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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Esteb, Kathlyn M.(1880-1960, NP)
 작성자 : 박아롱  2017-06-30 19:27:22   조회: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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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Esteb, Kathlyn M. / 에스텝/ 한국명 : 예사탑 芮思塔

2. 생몰연도 : 1880.12.29.- 1960.09.2.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 1915.4.19.- 1940

5. 연표
1880.12.29. 미국 미주리주 킹스턴에서 출생
1903 Chicao Bible Training School에서 공부했고 Asubury Hospital을 졸업
1906 General Memorial Hospital을 졸업
1907 New York State examination에 합격
1915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
Medical College와 Nurses’ Training School에서 가르침
1922 청주선교부로 이전하여 의료선교 및 복음전도
1922-1929 소민의원 관리 및 운영
1929 노두의(O. S. Lowe)박사와 청주 소민의원 운영
1939 지방전도로 전도지 3만매 배포
1940 안식년으로 귀국
1945 선교사 은퇴
1960.09.2 캘리포니아에서 사망

6. 가족사항
조카 : Mrs. I. W. Kilworth


Ⅱ. 선교사 소개 : 에스텝 (Esteb, Kathlyn M. 1880-1960)

1. 그녀는 누구인가?

에스텝(Esteb, Kathlyn M. 1880-1960)(Esteb, Kathlyn M. 1880-1960)은 1880년 12월 29일 미국 미주리주 킹스턴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1903년 Chicao Bible Training School에서 공부를 마쳤고 Asubury Hospital을 졸업했다. 또한 1906년까지 General Memorial Hospital을 다녔다. 그리고 1907년 New York State examination에 합격하였다. 이렇게 간호사였던 그녀는 한국 복음을 위해 쓰임을 받도록 준비되어진다. 그리고 1915년 북장로교 선교간호사로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먼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근무하게 된다.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간호교육학교와 Medical College에서 가르치면서 간호사 육성에 힘을 쓰게 된다. 그녀는 한국 선교간호사로서 결혼도 하지 않고 한국에서 25년간 헌신하였다. 그리고 1940년 안식년을 이유로 미국에 갔다가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귀환하지 못하였다. 그녀의 선교사로서의 삶은 오로지 한국에서만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그녀는 194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은퇴하게 된다.

2. 한국의 복음전도를 위해 내한한 간호선교사

우리나라에 서양의 근대 의학과 의료가 도입된 몇 가지 통로들 가운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내한한 선교의료인들의 활동이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그녀가 한국에 내한한 시기도 일제 강점기 시대였다. 국내외 정세는 격동하던 시기이고, 그 당시에는 전염병이 만연하였다. 그 당시에는 현대 사회의 병원과 같은 역할로서 내약방, 전의감, 혜민국, 제생원 등과 같은 의료기관이 설치되어 운영될 뿐이었다. 병원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 당시 사람들은 귀신과 악령을 믿고 축사를 자주하였으며, 미신과 굿 등으로 병을 치료해야 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근대 의학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1884년 알렌선교사를 시작으로 해서 일제 식민 당국에 의해 서양 선교사들이 전면적으로 축출되는 시기 1941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료 선교사들과 간호선교사들이 한국에 내한하게 된다. 그 가운데 그녀가 있었다.

1915년 한국에 내한한 에스텝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미국에서 간호교육을 받고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교육에도 쓰임을 받았다. 의학대학과 간호교육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후임을 양성하였다.

3. 청주 소민병원 -“기사, 간호사, 약 조제사”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던 그녀는 1922년 청주선교부로 이전하여서 청주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미국 북장로교는 1904년 청주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청주 및 근교지역에서 선교 및 의료, 교육활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하였다. 먼저 교회의 설립과 운영과 관련하여 1904년 민노아가 청주에 내려왔을 eo에 이미 설립된 교회들은 7곳이었다. 여기에 1904년 청주읍교회를 선교거점교회로 삼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을 순회하고 장날 모인 민중들에게 문서 전도한 결과 1914년 조직교회 1개, 미조직 교회 36개, 교회당이 있는 교회 34, 세례교인 544명, 교인총수1423명으로 나타난다. 그 후 1920년엔 조직교회 1개, 미조직교회 44개, 교회당이 있는 교회 31개, 세례교인 582명, 교인총수 1782명, 1924년엔 70개 교회, 1940년엔 81개의 교회 등으로 점차 발전하였다.

의교사업과 관련하여서는 1907년에 널 의사(M. N. Null)가 3개월 동안 청주 선교부에서 일하였고 후임인 부반서 의사는 1908년 청주 선교부에 상주하면서 처음엔 민노아의 기와집에서 진료소를 열었고 1912년부터는 서양식 병원시설을 갖추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건물들은 서양식 기법으로 건축한 건물이라고 해서 양관(洋館)이라고 불렸다. 주택, 병원 등 총 여섯 동의 건물로 1906년 선교사 주택(현 포사이드관)을 시작으로 하여 1912년까지 네 동의 선교사 주택과 소민병원(현 던컨 기념관)을 건립하고 1932년을 끝으로 성경학교(현 부례선 기념관)를 세웠다. 1908년 미국 던컨부인이 병원 건축을 위해 헌금하여 1912년 완성된 청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소민병원은 주로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을 진료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좋지 않았던 시절 언덕위에 병원이 환자들에 불편해서 기피하자 사람들이 왕래가 빈번한 청주제일교회옆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주로 입원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던컨기념병원'으로, 한국인들에게는 '소민병원'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11년에 255명의 환자를, 1912년엔 4000명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다음으로 지돈 의사는 1914년 청주에 왔으나 의사면허 문제로 진료행위를 못하고 청주 선교를 보좌하다 1916년 1월에 가서야 의료선교사업을 재개하였다고 한다. 1918년 지돈 의사가 떠나고 1929년 노두의((O. S. Lowe) 의사가 오기 전까지는 청주선교부의 의료사업은 임시 고용된 한국인 김영철 의사와 미국인 에스탑 간호사에 의해 약국과 순회 진료를 운영하는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4. 조력자이자 전도사였던 에스텝

1922년부터 청주 소민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간호사들을 관리하였고, 간호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그녀가 일하기 시작할 때에는 선교사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소민병원을 1929년 노두의((O. S. Lowe) 의사가 선교사가 오기 전까지 운영을 도맡았다. 그녀는 마을 장날 진료를 하는 식의 지방 순회 진료를 하였고, 체계적인 의료와 기독교 복음으로 환자들의 미신과 악령을 보살폈다. 청주지역을 한국 의사와 돌아다니면서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기사, 간호사, 약 조제사”라고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청주지역에서 의료 사업과 관련하여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비록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지만 소민병원을 운영하고, 관리하였으며, 청주 지역을 순회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진료하였다. 의료사업으로 그녀는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나마 의료 사업의 경우에는 교육 사업과는 달리 그 취지와 특성에 의하여 기독교의 탄압 속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1929년 드디어 노두의(O. S. Lowe) 의사가 청주 소민병원에 부임하자 그녀는 그를 도와서 소민병원을 운영하였다. 노두의 선교사는 간호선교사 에스텝(Kathlyn M. Esteb, 예사탑)의 도움을 받으며 활발한 의료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의 원장 재임 시절인 1930년대 후반 소민병원의 환자 수는 5000여 명에서 8000여 명으로 늘었고, 1936년 한 해 동안 병원을 통해 배포된 전도지가 5500매에 달했다. 1937년 봄 청주를 휩쓴 물난리 때 소민병원은 청주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 노두위(O. S. Lowe) 선교사는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여 청주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또한 복음전도사이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1939년에는 지방전도로 전도지 3만매를 배포하기도 하였다. 의료사업이 그녀의 주된 복음전도 방법이었지만 전도지 배포 또한 그녀가 담당했던 몫이었다. 그녀는 한국에 내한한 1915년부터 1940년까지 한국복음을 위해, 한국인들의 의료사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녀가 한국에서 선교를 한 기간은 무려 25년이나 된다. 기록에의하면 선교간호사들의 활동기간이 12.1%라고 본다면, 그녀는 다른 어떤 선교사들보다도 한국 복음을 위해 오랜 기간 최선을 다해 헌신한 것이다.

5.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에스텝

25년의 기간 동안 한국 복음을 위해, 의료사업을 위해 헌신하였던 그녀는 1940년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한국에 다시 돌아오려고 하였지만 태평안전쟁의 발발로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당시 소민병원의 선교사 이자 의사였던 노두의(O. S. Lowe)선교사가 1941년 2월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강제 추방이 되자 실제상으로 소민병원은 문을 닫았다. 이것만 보아도 에스텝, 그녀의 역할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돌아 올수 없었던 그녀는 1943년부터 1945년 동안 뉴욕에서 보조 관리자로 지내다가 그 해에 북장로교 외국인선교사를 은퇴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았던 에스텝은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한 것 같다. 그녀의 조카 Mrs. I. W. Kilworth와 함께 살다가 1960년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하게 된다.

홈페이지에 들어올수가 없어서 이제사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2017-06-30 19: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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