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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Dunn, Elizabeth Whyte(1896-1986, AP)
 작성자 : 이영석  2018-12-06 16:08:33   조회: 1036   
 첨부 : 내한선교사 기말보고서 3-6 089 이동엽 이영석.hwp (665088 Byte) 
엘리자베스 던 선교사 / Dunn, Whyte Elizabeth (1896-1986)

Ⅰ. 기본사항

1. 이름: Dunn, Whyte Elizabeth / 던 / 한국명: 전은혜(全恩惠)
2. 생몰연도: 1896. 6. 6.-1986. 12.
3. 출신 및 소속: 스코틀랜드, 호주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3-1957
5. 연표
1896.6.6. 스코틀랜드 커크살디에서 출생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침
국내선교위원회 지도 아래 몬태그 선교회에서 단기간 봉사 후 전도 선교사로 승인
1923.8. 한국으로 선교 떠남
1923.9.-1923.12. 서울의 한국어 학교에서 한국어 한 학기 과정 수료
1923.12.-1928. 통영에 있는 스키너와 합류하여 사역
1929-1940. 거창 사역(진주에서 1년을 제외하고 계속하여 거창에 머무름)
1940.11. 일본의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다른 미혼여성들과 함께 한국에서 호주로 철수
1947.9.7.-1953.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으로 재입국하여 부산에서 사역
(1950.6.-1952. 이 기간 동안 한국전쟁 발발로 한국에 있을 수 없었음)
1953.10.-1957. 아이린 와킨스와 마산선교회를 열고 마산에서 사역
(1956년 부터는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야간학교 가르침)
1958.5.15. 송별환송을 받고 한국을 떠남
1958.6.3. 귀국(호주)
1958.- 은퇴할 때까지 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가르침
1986. 12. 사망

6. 가족사항
미혼.
Ⅱ. 선교사 소개: 던(Dunn, Whyte Elizabeth , 1896-1986)

1. 통영지역 순회선교로 큰 족적을 남김
엘리자베스 던은 스코틀랜드 커크살디(Kirkesaldy)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국내선교위원회 지도아래 몬태그 선교회(Montague Mission)에서 단기간 봉사한 후, 전도 선교사로 승인되었고 1923년 8월 한국으로 떠났다. 서울의 한국어 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그녀는 12월에 통영에 있는 스키너와 합류했고 장키미를 선생으로 삼고 한국어 공부를 계속했다. 사실상 그녀는 첫 임기의 대부분을 통영에서 보냈고 시골교회들에 대한 순회, 사경회 사역, 전도부인들에 대한 감독, 성경학원의 여성 후보자들 준비 등의 책임을 맡았다.
그녀의 사역은 1923년에 충무교회 통영선교부에 편성되어 교회를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2. 거창지역에서의 사역, 무엇보다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겼던 사랑의 여인 던.
1929년 휴가에서 돌아온 후에 던은 거창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향후 12년 동안, 진주에서의 1년을 제외하고, 그녀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줄 곳 순회, 시골여성을 위한 사경회 인도, 전도부인들의 감독, 성경학원에서의 교육 등 같은 일들을 하였다.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 후에 그녀는 다른 미혼여성들과 함께 한국에서 철수 하였다.
던은 원기동교회에 사경회차 방문했다가 와룡리에 정봉선과 심방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와룡댁의 남편 이남신이라는 중한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병세가 심하여 치료할 수 없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한 던은 차비를 주어 진주배돈병원에 가서 병이 완치 되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일로 인하여 교회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고 십 수 명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3. 세계대전 이후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 일대를 섬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던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1947년 9월 7일에 도착했다. 그녀는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경남의 변경지역들, 특히 그녀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던 거창, 진주, 통영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고 있던 사람들을 온화하게 격려하였는데, 특히 그들의 신앙을 지키느라 일제에 의해 옥중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그리했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안보와 관련해서 위험한 시기였다. 그 지역 구릉지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 여러 번 일어났다. 여러 세력들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싸웠기 때문에 그 때는 교회에게 어려운 시기였다. 여행은 어렵고 불편했다. 선교사들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을 떠나야 했고 1952년 말까지 돌아올 수 없었다.

4. 마산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씨앗을 뿌리다.
1953년 10월, 베스와 아이린 와킨스는 마산선교회를 다시 열었다. 베스는 마산의 감옥에서 여성죄수들을 위한 주간 학급을 운영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사상적 확신 없이 공산군에 의해 강요를 받았던 젊은 여성들이었다. 베스는 또한 시골 교회들을 방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환자요양소, 결핵 요양소, 양로원, 농아학교를 방문했다. 그녀의 마음은 시골 교회에 가 있었고, 거창과 진주 지역을 순회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노회의 승인을 받았는데, 노회에는 다른 여자선교사도 없었고, 조지 앤더슨이 떠난 이후 어떤 선교사도 노회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5. 한국에서 34년을 섬기며 백발이 되다.
1957년 경 던은 오랜 시간 순회활동의 피로와 교회분열의 긴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줄 곳 유머감각을 유지했다. 그녀는 이제 은퇴할 때라고 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말 했다. 1957년 한 교회 목사는 회중들에게 그녀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여러분 이 선교사 보이지요? 이 분은 34년 전에 매우 젊고 아름다울 때 이 나라에 왔습니다. 지금 그녀를 보십시오. 나이 들고, 백발이 있고, 미모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을 섬기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해 동안 던은 680명의 방문자와 만났다. 일부는 어려움을 말하려고 왔고, 일부는 병자들을 대표해서 병원에 소개서를 써달라고 왔고, 일부는 나환자 약을 구하러 왔고, 일부는 구제양식과 의복을 요청하러 왔고, 한 경찰은 50명의 고아들을 대표해서 왔고, 일부는 교회문제점들과 주일학교의 도움을 위해 왔고, 일부는 영어를 배우러 왔다. 1956년에 그녀는 800명의 혜택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야간학교에서 가르쳤다. 시골 교회를 74회 방문했고, 성경구락부도 많이 방문했고, 결핵요양소를 방문했다. 그녀는 여성 죄수들을 가르쳤고, 방학 중 성경학교들에서 가르쳤고, 거울 성경학교에서 가르쳤다.
베스 던이 1958년 6월 3일에 한국을 떠날 때 그녀의 동료들과 친구들은 슬프게 그녀를 아쉬워했다. 그녀는 은퇴할 때까지 여러 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가르쳤다. 베스 던은 1986년 12월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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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감사합니다!
2018-12-06 16: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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