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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Murray, Florence Jessie(1894-1975, CP)
 작성자 : rev.han  2018-12-06 14:35:23   조회: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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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레이 선교사 / Florence Jessie Murray (1894~1975)

Ⅰ. 기본사항

1. 이름: Murray, Florence Jessie / 머레이 / 한국명: 모례리(慕禮理)
2. 생몰연도: 1894.02.16. ~ 1975.04.14.
3. 출신 및 소속: 캐나다, 캐나다 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1.09. ~ 1961.07.
5. 연표
1894.02.16.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 주 픽토우 랜딩(Pictou Landing)에서 출생
1919. 캐나다 달하우지 의과대학 졸업 / 미국 보스톤 롱아일랜드 병원에서 수련
1921.09. 캐나다 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 만주 용정의 제창병원(성안두루) 관리자
1922.12. 만주 용정의 제창병원 병원장으로 취임
1923.10. 함흥 제혜병원에서 소아과, 내과 담당 / 함흥 영생학교에서 강의
1925. 함흥 신창리에 병원 개업 및 병원장으로 봉직(1925~42)
1927. 결핵요양소 설치
1929. 간호학교 설립
1942.07.01. 일제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강제 추방
1942. 미국 뉴욕 트루딘 결핵학교에서 결핵 연구(1942~46)
1945. 캐나다에서 병원 개업 및 내과의사로 봉직(1945~46)
1947.08. 해방 이후, 내한 /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학장으로 취임
1948. 세브란스병원 소아과장 취임
1951.02. 정부에서 공로훈장 수여
1953. 세브란스병원 부원장으로 취임 및 의과대학 강사로 재직
1955. 달하우지 대학 및 파인힐 신학원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
1959. 원주연합기독병원 설립 / 나병환자촌 경천원 설립
1960. 나병환자촌 미감원 설립
1961.07. 정년 귀국 / 정부에서 훈장 수여
1962.09. 구라선교회의 초청으로 재입국
1964.12. 세브란스병원 의무기록실에서 집무
1969.05. 캐나다로 영구 귀국
1974. 동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국 방문
1975.04.14. 캐나다 핼리팩스(Halifax)에서 소천

6. 가족사항
아버지: Robert Murray
어머니: Isabel Murray


Ⅱ. 선교사 소개: 머레이(Florence J. Murray, 1894~1975)

1. 한국의 의료선교사이자 사회개혁가
머레이(Florence J. Murray, 1894~1975)는 한 평생 한국을 사랑하고 헌신한 의료선교사이자 사회개혁가였다. 그녀를 가리켜 사회개혁가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당시 한국 사회의 의료체제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함께 결핵퇴치 운동과 나병환자들의 삶의 개선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남성지배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온갖 차별을 감수하면서 남녀동등권을 스스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의 족적은 원주세브란스병원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내한 선교사들에 대한 추적 연구는 그 특정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영역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머레이의 경우 원주세브란스병원 내의 모례리 기념관, 모례리 기념비, 모례리 의료선교상,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대학 빅토리아 교정에 있는 석탑에 기록된 그녀의 이름 등이 전부이지만, 더 큰 족적은 그녀에게서 직접 배운 후학들이 한국 의료계에서 큰 일들을 감당하였던 결과 속에 남아 있다.

2. 머레이 선교사의 한국선교 결심과 과정
머레이는 1894년에 6남매 중 장녀로 목사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꿈은 목회자였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 장로교회는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택한 직업이 의사였다. 그녀의 부친은 신학대학 동기들과 함께 선교사를 희망했었으나, 당시 선교부 예산상 가족이 있는 목회자보다 독신으로 사역할 선교사들을 지원할 수밖에 없어 그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을 때에 선교지의 상황들을 부친과 함께 들을 수 있었고, 특히 한국의 생활상과 환경에 관해 들었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져 조선으로 부친을 대신해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로 결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녀가 남동생과 함께 프린스오브웨일스(Prince of Wales) 대학 재학 시, 북미학생자원협의회가 내슈빌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해외선교 사역에 남동생 알렉산더와 함께 자원했고, 이후 달하우지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녀가 의과대학에 입학한 때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래서 의술을 완벽히 익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많은 이들을 진료 및 수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의과대학 졸업 이후 롱아일랜드병원에서 수련을 했으나 형편없는 의료 수준과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와 병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사퇴하였다. 이후 외과대학 해부 실습강사 자리를 알아보던 차에 함흥 제혜병원에서 선교하던 케이트 맥밀란(Kate McMillan, 한국명: 맹미란)이 자신을 도와줄 여의사를 보내어 달라고 캐나다 선교부에 요청을 했고, 1921년에 캐나다 장로교 선교위원회에서 해외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

3. 한국에서의 사역 1기: 1921~1942년
머레이가 캐나다 장로교의 파송으로 1921년 내한한 때부터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한 때인 1942년까지의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은 그녀가 저술한 At the Foot of Dragon Hill (번역서 『맹부인 맹부인: 닥터 머레이의 조선 시절』, 『내가 사랑한 조선』)에 상세히 기술되어져 있다.
그녀는 이 1기 사역의 시기에는 함흥지역에서 결핵환자 치료를 위한 병동 설립,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생리학과 영어 강의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사역에 임했다. 그녀는 약 2년간 만주 용정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다가 함흥 제혜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함흥 제혜병원의 의료시설과 수준은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다. 특히 전염병 격리실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치료는커녕, 환자를 격리하여 방치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특히 결핵의 경우, 치료 자체를 꺼려했기에 그녀는 제혜병원을 결핵환자 전문병동으로 특성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결핵에 대한 특별한 약은 없었다. 그저 휴식과 영양식 제공으로 병세가 더 악화되지 않게 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녀는 치유될 가능성이 있고 치료 규칙을 잘 따를만한 환자들을 선별하여 직접 결핵 환자들을 돌보았다.
한편, 이 시기 병원의 간호 분야에는 환자의 가족들이 직접 환자를 돌보던 정서가 깊어 정식으로 간호교육을 받은 간호사가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함흥 제혜병원에 3년 과정의 간호사 양성학교를 개설하고, 아다 샌들(Ada Sandell)은 교장으로 간호학을 가르치고 그녀는 생리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간호사들을 양성하며 의료선교의 사역을 감당했다.

4. 한국에서의 사역 2기: 1947~1961년
머레이가 해방 이후 1947년에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여 활동한 후, 1961년 정년으로 은퇴하기까지 선교사역은 그녀의 소천 이후 출간된 Return to Korea (번역서: 『리턴 투 코리아』)에 상세히 기술되어져 있다.
그녀는 이화여대 김활란 박사의 초청으로 1947년 재입국하여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학장 취임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2기 사역을 시작했다. 이 2기 사역의 시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모든 제반 시설들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복구사업에 헌신하였다. 특히 폐허가 된 세브란스 병원의 복구, 전쟁고아 구호사업, 미8군의 세브란스병원 결핵병동을 설립했고, 특히 원주연합기독병원 설립, 원주 근교에 나병환자촌인 경천원, 미감원을 설립하는 등 한국의 복구와 의료사업에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57년에 미국 감리교 선교본부와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부는 강원도 원주에 병원을 세우기 위한 건축위원회를 구성했고, 양 선교부의 대표로 쥬디(Carl W. Judy) 목사와 모레이 선교사를 선임했다. 당시 미국 감리교 선교부가 병원 부지를 기증했고, 미국 감리교 선교부,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부, 미국 감리교 해외구제 위원회, 국제연합 한국 부흥위원회가 건축비를 기증하여 머레이 선교사를 이사장으로 문창모 박사를 병원장으로 취임시키면서 1959년에 원주연합기독병원이 개원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그녀는 이곳을 중심으로 의료사역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나병환자촌인 경천원과 미감원을 설립하여 의료선교와 함께 복음을 전했다.

5. 한국에서의 사역 3기: 1962~1969년
머레이는 공식적으로 선교사 은퇴를 하고 본국에서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한국 의료계는 구라선교회의 초청으로 재입국을 요청하였고, 그녀는 흔쾌히 수락하여 1962년에 재입국을 했다. 이미 70세가 가까운 고령의 몸이라서 다양한 활동은 자제한 채, 1964년부터 캐나다로 영구귀국 하기까지 1969년까지 세브란스병원 의무기록실에서 현대적 의무기록을 세우는 일에 한국에서의 마지막 헌신을 다했다.
그녀는 세브란스병원 의무기록실의 초대 문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모든 의무기록지의 전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고 하면서, 누락된 의사의 서명과 기록일자의 누락이 없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당시 수련의들은 미비 차트가 없도록 큰 신경을 써야 했으며, 모든 병상문서를 영어로 작성하면서 올바른 영작문 실력과 의학영어 실력 향상에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녀의 이러한 관심과 노력으로 세브란스병원의 의무기록실 체제는 한국의 모든 병원들의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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