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Root, Florence Elizabeth(1893-1995, SP)
 작성자 : 이재연  2018-12-06 15:55:02   조회: 1077   
 첨부 : 기말보고서_3-6_081_ 김하림_이재연.pdf (251786 Byte) 
 첨부 : 기말보고서_3-6_081_ 김하림-이재연.hwp (1196032 Byte) 
유화례 / Root, florence Elizabeth (1893-1995)

Ⅰ. 기본사항

1. 이름: Root, florence Elizabeth / 한국명: 유화례)
2. 생몰연도: 1893.12.21.-1995.5.26.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6.12.18.-1963
5. 연표
- 학력: 대학졸업
성서신학교에서 2년간 성서 공부
- 경력: 5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1926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광주로 도착
3년간 수피아여학교와 광주, 목포지방의 농촌교회 선교
1933 제5대 수피아 여학교 교장 취임, 학교 발전에 기여
1942.6.1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1947.10 재내한, 1948 수피아여학교 제 8대 교장으로 취임
한국 전란시 공산군에게 죽을 고비를 넘김
1950 제 10대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
1957.9 교장직에서 물러나 농촌교회와 부역 등으로 광주형무소 재소자들을 돌봄
1963 선교사 정년시에도 귀국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활동
1979 은퇴, 워싱턴에서 거주하며 광주형무소에 격려편지


Ⅱ. 선교사 소개: 유화례 (Root, florence Elizabeth)

미 남장로교 한국 여선교사. 한국명 유화례, 미국 뉴욕 주에서 출생.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5년간 재직하였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와 성가대 등에서 봉사하였다. 어느 날 부흥사경회에 참석하였다가 은혜를 받고 성서신학원에 입학하여 2년간 성서를 공부하였다. 한국에서 귀국한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처음에는 2년간 한국 선교사로 갈 것을 권유로 받고 처음에는 2년간 한국 선교사로 갈 것을 결정하고 27세 처녀의 몸으로 내한하여 광주에 도착하였다. 3년간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와 광주지방과 목포지방에 있는 농촌교회를 도우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33년에는 제 5대 수피아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과학관을 준공하는 등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문제로 인하여 유화례 선교사는 1941년 신사참배 문제로 수피아여학교를 자진해서 폐교시켰다. 교육보다 우선한 것은 우상인 신사에 절할 수는 없는 믿음의 문제였다. 쉐핑과 최흥종목사를 존경했던 유선교사는 이들이 섬기던 이 땅의 버림받은 이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으로 여수 애양원을 찾았다. 윌슨원장은 이미 선교사 철수 정책으로 떠났고 애양원교회의 손양원전도사 역시 신사참배 문제로 광주지역의 목사들과 감옥에 구금중이었다. 4개월간 목자없는 애양원에 머물며 예배를 인도하고 문둥이들의 친구로 살았다. 저들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몸을 씻겨 옷입혀 주면서 도리어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농촌을 순화하면서 복음의 전파를 계속하다가 1942년 6월 1일 일본 경찰의 강제 추방 명령으로 그토록 아끼던 농촌교회를 두고 광주를 떠났다.

해방 이후 다시 수피아여학교는 한국인의 손에 의해서 복교되었으며 1947년 10월 루트 선교사는 다시 내한하여 1년 후 제 8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6·25 사변 때는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고도 학교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철수하지 않고 교장실에서 기도로 날을 보냈다. 1950년 7월 23일 광주에도 공산군이 침입하여 아비규환의 비극을 연출케 되었다. 이때 선교부에서 일하던 조용택 전도사와 장재태 전도사의 권유로 방림동에 있는 동광원으로 우선 몸을 피했다. 그러나 생명의 위험을 느낀 동광원의 책임자 정인세는 루트 선교사를 한복으로 갈아 입혀서 화순군에 있는 화학산으로 피난하게 하였다. 피난을 가는 길목에서 그 지방 공비에게 발각되었으나 옆에 있는 안내자 일행이 “이 사람은 귀화한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죽기를 맹세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살려주시오”라고 말하여 변을 면하게 되었다. 77일간 꼬박 바위 틈에 숨어서 기도와 성서읽기로 세월을 보내던 중 유엔군이 뿌린 전단을 보고 하산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때 하루 먼저 하산했던 조용택·장재택 두 전도사는 퇴각하는 공산군들에게 붙잡혀 순교를 당하였다. 루트 선교사는 우선 광주선교부 사무실을 정돈하고 귀국해 버린 선교사를 맞을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 1950년 12월 제 10대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영광지방에서 많은 교인이 공산군에 의해서 순교당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달려가 유가족을 돕는 한편 교인학살에 앞장섰던 공산군을 회개시켜 예수를 믿게 하였고 요인중 78명이나 순교당한 염산교회를 자주 방문하면서 돌보아 주었다.

1957년 9월 교장직을 한국인에게 물려주고 다시 농촌교회를 도보기 시작했으며, 특히 6·25 사변으로 부역했거나 앞장서서 일했다고 하여 광주형무소에서 옥살이하는 재소자를 돌보아 주었다. 특히 화순군 도암면 일대에 흉년이 들자 미국에 요청하여 많은 구호활동을 폈다. 유화례 선교사는 공식적으로 1963년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했다. 그는 여느 사람처럼 고국으로 돌아가 편안한 말년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봉급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1978년, 그의 나이 여든다섯까지 이 땅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섬겨야 할 일을 부지런히 찾았다. 은퇴 후 잠시 목포에서 정명여학교 교장직을 수행한 일 말고는 전라남도 섬 지방을 다니며 전도인(傳道人)으로 살았다. 당시에 섬 지방에 변변한 숙박 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목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크고 작은 섬들을 찾아다녔다……자신을 위해서는 철저히 돈을 아끼고, 심지어는 집으로 배달되는 카드 샘플조차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이를 재활용하며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았다. 반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 대하여서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었다. 자신이 받은 봉급의 대부분을 군산에 사는 양딸 정금순, 김천배 부부가 운영하는 군산보육원에 보내 주었다. 고창의 행복보육원도 그가 돌보는 시설이었다. 루트 선교사는 은퇴 후에도 매주 1회씩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위로하였다. 그는 검소하고 겸손한 태도로 일생을 한국전도에 헌신하였다.
2018-12-06 15:55:02
49.xxx.xxx.169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9720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9799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21155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30657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7567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4350
1664
  내한선교사 / 27 / Hanson, Marjorie(미상, M).   문끄리스띠안     2020-07-08   21
1663
  내한선교사 / 28 / Hard Theodore   박성전     2020-07-08   8
1662
  내한선교사_42_Hoffman Clarence S.   3학년 2반 이상재     2020-07-08   10
1661
  내한선교사/57/McLellan, E. A.   조혜진     2020-07-08   26
1660
  내한선교사 / 49 / Keller Frank Goulding   임예창     2020-07-08   15
1659
  내한선교사/ 55/ MacRae, Frederick John Learmonth(1884-1973, AP) / MacRae, M. Hall   조동진     2020-07-08   8
1658
  내한선교사_12_Fraser, Edward James Oxley(1878-1977, CP) / Fraser, E. J. O. (Mrs.)   강예권     2020-07-07   9
1657
  내한선교사 / 18 / Goodsell Daniel A   김세현     2020-07-07   14
1656
  내한선교사 / 38 / Nelson Augustus Bryan (1)   손성원   -   2020-07-07   12
1655
  내한선교사 / 48 / Jones, George Heber   이호빈     2020-07-07   10
1654
  내한선교사 / 62 / Moore, James H.   현종훈     2020-07-07   2
1653
  내한선교사 / 9 / Forsythe, Wiley Hamilton   윤석인     2020-07-07   7
1652
  내한선교사/36/Henderson Lloyd Putnam   양승희     2020-07-07   18
1651
  내한선교사 / 58 / McPhee, Ida   주영찬     2020-07-07   30
1650
  내한선교사 / 51 / Swanson, Ererett E   김민석     2020-07-07   46
1649
  내한선교사 / 35 / Helstrom, Hilda L.   안상구     2020-07-07   51
1648
  내한선교사 / 1 / Edward Adams, Mrs. E. Adams Susan Comstock) (1)   양승일     2020-07-07   50
1647
  내한선교사 / 23 / Grove, Paul H.(미상, M) / Grove, P. H.(미상, M)   김태형     2020-07-07   61
1646
  내한선교사/24/Bigger. John Dinsmore   김정현1     2020-07-07   56
1645
  내한선교사/70/Winn, Rodger Earl   박철진     2020-07-07   46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980 / 전체 : 15,421,450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