀이 되었다. 당시 서울은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본거지로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딩기념선교사들은 사역의 중심지를 충청도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폴링 선교사 부부와 가들라인 자매는 강경 북옥동에서,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와 엑클즈, 엘머 선교사는 공주 반죽동에서 자리를 잡고 선교활동을 펼쳤다.

2-4 강경침례교회의 2대 목사로 부임하다.
1899년 같은 선교회 출신이자 강경에서 먼저 사역하던 폴링이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하자, 본격적으로 스테드맨은 공주에서 강경으로 이동해 사역을 펼쳐나갔다. 그는 먼저 강경 침례 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여기서 사역의 열매를 맺었는데, 12명의 침례교인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다.

2-5 한국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다.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가 1901년 4월에 한국을 떠남으로서 엘라딩기념선교회의 한국선교사역은 공식적으로 6년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6명에 선교사들에 의해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사역이었지만, 그 열매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이들 선교사들은 미국의 침례교회 출신이었고 한국 땅에 들어와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하는 신자들에게 침수례를 행했던 침례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이 사역했던 강경, 칠산, 공주 등지에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랜 역사의 침례교회들이 지역교회의 등불로서 존재하고 있다.

스테드만은 사역지를 펜윅 선교사에게 위임하고, 캐나다로 귀국하고 보스톤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1902년에 미국침례교선교사 연맹에서 파송받아 일본으로 선교를 나갔다. 그는 일본 도쿄 인근 조후 주변에 머물면서 선교 사역을 펼쳐나갔다. 그는 세 차례(1902년 3월, 1903년 11월, 1905년) 에 걸쳐 강경, 칠산. 공주 지역을 방문하여 자신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인해 결신한 신자들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교회들이 튼튼한 반석 위에 설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하였다. 1905년 스테드맨이 마지막으로 공주-강경-철산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는 모두 300명 정도의 침례교인들이 있었다.
스테드만은 1933년 12월에 은퇴했고, 1948텬 향년 77세의 나이로 미시간 주 랜싱(Lansing)에서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갔다. 스테드맨의 사역은 짧았지만, 그의 사역은 많은 새로운 생명들을 낳은 사역이라고 할 수 있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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