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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nrow, Marion Lane(1894-1986, M)
 작성자 : 조남현, 조요한  2019-07-02 21:52:16   조회: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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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로우 선교사 / Marion L. Conrow

Ⅰ. 기본 사항

1. 이름: 마리온 레인 컨로우 (Marion Lane Conrow) / 한국명: 간의로
2. 생몰연도: 1894.12.03. Freehold, Monmouth Co, NJ - 1986 .03. 05 oulder, Boulder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선교회
4. 한국선교기간: 1922 - 1962 (중간에 발생한 경력단절은 연표에서 소개할 예정)
5. 연표

1894: 12월 3일에 Freehold, Monmouth에서 출생
1904: 위치타로 이사,
1907: 이곳에서 College Hill 감리교 교회의 교인이 된다.
1909 - 1913: 위치타 고등학교에서 수학
1914 - 1918: Fairmount College에서 수학
1918: Fairmount College (현재는 Wichita University)에서 B.A 학위를 수여
1918 - 1920: Mulvane, Kansas의 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재직
1921 - 1922: Bleoit, Kansas에서 교사로 재직
1922: 한국에 입국하여 본격적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함
1922 - 1940: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작함
1920: 보스턴 대학에서 M.A학위를 수여함
1937: 시카고 대학에서 고급과정을 수료함
1940 - 1948: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잠시 귀국
1941 - 1948: Dean of Woman 과 Mcdendree 대학에서 영어교수로 재직
1941 - 1943: (같은 시기) Wichita city, Kansas에서 Y.W.C.A를 1년간 담당해서 지도함
1944 - 1947: Methodist Board of Missions 뉴욕 지부에서 부 사무총장으로 역할을 함
1948 - 1950: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화여대 영어 교수로 재직
1950 - 1952: 공산주의자라는 오해 때문에 일본에 2년간 채류, 이 기간에 Tokyo Woman's
Christian College에서 교수로 재직함
1952 - 1953: 6.25 전쟁 도중, 학교가 미군 방어선인 부산 아래로 이전해 그곳에 머물며
교수직을 계속함
1956: 이화여대 명예 박사가 됨
1960: 칸로 장학재단이 설립되게 됨
1962: 선교사 사역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함
1963: 위치타 주립대학에서 annual Almuni Award를 수여함
1986: Wing of Frasier Meadows Manor의 병원에서 오후 5시 25분경 사망

6. 가족관계

아버지: Henry Smock Conrow (1861-1945)
어머니: Mary Lavinia Perrine (1865-1915)
Ⅱ. 선교사 소개

1. 미국에서 촉망받던 재원이 미지의 땅, 조선의 선교사로 오다

그녀는 위치타 고등학교에서 수학한 후에 위치타 주립대학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1년간 안식기간을 보내면서 보스턴에 있는 학교에서도 공부를 계속했다. 선교사로써 사역을 위해서 그녀는 끊임없이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계속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에 2차 휴식을 가지는 시간에는 시카고에 대학에서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했다. 그녀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보내고 싶지 않은 재원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캔자스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다. 학력으로나 누리고 있는 삶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4년간 지속하던 교사직분을 내려놓고, 미국 감리교회로부터 파송받아 미지의 땅인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1920년대는 초반은 미국경제가 극도로 호황이었던 시기이다.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칸로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정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산업발전에 따른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영어교사였다. 매우 필요한 직업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매우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한 그녀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 치하에 있던 나라에 외국인 선교사가 오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2. 이화여대 교수로 사역하게 되다

그리고 그녀는 그 때부터 40년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교사가 되었다. 당시에 그녀는 위치타 대학에서 이화여자대학교를 후원하기 위해 파견한 것이었다. 1925년에 이화학당은 대학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문과 및 음악과가 설치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영어 및 영작문을 가르치게 된다.

그녀는 이화여대의 5대 총장인 A.진네트 월터가 총장으로 있을 당시 한국에 와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월터는 체육을 담당하면서도 학업지도나 행정적인 면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그랬던 월터를 도운 것이 또한 칸로이다. 칸로 선교사님은 월터와 모리스와 함께 ‘한국 클럽’을 조직하고 한국을 위해서 열심히 사역했다. 이 부분은 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3. 원치 않게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선교사님의 사역을 더 자세히 보기 이전에 칸로 선교사님께서 국 내외적인 상황과 내부적 선교상황의 어려움 때문에 잠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교사님은 감리교 소속 선교사님이었는데, 감리교 선교 상황이 1940년대에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감리교 선교회는 직전까지 한국선교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교육사업 뿐 아니라, 다양한민간 사업을 병행하면서 한국사회에 필요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선교부 재산에 대한 갈등이 상당하게 발생하게 된다. 정춘수와 양주삼의 갈등관계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주한 감리교 선교사들은 미일관계의 악화로 한국에서 철수할 때, 선교부 3개 재산(미감리교회 조선선교부 재산, 남감리교회 조선선교부 재산, 미 감리교회 전선여선교부 재산)의 관리를 양주삼에게 주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 의하면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각 기관 등 일체의 재산을 현직 감독과 이사에게 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린 각 선교부에 속한 재산을 양주삼 막사에게 위임했다는 것은 양주삼 박사 외에는 정황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두고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양주삼의 노년계획과 관련되어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또한 여선교회가 교회법 99조 규정에 따라 부인회로 넘어가게 된다. 이런 와중에 1940년 10월 9일에 전쟁이 가까워 올 조짐이 보이자 미국 정부는 갑작스럽게 귀국을 통고하였다. 이 때 칸로를 비롯한 많은 선교사 선생들이 생이별을 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미일 관계의 악화와 더불어 이런 국내외 적인 문제 때문에 선교사님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이화대학교를 두고 잠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광복후 1946년도, 전임교장 아펜셀라를 비롯한 교수들이 복귀하는 과정에 칸로 선교사님도 함께 복귀하여 다시 학생들과 학문을 가르치는 사역을 계속해 나갔다.

4. 이화의 스승이 되다

선교사님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선교사역을 지속적으로 해 나갔다. 그녀는 이화대학교에서 한국의 미래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선교사님은 6.25 전쟁이 한창인 당시에도 부산 이남에서 해야 할 사역들을 충실하게 감당하셨다. 그런 그녀의 사역을 이화대학교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화대학은 그녀를 조선인의 친구가 되어준 3명의 스승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한국을 향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기독교 정신은 그녀의 책에 잘 들어나 있다. 이화여대는 현재도 이 책을 매우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칸로 선교사님에게 1956년에 이화대학 명예 박사를 수여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영학관 2층에는 얼마전까지 그녀를 기념하기 위한 <칸로기념실>이 204호로 배정되어 있었다. 조사해 본 결과 현재는 그렇게 사용되고 있지 않음에도 이화여대는 그녀를 이화의 정신을 세운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5. 선교사님의 저서

이 부분을 조사하기 위해 실제로 이화여대를 방문했다. 칸로 선교사님게서 쓴 A textbook of English for Ewha University Freshmen을 보았다. 흑백사진으로 된 전경이 먼저 보이고, 뒤이어 정말 그녀가 이 책을 썼음이 드러나는 표지가 보였다. 언어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 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어떤 내용들이 오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당연히 영어 교본으로서 문법과 읽기 쓰기를 비롯한 언어적인 부분을 다루겠지만, 언어는 정보를 다루는 도구이기에 어떤 것을 통하여 언어를 가르치는가, 내지는 반대로 언어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가 궁금하였고, 곧바로 기초 영어를 가르치는 본 서의 콘텐츠를 읽어보았다.

선교사로써의 면모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Part 1에서 채플에 대해 다루는 Religious Services와 The Spirit of Ewha, Family Spirit등이 눈에 들어왔다. 여섯번째 챕터인 Religious Services에서 예배의 기초와 그 구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또한, The Spirit of Ewha에서는 이화여대가 Christian Ideal, 그 건학이념에 기독교적 이상향을 강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사회에서 처음 교육을 받으며 부상하고, 가정을 돌보기도 하였던 여성들에게 본 교재는 또한 기독교적 가정관도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이어 Part 2에서는 10과에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통하여 복음을 가르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사야서에서의 언약부터 마리아의 잉태와 출산을 비롯한 예수님 탄생에 대해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12과에서는 시와 노래, 이야기들과 상징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이러한 복음제시 및 복음에 대한 가르침은 더 넓고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6. 이화여대 학생들이 기억하는 칸로 선교사님
이후에 선교사님께서 실제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만큼 영학관에서 왠지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칸로룸이라는 곳은 없어졌고, 영학관 안의 교수님들과 조교분께서는 칸로라는 이름을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승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화여대는 그녀를 포함한 선교사님들을 기억하는 행사를 2016년 이화대학 개교 130주년기념 생하로 가진적이 있다. 영어교육에 크게 공헌했던 칸로 교수가 외국인 선교사 중 가장 오랜 기간인 40년 동안 이화여대에 봉직하며 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쳤다는 점을 그들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이후 교정에서 잠시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학생들은 칸로 교수가 저서를 통해 밝힌 이화의 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지적 지배와 아직도 구습에 따라 여자들에게는 교육마저 시키지 않던 그 사회에서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던 그 때의 그 정신이 잘 계승되었다는 느낌이 전해졌었다. 박물관에서도 선교사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화 100년사에서는 칸로 선교사님이 부임하자마자 영어교과서와 이화의 역사를 영문으로 쓴 “Our Ewha”를 저술했으며, 향후 과학적 교수방법을 개발하여 수많은 교사들을 양성한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내한선교사 기말보고서 입니다! 한 학기동안 감사했습니다!
2019-07-02 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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