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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Frey, Lulu E.(1868-1921, M)
 작성자 : 박일준  2017-06-30 20:19:56   조회: 2011   
 첨부 : 내한선교사기말보고서_M0256_2015222011_박일준.hwp (2779648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룰루 E. 프라이 / Frey, Lulu E. / 부라이(한국명)
2. 생몰연도: 1863.3.9-1921.3.1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893-1920.
5. 연표
1863.3.9. 미국 오하이오주 시드니 출생
1886. 벨폰테인학교 졸업
1892.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 졸업
1893. 시카고사범대학, 무디성서학원에서 선교사 예비훈련
1893.10.13. 미감리회 최연소 선교사로 내한(당시25세)
이화학당 교사로 영어, 성서강의
1894. 6. 풍토병에 걸려 일본으로 유양을 떠남
1896.2.11. 고종과 세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반일 감정 드러냄
1907. 페인에 이어 제4대 이화학당장으로 취임
1908. 학당 창립기념 행사와 메이퀸 선발대화 실시
1910. 한국여성의 고등교육 요람 대학과 설치
1912, 총독부의 정식 인가를 받음
1914. 유치원 및 유치원사범과 설치, 종합교육기관으로 성장
1915.11 선교사회의 참석 후 중국, 필리핀의 여성교육 시찰
1919. 3·1운동 시 학생의 보호와 석방을 위해 노력
1920. 안식년 휴가로 귀국
1921.3.18. 암으로 보스턴병원에서 사망

6. 가족사항: 없음


II. 선교사 소개: 룰루 E. 프라이(Frey, Lulu E. / 1863-1921)

1.한국선교사로서의 부름
프라이 선교사는 1868년 3월 9일 오하이오주 시드니에서 부친이 퇴역장교이며 약방을 경영하는 집안의 셋째 딸로 출생했다. 프라이선교사는 어렸을 때부터 활달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열 살즘 감리교인이 되어서 14세 때 세례를 받았고 벨폰테인(Belfontain)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1886년 벨폰테인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무렵 선교사가 될 결심을 하였는데, 18세가 되던 해 이웃집에서 빌린 선교잡지에 실린 ‘왜 그대는 가려고 하지 않는가’ 라는 선교 권고문에 깊은 감동을 받고 선교사로서의 삶을 결단한다. 그 이후 1889년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에 진학하여 1892년 6월에 졸업했고 이듬해 시카고사범학교에서 4개월, 무디성서학원에서 2개월간 선교사 예비훈련을 받았다. 이 무렵 한국에 있던 이화학당장 ‘페인’에게서 이화학당 교사로 와 달라는 편지를 받고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1893년 3월 미감리회 해외여선교부에서 정식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해 10월 13일 내한했다. 당시 그녀는 25세로 최연소 선교사였으며 이화학당 교사로 영어,성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여성들을 전도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1893년 10월 12일 금발에 파란 눈, 키가 큰 여성 선교사가 제물포에 상륙했다. 그녀는 18세에 세상을 바꾸는 보람 있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프라이 선교사다. 그녀는 선교 잡지 에 실린 ‘왜 그대는 가려고 하지 않는가’ 라는 글을 보고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미국 북감리회 해외선교회(WFMS)의 파송을 받은 프라이 선교사는 스크랜턴 선교사와 함께 이화학당의 교사로 쓰임받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매일 6~7시간을 한국어를 배우는데 할애했으며 한국 아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외우게 하거나 서양 동요를 부르게 하였고, 한국인 교사들을 통해 한글과 기초적인 한문을 가르치게 했다.
그녀가 한국에 왔을 당시는 청일전쟁(1894년) 전야였기에 불안한 시기였다. 조선의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던 때라 사역 초창기에 풍토병으로도 고생했다. 1894년 6월, 요양하러 일본에 갔을 무렵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일본군은 질서정연했고, 청국군은 무질서했노라 기록하고 있다. 1895년 10월에는 왕비 시해사건과 왕 유폐 사건, 친일 내각에 의한 단발령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혼란 속에서 프라이 선교사는 한국여성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그들을 전도하고, 교육시켜 밝은 미래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아주 어린 나이에 혼인을 위해 팔려가거나 양도된다. 그녀들은 남자 형제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그녀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프라이 선교사는 25세에 이화학당 교사로 영어와 성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사로 재임한 지 15년만인 1907년, 페인의 뒤를 이어 제4대 이화학당 당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듬해 최초의 중등과 졸업생 5명을 배출하였고 일반인은 물론 동료 선교사들까지도 반대하던 대학과 설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1910년 한국여성의 고등교육 요람이 된 대학과를 설치하였다. 대학과 1회 졸업생(김앨리스, 신마실라, 이화숙)이 배출되던 1914년에는 유치원 및 유치원사범과를 설치하여 이화는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종합교육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녀는 교사모집을 위해 수차 본국에 갔으며 대학과 교수로 월터, 하몬, 파이 등 유능한 인재를 초빙하여 교수의 질을 높였고 유치원 및 유치원 사립교육을 위해 브라운리를 데려와 한국유치원 교육의 기틀을 세웠다. 그녀는 또 학생 자치활동을 활성화시켜 이문회(以文會), 공주회(公主會) 등 학생 서클을 조직하고 학생들 스스로 윤영하게 하였으며 학교 창립행사인 메이데이, 운동회 등도 처음으로 시작하여 여성운동의 큰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3.한국의 아픔까지 품은 사랑의 선교사
프라이 선교사가 1893년에 한국 선교사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뒤 프라이는 1919년까지 26년 동안 불우한 조선 왕조의 시련을 지켜보면서 오로지 한국 여성을 위한 선교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다. 프라이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강제병합, 1919년 3.1운동의 격랑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경험하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감당했다.
프라이 선교사는 자신의 서신들을 통해 한국의 상황과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895년 10월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을 보면서 일본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특히 “단발령이 갓이나 망건 등을 만들어 파는 수공업 장인들을 거리로 나앉게 만들었다”는 1895년 12월 3일에 보낸 기도편지는 단발령의 정치적 의미보다 서민의 삶에 훨씬 더 많이 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896년 2월 11일 아침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장면을 편지에 쓰면서 확고한 반일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을사늑약을 앞둔 1904년 1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한국의 당시 상황을 “마치 친한 친구의 임종을 지키는 기분입니다”라고 표현했다.
고종이 죽던 1919년, 그 해 2월 8일에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요구선언이 있었고 이화학당 학생들도 들썩였다. 3월이 되자 만세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때 프라이 선교사는 학생들을 염려해 메인홀 지하실에 들여보내고 대문을 가로막기도 하였다. 프라이 선교사는 얼마 뒤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일본 경찰이 교회 안에 23명의 교인을 가두고 불태워 죽인 사건이었다. 프라이 선교사는 그 마을로 내려가 5~6주 동안 천막을 치고 머물면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뒷수습했다.
이렇게 프라이 선교사는 한국에 있는 동안 여성들을 돌보며 교육시킨 선교사역 이외에도 한국 사회의 아픔과 눈물까지도 품고 끌어안았던 선교사였음을 그의 활동과 행적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즉 ‘이화’ 라는 존재만을 사랑한 것이 아닌 ‘한국’을 사랑했던 참 선교사였다. 일본의 지배 아래서 고통 받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며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귀하게 감당했다.

4.나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
프라이 선교사는 페인 선교사와 함께 이화학당(지금의 이화여대)을 운영하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두 사람은 협력해 최초의 교과서 <젼테공용문답>을 발간했고, 미국 교과서 <자연지리학>과 <정치지리학>을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매일통상기도와 주일예배를 생활화했으며, 일 년에 한 번 부흥회를 열어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그녀의 노력에 힘입어 1893년 김정동이 주체가 되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최초의 기도모임이 생겨났으며 을사늑약 이후부터는 조신성 선생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매일 수업 중간에 일정한 시간을 내어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을 가졌다.
1919년 프라이 선교사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그녀는 떠나지 못했다. 만세운동으로 학생들이 구속되고, 교사였던 박인덕은 강의하던 중 체포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프라이 선교사는 경찰들로부터 박인덕 선생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서까지 동행했다. 감옥에 있는 선생에게 깨끗한 이부자리와 사식을 넣어주고, 영치금도 줬다.
프라이 선교사는 1921년 3월 18일 오전 6시, 밀톤 매사추세츠의 여동생 집에서 눈을 감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내 가족,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당시 미국 교포신문 <신한민보>는 1921년 3월 31일자 신문에 “한국의 좋은 친구를 잃어”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그녀의 공로를 기렸다.
프라이 선교사는 평생을 선교와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25년은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고, 나머지 28년은 한국여성 선교와 교육 사업에 바쳤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했다. 한국사람들이 조국을 되찾고 세계로 나아가 다른 민족을 위해 일하는 유능한 일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개척자이자 참 스승이었다.
2017-06-30 2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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