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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uie, Hallie(1876-1949, MS)
 작성자 : 박태호_박혜진  2019-07-02 18:20:55   조회: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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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 선교사 / Buie, Hallie (1876-1949)

I. 기본사항

1. 이름: Buie, Hallie / 부이 / 한국명: 부의(孚義)
2. 생몰연도: 1876.7.27.-1949.6.22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09.9-1940.2.
5. 연표
1893 스테크 여자대학 졸업
1897 렉시턴 고등사범학교 졸업
1909 스카릿 성경학원 졸업
1909.9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원산에서 어학공부
1911.9 루씨여학교 교장으로 취임
1923.10 서울 배화여학교 7대교장으로 전임,
1925 고등보통학교로 승격
1932 기독교 조선 감리회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 종교교회 소속 목사로 주일학교 운동 이바지
1940.2 배화여학교에서 은퇴 후 귀국, 미시시피 거주
1949.6.22. 브루크해븐에서 소천


II. 선교사 소개: 부이(Buie Hallie, 1876-1949)

1. 구국 교육열에 대한 열망을 실현한 선교사
일제의 강압적인 탄압에 저항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3.1독립운동은 현실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3.1 운동 이후 해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등 독립운동의 역량을 집결시키며 그 활동을 활발케 했고 ,국내적으로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일제의 정책이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바뀐 것이다. 3.1운동에서 무력과 탄압에 대한 한국인의 강력한 저항과 반발을 경험한 일제는 표면적으로나마 유화적인 식민지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열강들의 일제 만행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과 규탄이 작용하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한국인의 독립 의지와 독립운동의 열기는 쉽게 사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력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 특히 3.1 운동을 통해 현실적인 실력의 차이를 뼈저리게 체험한 한국인들은 나라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쳤고 문화 정치의 다소 열려진 틈을 타 교육을 통한 독립의 길을 모색하였다. 전 사회적으로 교육 구국의 열기가 불타오르게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로 모여들었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 진학을 권유하고 후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이는 배화학당에 부임하였다. 그는 이러한 교육열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것을 한국의 독립의 도구로, 선교의 도구로 큰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구국교육 선교는 그 당시 젊은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매우 강력한 선교의 방법이었다.

2. 굳은 이상으로 선교한 부이
그녀의 교육이념은 굳은 이상으로 표현된다. 전 민족적 차원에서 크게 일어난 구국교육 열기 가운데서 배화학당은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때 배화의 교장직을 맡아 1923년에서 1939까지 16년 동안 전심 전력을 다해 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가 바로 부이 선교사였다. 그녀는 배화의 역사에서 설립자이며 초기 성장의 주역이었던 캠벨에 비견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이는 1876년 7월 27일, 미국 미시시피 주 웨손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미국으로 이민했는데, 아버지의 각별한 역사적인 인식과 조국애의 영향으로 이민하기 전의 조국인 스코틀랜드에서 1889년에서 1891년까지 교육을 받았다. 16세 때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1893년 스테크 여자대학, 1897년 렉시틴 고등사범학교를 각각 졸업하고 10년동안 교원 생활을 했다. 1909년 6월 스카렛 성경학원을 졸업한 후 그 해 9월 남감리교회 여선교사로 내한했다. 1911년 9월 원산의 루씨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 발전에 기여했으며, 1923년 10월부터는 배화 교장으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부이는 굳은 신앙과 뚜력한 이상을 지니고, 의지와 지혜에서 나오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다음과 같은 글은 그녀가 어떤 이상을 추구하며 자기 생과 신앙을 실현하였는지 알 수 있다.

나의 이상
내몸이 튼튼하게 건강을 길러,
모든 일에 힘차고 용맹이 있자.
내맘이 자유롭고 흠이 없어서,
진리와 아름다움 항상 가지자.

남에게 좋은 친구 집안의 사랑,
놀 때나 일할 때나 친절과 충심.
쉬지 않고 인생의 이상을 좇아,
하느님을 앎으로 최선을 찾자.

그녀는 제일의 이상으로 건강한 몸, 건전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꼽았다. 또한 진리와 아름다움이 그녀와 함께 항상 머물며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순전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항상 고상하고 훌륭한 인격을 추구하였으며, 이를 위해 지고지순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을 통해 자기 자신의 최고의 가능성을 찾아 실현하려는 높은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이 교장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고백하며, 배화인들의 항상 하나님과 함께 기쁜 생활을 하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큰 귀감이 되었고,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3. 배화학당의 내실화를 통한 구국교육선교의 확장
부이는 자신이 부임하면서 배화학당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분명하게 파악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사항이었는데 경제적 어려움과 학교 환경의 협소함에서 오는 역경, 하나는 캠벨 교장 이후 자주 교장이 바뀜으로 인한 교육철학과 방향의 부재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부이가 교장이 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교장직을 맡아 지도력과 교육철학의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1926년 12월 캠벨기념관을 신축하면서 학교 교사의 협소함을 해결하였다.
또한 부이는 이에 그치지 않고 배화학당을 배화 여자 고등보통학교, 배화여자보통학교로 승격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인준을 통해 배화학당은 확장성을 띄게 되었고 기독교 교육이 많은 젊은 여성에게 흘러들어갔다. 또한 이와 더불어 주일학교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 사학의 자부심을 끝까지 지켰다.
2019-07-02 18: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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