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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21 / Graham, Ellen Ibernia (1869-1930, SP)
 작성자 : 김정환  2020-07-09 09:09:31   조회: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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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 사항

1. 이름: Graham Ella Ibernia
2. 생애: 1869-1930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7년 내한 1930년 사망
5. 연표:
1907.10.16. 은자의 왕국(1637~1876년의 조선)해외선교를 떠남.
1907.11.04. 일본 증기선 타고 요코하마에서 편지
1907.11.11. 고베 도착
1907.11.22. 광주 도착. 고베에서 5명이 출발하여 목포를 거쳐 도착
1907.12.06. 선교사들과 함께 지내는 몇 가정을 제외하고 광주에 기독교인이 없다고 생각. 소규모의 멤버로 광주에 교회를 세움
1907.12.26.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 교사가 한국이름을 지어줌
1908.2.25. 다른선교사가 병에 걸림. 한국에 의사가 없지만 일본인 의사가 들어와 있어서 치료를 받음.
1908.04.01.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 선교사가 여학교를 설립 개교. 초대 교장으로 엄언라 선교사 취임.
1913.07.15. 목포에서 수술. 급격한 건강 악화
1913. 미국으로 돌아가 요양
1930. 이전 병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한국 땅에 묻히기 위하여 광주로 돌아옴
1930.09.17. 광주에서 별세
6. 가족사항
아버지: John knox Graham (1820.9.15. ~ 1845.11.30.)
어머니: Mary Jane Burkhead (1831.11.1. ~ 1903.1.21.)

Ⅱ. 선교사 소개 - Graham, Ellen Ibernia (1869-1930, SP)

1. 수피아 여학교 사역

배유지가 1908년에 세운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초기 건학이념은 “믿음에 굳게 서자”이었고 이를 기초로 “신앙 교육을 통한 이웃 사랑과 나라 사랑하는 사람”이란 인간상을 교육목적으로 세웠다. 오늘날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의 설립목적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본받아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사랑하고 봉사하며 지·덕·체를 갖춘 지행일치의 순결한 민주여성을 길러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 학교의 깊은 역사와 기독교적 전통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엄언라 선교사이다.

엄언라 선교사는 1907년 38세의 나이로 광주에 도착하여 광주의 여학교인 수피아 여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엄언라 선교사는 한국에서 백미다(Bigger), 서서평(Shepping), 구애라, 도마리아 등 한국의 다른 유명 선교사들과 함께 지냈다. 광주선교부에는 남학교 하나, 여학교 하나가 있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사내아이들은 학교를 보내지만 여자 아이들은 보내지 않았다. 엄언라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몇몇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소문이 나서 많은 부모들이 자기 딸들이 공부하기를 원해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엄언라 선교사가 사역하던 수피아 여학교의 많은 수의 학부모님들은 수업료 대신 쌀을 가져왔다. 그리고 학생들은 각자 가져온 쌀을 측량하고 공동의 솥단지에 담아 밥을 지었다. 이렇게 자신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근에는 병원 선교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우월순(Wilson)이 의사로 있었으며 서서평(Shepping)이 간호사로 활동했다.

수피아여학교는 확고한 기독교적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기초로 다양한 신앙교육과 민족교육과 여성교육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런 신앙교육은 여학생들에게 개인의 구원신앙을 넘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당시 일제의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수피아여학교에서 시작된 활발한 토론문화와 적극적인 사회봉사는 잏후 여성의 인권과 여성 지도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녀평등, 과부의 재가허용, 조혼폐지, 축첩폐지 등 사회개혁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2. 신앙교육과 여성교육

수피아의 역사를 다룬 서적은 당시 채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채플(기도회) 시간에는 학생들 하나하나 돌려가면서 기도를 드리게 하고, 졸업반 학생들이 번갈아가며 인도하는 등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까지 자기의 과제를 끝마쳤다. 여러가지 일 외에도 학생들은 자기네 방을 청소하고 한 방에 있는 사람들을 가족처럼생각하고 방 식구끼리 가족기도회를 가졌다. 오래 있던 학생들은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데리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 구절을 설명하여 주며, 성경을 읽어주
고 또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도와 신앙생활로 이끄는 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였다. 수피아여학교 기숙사 생활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의 장이었다. 수피아여학교는 전통적으로 음악을 잘 활용하여 학교를 아름답게 세워나갔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채플 예배 때마다 찬송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굳건하게 세워나갔다.“

3. 교회사역

엄언라 선교사가 사역하던 당시 광주 교회에는 부흥이 일어났다. 도마리아 선교사는 그녀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광주에서 큰 집회가 있었는데 우리는 온종일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습니다. 날마다 오후에는 축호전도를 했고 밤에는 북문안 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숫자를 정확하게 셀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남자만 500명은 매일 참석하였고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양쪽으로 좌석이 구분되어 앉습니다.) 여자들도 매일 그만큼은 참석을 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회 중앙에는 남녀가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남,녀 석을 구분 짓는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엄언라와 다른 선교사들은 남녀가 유별난 시대 속에서도 수 백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폭발적인 신앙의 선교 사역을 수행했던 것이다.

4. 순회전도

도마리아 선교사는 그녀의 전기에서 엄언라 선교사가 ‘광주 지역의 순회전도부인’으로 활동했다고 기록한다. 엄언라 선교사가 활동하던 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집들은 초가지붕이었으며 추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옹기종기 산마루에 붙여 지어졌다. 엄언라 선교사가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게 된 이유는 조선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교사들에게 최고의 방을 내어주었고, 그들이 최고로 기쁘고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여러 면에서 노력하였다.

엄언라와 다른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약 2주 정도 집을 나와서 순회전도 사역을 했다. 특히 날씨가 좋은 10월 같은 경우에 순회전도를 하며 주변 교회들을 방문했다. 그들은 순회 전도를 다니면서 성경 공부를 진행했다. 아침식사 후에 성경책을 들고 마을을 둘러싼 언덕 위 소나무 숲으로 가서 한 시간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수업을 하는 것이다.
엄언라의 순회선교전략은 처음에는 기독교인 가정만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특히 바깥출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방문하여 저녁집회에 초대하였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집안의 모든 일들이 끝나기 전에는 집 밖을 나서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진행한 저녁집회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5. 구제사역

당시 선교사들은 구제사역에도 힘썼다. 엄언라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거리를 다닐 때마다 꼬마 거지소년들이 떼를 지어 따라오며 한 푼 도와달라고 하는 일이 매일 있었다. 엄언라는 당시 한 소년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누군가에게 돈을 주어 그를 돌보게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 소년은 마대자루 하나를 걸치고 있었는데 엄언라는 그에게 옷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미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기숙사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그 학교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특별한 관리를 받으며 변해가는 아이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거리에서 벗어난 소년을 보고 구제 사역에도 힘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6. 수피아 여학교 교장직을 물려준 이후의 선교

엄언라 선교사는 수피아 여학교 교장자리를 구애라 선교사에게 물려주고 광주 지역 시골교회를 순회하면서 남성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선교사역을 계속하였다. 그것은 연약한 여성에게는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가파른 고개와 험한 산을 넘고, 물이 붙은 위험한 개울이나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사나운 눈보라와 폭풍을 뚫고 외딴 시골 마을을 찾아가 복음을 전한 것이다.

엄언라 선교사는 벨(Bell)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한 동안에는 벨의 말을 빌려 타고 다니며 활동했다. 그녀가 보살핀 여인 중에는 20년동안 앞을 보지 못했는데 눈을 뜨게 한 일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수피아 학교의 2대 교장 구애라는 이렇게 전했다.

“그래함 선교사는 지난여름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어느 한 눈먼 여인을 교회로 인도했다. 그 여인은 그 다음 주일 교회에 나왔으며 윌슨 부인은 축음기를 들려주었다. 그 다음날 윌슨 의사는 눈먼 여인의 백내장 수술을 통하여 20년 동안의 어두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7. 엄언라 선교사의 죽음

엄언라 선교사는 1926년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가 요양했다. 그러나 그녀는 건강의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한국 땅에 묻히기 위해 광주로 들어와 선교활동을 계속하다가 1930년 9월 17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성 심근염과 수술 되 심한 복수중으로 별세했다.

엄언라 선교사는 죽기까지 구애라 선교사와 함께 살았다. 엄언라는 한 국에 몇 주 간 입원해 있었다. 도마리아 선교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의 시신은 서울에서 기차로 하루 종일 걸려 운구 되었다. 우리는 선교동산 언덕 위 묘원에서 석양에 장례예식을 행했다. 날씨는 아름다웠고 장례예배는 사랑스러웠다. 노라복 박사가 장례예배를 영어로 진행했고 한 조선인 목사가 조선말로 통역을 했다. 많은 예쁜 꽃들의 현화가 있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녀는 가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왔다. 차라리 그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녀는 언덕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고 높은 산을 누비면서 많은 조선 마을을 다녔다. 그녀는 이곳저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내가 믿기는 그녀는 천국에서 그를 환영할 많은 동무들을 만날 것이다. 그는 과거 수년 동안 광주선교부의 유일한 순회전도자였다.”

엄언라 선교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나라의 3천년 역사에서 백만 명이 더 살고있는 이 지역에서 최초로 여학생을 위한 학교가 생기다니, 이들의 출석과 공부 열기는 참으로 놀랍다. 이 학교가 지난날에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었으며, 여러분의 도움과 기도로 미래에도 큰 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오웬이라는 선교사는 벨 선교사와 함께 전남 선교를 개척한 인물로 1909년 순천 전도에 나섰다가 폐렴에 걸려 42세의 나이로 순직했는데 그는 양림동 동산에 묻힌 첫 선교사이다. 그리고 그 옆에 1907년에 광주에 와서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엄언라 선교사가 누워 있다. 독신이었던 그녀는 건강이 악화돼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와 소원대로 광주에 묻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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