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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ording, Maren P.(?-1957, M)
 작성자 : 김재욱, 김윤아  2019-07-01 23:32:52   조회: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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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렌 보딩 선교사 / Bording, Maren P.

3학년 2반 2016210080 김윤아
3학년 2반 2016210081 김재욱

Ⅰ. 기본사항

1. 이름 : Maren P. Bording / 마렌 보딩 / 한국명 : 보아진(保雅鎭)
2. 생몰연도 : ? ~ 1957
3. 출신 및 소속 : 덴마크,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 1922 – 1941
5. 경력
1916년 미감리회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선교활동
1922년 한국으로 전임
1923년 공주로 파송되어 의료선교
시약소에서 진료활동, 영아보건사업으로 전도부인을 두어 유아진료소 개설
1929년 미국 독지가의 후원으로 현대식 건물 마련
유아진료소 외에 조산원, 우유급식소, 간호학교 등 운영
1938년 대전에 영아관 설립, 충남지역 전체 관장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

Ⅱ. 선교사 소개 : 마렌 보딩(Maren P. Bording)

1. 조선 선교 초기 복음의 빛 비춘 여선교사 재조명
조선 선교가 시작된 1884년부터 1945년까지 이 땅을 찾은 선교사는 모두 1,529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선교사는 1,114명으로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 선교사의 헌신과 수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 선교사의 사역 분야는 교육기관이 45.4%, 사경회 및 성경학교가 32.8%, 의료기관이 19.4%, 복지시설이 7%이다.
여성 선교사들은 주부 또는 전문직업인으로 조선에 들어와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남성뿐만 아니라 조선 여성들의 의식 구조와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다. 홀의 제자인 박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였다. 스크랜턴의 양녀인 여메리는 여성교육에 앞장선 근대 여성 지도자였다. 또한 성경공부 등 교육을 통해 한국 교회성장의 초석을 마련한 것에 지대한 영향은 여성 선교사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여성 선교사가 한국 여성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이런 활약에 비해서 남성 선교사와 같이 조명을 거의 받지 못했다.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소속 덴마크 출신의 마렌 보딩 선교사도 이와 같다. 그녀의 눈물어린 헌신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다. 지금부터 그녀가 그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선 땅에서 얼마나 큰 헌신을 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2. 한 여성의 조선 선교
여성 선교사 마렌 보딩(Maren P. Bording)은 1923년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의해서 공주로 파송받았다. 그녀는 공주로 도착하자마자 공주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던 파운드(Norman Found)와 함께 순회 방문 진료를 시작하였다. 집집마다 부녀자와 아기들의 진료를 하던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 생명 부지뿐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가지 못하던 한국유아들을 목격했다. 그녀는 파송된 이듬해인 1924년 본격적으로 유아복지 사업을 착수하였다. 우선 진료소 방 한 칸에서 ‘유아진료소’를 시작하였다. 마렌은 아기들의 질병과 건강관리를 주로 하였다. 또한 유아를 위한 순회 방문 진료 역시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나갔다.

3. 유아복지사업(Infant Welfare)
한국에서 선교활동이 시작도니 지 35년이 지난 1920년대에도 아기들의 생활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시기에 복음주의선교연합공의회(Fed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는 고아원, 갱생의 집, 소년원, 정신병원, 나환자촌, 태아와 농아 시설 등 사회사업 활동을 서로 협력하자고 제안하였고, 대화사회복지관도 이 시기에 개관하였다. 북감리교회는 공주, 평양, 해주, 제물포에 공중위생과 아동복지를 위한 센터를 개설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주에 파송된 마렌 보딩 역시 진료소 일과 더불어 부녀자와 어린이를 위한 방문 진료 과정에서 아기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특별한 지원조직 없이 개인적으로 유아복지사업을 시작하였다. 마렌 보딩은 이미 보고서를 통해서 100명당 42명의 아기들이 2살 전에 죽어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역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유아복지사업은 1924년 1월 매우 추운 어느 월요일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기독교 진료소와 연계하여 유아들을 위한 일들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엄마들에게 아기를 데려오라고 초청하였다. 이 때 8명의 엄마들이 편견 없이 응했다. 그들 모두는 간호원(한나 샤프)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기들은 4x8피트인 내 방에서 모두 검진을 받고, 몸무게를 재고, 등록을 하였다. 매주 월요일은 우리의 진료일이었다. 첫해에 나는 약 80명의 아이들을 병적에 올리고 진찰을 했다. 매주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평균 25명이었다.”

마렌 보딩은 유아들을 위해 거의 무료로 1,400번의 순회방문 진료를 했었다. 이처럼 유아진료소는 유아복지사업의 시작이었다. 아기들을 위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 어머니들은 ‘자모회’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 위생과 육아에 관한 것들을 가르쳤다. 이들은 아기들을 단정하게 차려 입혀서 데리고 나왔다. 유아진료에서 비롯된 자모회는 어머니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제 이들은 자모회에서 성경부인의 가르침을 받았다.

4. 우유급식 사업
유아진료소를 통하여 공주지역 어머니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나갔지만 영양부족이나 질병으로 인한 유아사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았다. 마렌 보딩 역시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보고서에서 “3살 이하 아기에게 하루에 1-2병의 우유를 먹일 수 있다면, 그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었다. 당시 우유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익술한 것이었지만 조선 사람들은 소젖을 먹는다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실제 우유는 선교사들이 들어온 이후에야 비로소 익숙해진 음식이었다.
우선 급식을 위해 우유병과 꼭지를 소독할 수 있는 우유부엌이 꼭 필요했다. 실제 우유부엌은 우유급식 시작 당시 하루에 100병의 우유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렌 보딩은 간호사, 성경 부인과 함께 우유부엌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시작하였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의지하여, 전도부인과 두 명의 간호사와 함께 건물문제를 놓고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서 기도하기로 했다. 특별기도회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계획이 미감리회 연선교사회에 전해졌고, 몇 달 후 미국의 어느 노신사가 건물을 위해 기부를 약속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마렌 보딩은 그 때의 감격을 “그 날, 기도회는 감사기도회로 바뀌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하였다. 기존 건물을 증축하는 방식으로 1926년 6월 공주 지역에 최초로 ‘밀크 스테이션(Milk station)’이 개설되었다. 이제 별도로 개설된 건물을 통해 우유급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유급식 사업을 통한 효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곳에 120명의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등록되어 있다. 30명에서 40명 사이의 아기들이 클리닉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의 우유급식소 아기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방문을 한다. 한 달 동안 클리닉에 오기 어려운 경우 나와 다른 간호사를 통해서 방문 진료를 받는다. 지난 해 동안 한국의 전체 유아 사망률 35%롸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복지를 받는 유아 사망률은 5%였다. 우리의 사업이 빛을 본 것이 아닐까? 우리의 아기들은 사회계층을 막론하고 태어나서 4세까지 있다. 엄마들은 아기들을 데리고 도움과 조언을 받기 위해 온다.”

이처럼 마렌 보딩은 1927년 보고서에 1924년 1월에 시작한 유아복지사업과 1926년 6월 정식으로 문을 연 우유급식소 사업을 통해 1-2년 만에 유아사망률이 5%로 낮아진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5. 유아복지사업의 대전 확장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마렌 보딩은 우유급식사업을 포함한 유아복지사업을 대전으로 확장하였다. 1932년 도청소재지가 철도가 놓인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인구가 이동하였고 센터에 다니거나 우유를 타가던 많은 어머니들이 대전으로 이사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1932년에 대전에서도 같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렌 보딩은 한국인 간호사 한명과 함께 공주와 대전을 분주히 오가며 진료소 업무와 전반적인 감독을 수행했다. 대전에서의 사업은 임시로 사용하고 있던 장소가 비좁아져 건물을 지어야 할 상활에 이르렀다. 다행이었던 것은 대전 당국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렌 보딩은 정부 관리들과 주민들의 우호적인 반응과 협조를 보면서 대전 지역 유아복지사업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일제의 관리이건 한국인 관리이건 그녀의 유아복지사업은 많은 혜택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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