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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hepping, Elisabeth Johanna(1880-1934, SP)
 작성자 : 이주성  2017-06-28 11:42:43   조회: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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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Shepping, Elisabeth Johanna (셰핑 / 서서평 / 독일 / SP)
2. 생물연도: 1880-1934 독일에서 출생
3. 출신 및 소속: 독일 /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2년 3월 ~ 1934년 6월. 22년
5. 연표
1919 미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서울 세브란스병원, 군산 구암예수병원에서 근무
광주 제중병원 간호원장으로 봉직하면서 고아사업 및 나환자 간호
1922 불우한 여성 대상으로 교육(->이일성경학교)
니일의 회사로 이일성결학교 건물준공, 초대 교장으로 취임
1923 한국간호협회 창설, 국제간호협회 가입
한국여자기독교절제연맹 창립, 검소 절제생활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과 기숙사비 보조
1934 골수염, 간장염 등으로 사망, 의학연구에 신체 기증
6. 가족사항
기록없음


II. 선교사 소개

테레사 수녀는 힘없고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그는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서 빈민, 병자, 고아들을 위한 헌신을 보여주어 인류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존경받아 마땅한 봉사자들 중에는 이름 없이 살다간 사람도 많다. 그 중에서 조선의 테레사, 푸른 눈의 조선의 어머니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쉐핑은 어렵던 조선말에 백성과 함께 했던 선교사이며 간호사이다.


푸른 눈의 어머니 서서평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조선백성들... 나라를 팔아넘긴 자들은 자손 대대로 풍요롭게 살 길이 열리는 순간이지만,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하던 조선백성들에게는 더욱 피폐한 삶이 있을 뿐이었다.
힘없는 백성, 가난한 서민, 멸시받는 거지와 따돌림 받는 나병 환자들... '엘리자베스 쉐핑'은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가 간 ‘성자’였다. 조선인도 아니고 푸른 눈을 지닌 독일계 미국인이었던 쉐핑(서서평)은 나병환자들에게 조선인들의 푸른 눈의 어머니라 불렸으며, 조선의 테레사로 비유되기도 한다.
어렵던 조선인들에게 푸른 눈의 어머니로 비유된 엘리자베스 쉐핑의 본래 이름은 '엘리제 요한나 쉐핑'. 쉐핑이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며 가진 이름이 엘리자베스 쉐핑.
그녀는 조선에 오며 '서서평'이란 이름을 가진다. 32살에 조선에 와서 22년간 빈민자들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1912년 서서평(쉐핑)은 조선어를 하고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으며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은 조선 사람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쉐핑은 선교사였다. 간호사로 조선에 파견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는 것을 보고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서서평으로 살며 한국 간호학계의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흔히 문둥병이라고 부르는 나병(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소병환자의 치료에도 공을 세웠다. 그래서 당시 조선인들에게 푸른 눈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여성의 교육과 불우아동 봉사에 이르기까지 조선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서서평은 겉모습은 서양인이었지만 마음은 완전한 한국인이었다. 우리말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언어를 구사하려 노력했고 우리말 발음은 정확했다. 한글말살정책이 시행되던 일제 때 한글 사용을 강조했고 여러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영어와 한국어로 병기되던 간호회지와 조선간호부회 회칙에도 한국어만 사용하도록 못 박았다. 3·1운동에도 관여해 교도소에 갇힌 최흥종에게 필수품을 차입해주기도 했다.
그의 성격은 완벽을 추구하고 직설적이며 급했다. 그래서 자신의 급한 성격을 다스리고자 성을 ‘천천히’라는 뜻의 서(徐)씨로 정했다. 그는 스스로 한국인의 문화 적응에 앞장섰다. 다른 선교사들이 미국식 삶을 고수하고 좋은 건물에서 살거나 여가로 사냥을 즐긴 반면, 그는 조선 농촌여성과 같이 무명 베옷을 입고 맞는 신발이 없어 남자 고무신을 신었으며 보리밥에 서양인들이 즐겨먹지 않는 된장국을 먹을 정도로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동아일보에서 그의 집을 ‘찌그러진 집’으로 소개할 정도로 무너져가는 양철지붕의 흙집이었지만 집을 가꾸지 않았다. 또 그는 어떠한 잡기나 오락도 하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 온전한 것을 드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교사는 생활비로 3원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쉐핑은 그 중에서 자신을 위해 쓴 돈이 겨우 10전 밖에 안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불우한 조선인을 위해 사용했다. 불우한 아동들을 14명이나 입양해서 키웠고 '이일학교'와 '조선간호협회'도 세웠다.
1934년 서서평이 운명할 때, 가지고 있던 것은 겨우 반장짜리 담요와 동전 7개였다. 풍토병과 과로로 숨졌지만, 놀랍게도 영양실조 증세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침대 맡에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서평은 조선에 와서 선교사역을 마칠 때까지 스프루(Sprue)라는 일종의 만성흡수불량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는 유능한 간호사였지만 여러 역할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가중되고 건강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직접적인 사인인 영양실조까지 보태져 그는 임종 전 약 4개월 동안 병과 사투를 벌였다. 수술을 받았으나 1주일 후인 1934년 6월 26일 새벽 4시 소천하고 말았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할렐루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당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는 시체를 해부해 연구자료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원인을 규명해 다시는 자기와 같은 환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신을 기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시신기증은 놀라운 일이었다.
장례식은 7월 7일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진행됐다.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과 불교인, 일본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참석했다. 모여든 사람들이 “어머니 어머니!”라고 목 놓아 우는 통곡소리는 마치 비행기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이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 전 세계에 파견된 수많은 여성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 파견 선교사로는 유일하게 ‘가장 위대한 선교사 7인’중 1인으로 선정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Not Success, But Service)라는 말은 그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벗에 의해 발견된 그의 좌우명이었다. 서서평의 섬김의 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가 죽은 지 80년이 지난 오늘도 그를 흠모하고 그 뒤를 따르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2년 3월 17일 광주 기독간호대학 오웬기념각에서는 ’서서평 선교사 내한 100주년 기념예배’가 열렸고, 1천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그를 추억했다. 그의 삶을 다룬 책은 고 백춘성 장로(광주신안교회)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쓴 전기 「천국에서 만납시다」(1980년)와 내한 100주년을 기념해 나온 평전 「조선을 섬긴 행복」(양창삼 한양대 명예교수),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양국주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대표) 등이 있다. 그러나 저자들의 말대로 서서평의 방대한 삶을 모두 담기에는 책 한 권은 부족할 정도다.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

조선의 테레사, 조선인들의 어머니, 푸른 눈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엘리자베스 쉐핑은 1880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초년은 불행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한살 때 사망하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할머니 품에서 자라야 했다.
할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래서 쉐핑은 카톨릭 교구학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사망한 후 아홉 살의 엘리자베스는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쉐핑은 미국에서 어머니를 만나는데 성공하고 뉴욕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학교에 들어갔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탓인지 불쌍한 이웃을 돕는데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낮엔 간호사로, 밤에는 선교사로 봉사활동을 했다.
이때 엘리자베스 쉐핑은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데,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와 충돌이 있었고, 결국 어머니는 그녀를 내쫓아냈다. 그런 쉐핑에게 친구가 "조선에 훈련된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주었다. 그녀는 조선으로 갈 결심을 했고, 기독교 교파인 남장로회에서 파견을 해 주었다.
1912년 엘리자베스 쉐핑은 조선에 도착했다.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이름도 한국식으로 서서평이라고 지었다. 간호선교사로 새로운 삶을 맞는 기대감 가득한 시점이지만, 그녀에게는 조선인들의 현실이 참담하기만 했다. 처음 맡은 일은 전라도에서 간호사 양성과 기독교 선교활동이었다.
그 후, 서울의 세브란스에서도 근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3.1운동이 터지자, 조선인들을 치료해 주고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해주었다는 이유로 일제는 서울 활동을 금지시켰다.
1920년대에는 다시 전라도로 내려가 봉사활동을 하였다. 방문간호과 공중위생을 힘써 일했으며, 인신매매나 공창폐지운동에도 참가했다. 엘리자베스 쉐핑은 길을 가다가도 머리가 지저분한 여성을 보면 손수 빗질을 해 주고, 속옷이 보이거나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성이 있다면 옷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더불어, 노예처럼 살아가며 인신매매를 당하던 소녀들을 구출하여 교육해 주고,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인물들로 키워냈다. 서서평은 14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며, 나병환자의 아이들을 입양하도록 주변에 알리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쉐핑의 공헌

태생은 독일계 미국인이지만 철저히 한국인으로 산 서서평. 그녀는 한국 나병환자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조선시대의 나병환자는 전염성 때문에 따돌림 받고 멸시를 당했다. 그런 환자들을 보살피고 보듬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도왔다. 쉐핑이 만든 나병환자 시설도 주변 주민들이 반발을 하여 결국 시외로 옮겨 새로 만들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쉐핑이 목사님과 서울에 상경했을 때 나병환자들이 모여서 대행진을 벌인 적도 있다. 이로 인해 일제총독부는 결국 소록도에 나병환자 단독시설을 허락하고 지금의 국유지인 전남 소록도가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서서평이 1922년 이일학교를 설립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처음엔 학대받는 여성들, 배울 기회를 못 가진 여성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침실에 모여 하던 공부를, 미국인 친구의 후원을 얻어 정식으로 지은 것이 이일학교입니다. 학교 이름이 이일인 것은 미국 친구의 이름이 Neel이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지금의 '한일장신대학'입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쉐핑이 선교사였기에, 조선인들에게 성경의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해방의 꿈을 가지도록 도와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자신의 월급을 쪼개서 운영비를 마련하며 시작한 이 사업은 한국의 문맹퇴치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서서평은 전도를 위해 영문 전도지를 번역했고 전도대를 편성해 전라도 일대를 다녔다. 육로로 때로는 수로로 다니면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찾아가 가가호호 방문하며 복음의 씨앗을 멀리 그리고 넓게 심었다.
그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조랑말을 타거나 달구지를 타고 나가 전도했다. 호랑이와 강도가 출몰하는 고개도 말을 타고 넘을 정도로 두려움이 없는 ‘여걸 선교사’였다. 또 1천명분의 일을 할 만큼 열정과 근면함이 남달랐다.
그는 전도만 한 것이 아니라 부인조력회(현 여전도회전국연합회)를 만들고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도 힘썼으며, 일종의 노방전도인 ‘확장 주일학교’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 운동으로 주일학교가 활성화되면서 1922년 한국주일학교연합회가 창립됐다.
일제강점기 초기만 해도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으며, 힘없는 계층의 여자들은 성매매에 희생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한 달이나 걸려 봉사를 다녀온 어느 날, 엘리자베스 쉐핑은 조선 여인들의 인권을 안타까워했다. 부인이면 "대전댁"같은 명칭을, 어리면 "큰년, 작은년"같은 명칭을 이름대신 불리며, 자기 인격권이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사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일했다. 또한 1923년엔 조선간호부회를 조직하여 국제간호협의회에 가입시키려고 노력했고, 이것이 지금의 한국 간호협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쉐핑은 1934년 만성풍토병과 과로로 숨졌다. 그녀가 남긴 것은 동전 7개와 강냉이가루 조금, 그리고 담요 반장이었다. 그나마 있던 담요마저도 길거리의 거지를 위해 반을 잘라주었기 때문. 서서평의 장례식에는 도움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조선인을 위한 푸른 눈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유언에 따라 시신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침대 맡에 있던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문구는, 이기적인 행복만을 쫓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7-06-28 11: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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