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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oper, Alfred Cecil(1882-1964, ANG)
 작성자 : 조진우, 진상윤  2019-07-02 11:07:00   조회: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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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실 선교사 / Alfred Cecil Cooper (1882-1964)

I. 기본사항

1. 이름: Cooper, Alfred Cecil / 세실 쿠퍼 / 한국명: 구세실(具世實)
2. 생몰연도: 1882.10.27. - 1964.12.17.
3. 출신 및 소속: 영국, 성공회
4. 한국 선교기간: 1908.2.11. - 1955.1.6.
5. 연표
1882. 10. 27. 인도 봄베이 출생
영국 브레드필칼리지,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칼리지 졸업
커디스턴(Cuddesdon) 신학교 졸업
1907. 영국에서 사제서품 받음
1908. 2. 11. 영국성공회 선교사로 내한, 수원∙천안에서 선교
1908. 천안 부대리교회 담임으로 15년간 섬김
1924. 평양으로 이주하여 교회 설립
1931. 6. 11. 한국교구 제4대주교로 서품 받음(트롤로프 사망)
북한지역 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 성가수도원 창설, 수원의 고아원,
진천∙여주의 병원, 인천의 신학원, 서울의 남녀고등학교 기숙사의 운영 지원
1934. 안중교회 설립
1941. 1. 20. 일제의 박해로 선교사들을 인솔하고 귀국
1946. 1. 21. 재내한, 주교로서 교회복구활동
1950. 7. 18.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죽음의 행진
1953. 4. 8. 석방되어 소련을 거쳐 영국으로 귀환, 70세의 고령으로 다시 내한하여
1년간 주교직을 맡음
1955. 1. 6. 건강 악화로 주교직 사임하고 귀국
1964. 12. 17. 영국에서 사망

6. 가족사항:
7. 논저: [저서] 주일학교교과서, 1925; 신앙묵상, 1927; 社樹文, 1932; 儀式明解,
1933; 주시례문, 1938; 公禱文, 1939.



II. 선교사 소개: 구세실 선교사(Alfred Cecil Cooper, 1882-1964)

1. 소명을 쫓아

세실 쿠퍼[Alfred Cecil Cooper, 한국명 구세실(具世實)]는 1882년 10월 27일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본국인 영국으로 와서 브레드필칼리지,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칼리지 졸업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쫓아 190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영국의 신실한 청년 세실 쿠퍼를 이 때부터 조선의 복음화를 위한 주님의 도구로 빚어가기 시작하셨다.

2. 미지의 땅 조선으로

요즘 시대에 있어 생겨난 선교적 용어가 있다면 랄프윈터 박사로부터 나온 ‘미전도종족’이란 용어이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미전도종족이라 할 수 있었다. 복음이 증거되지 않은 미지의 땅 조선으로 세실 쿠퍼는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딪었다. 그 때가 바로 1908년 2월 11일이었다. 영국성공회의 선교사로 파송 받아 수원∙천안에서 첫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3. 주님이 예비한 추수의 땅 조선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이후 구세실(세실 쿠퍼의 한국명)은 천안 부대리교회 담임으로 15년간 섬기며 그 지역을 섬기며 이십삼 년간 조선에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1931년 6월 11일 영국 런던의 성바우로 대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어 대한성공회 제4대 주교가 되었다. 주교 부임 직후 삼 개월 동안 삼십 개 교회를 순회하는 등 매년 삼사십 개 교회를 전도 순회했고, 사오백 명씩 견진성사(堅振聖事)를 베풀었다. 그 결과 불과 이 년 만에 신자가 이천오백 명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북한지역 선교에 주력하여 평양, 해주, 진남포, 연백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1930년대 후반에는 ‘성공회 신자 일만 명’에 이르는 부흥을 이루어내게 되었다.

4. 조선과 함께 고난을 이겨내며

한편, 구세실은 재임 이십오 년 동안 일제의 탄압과 6∙25 전쟁 등으로 파란만장한 선교역정을 거치기도 했다. 1941년에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영일동맹이 결렬되면서 다른 영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에서 축출되었고,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18일에는 공산군에 체포되어 ‘죽음의 행진’을 이겨내고 전쟁포로 송환 때 모스크바에서 풀려나와 1953년 영국으로 귀환하였다가, 그해 11월 14일 대한성공회에 복귀했다.
당시의 상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6∙25 전쟁은 성공회에 많은 순교자를 만들었다. 특히, 사제들의 희생이 많았는데,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때에도 목회자로서 교회와 신자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피난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세실 역시 한국전쟁을 목전에 두고도 목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 구세실은 전쟁과 관계없이 자신의 사목계획에 따라 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6월 12일에 새로 건축한 강화 내리교회의 ‘성 패트릭 성당’을 축성하였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당일에는 여주교회 순방을 하고 있었고, 이어서 예정대로 천리교회와 수원교회를 방문한 후 피난길을 거슬러 6월 26일 밤에 서울로 떠나 6월 27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다른 교파의 선교사들은 이미 서울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때였다. 이 얼마나 사명감에 불타는 모습인가!
이후 구세실과 윤달용 신부, 이부비 수녀원장, 마리아 클라라 수녀, 홍갈로(헌트) 신부, 이도암 신학원장 신부, 조용호 신부 등은 인민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대부분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또한 그 때까지 북한지역의 교회를 지키던 이원창 신부, 임문환 신부는 지금까지 그 생사를 알 수 없다. 구세실과 홍갈로 신부,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수감이후, 외국인으로 간첩혐의를 받고 평양을 거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홍 신부와 클라라 수녀는 기아와 추위에 지쳐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세실은 평양-만포-중강진-고사진 등지의 포로수요소를 전전하며 ‘죽음의 행렬’을 이겨내고, 포로송환 결정에 따라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를 경우, 모스크바를 거쳐 마침내 1953년 4월22일 런던에 무사하게 귀환하였다. 구세실은 죽음의 행렬의 극심한 고통의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헌트(홍갈로) 신부와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나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무서운 100마일 행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행군을 하면서 죄의 고백기도를 했고 죄를 사하는 기도를 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면서 가진 귀한 예식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 위에서 얼어붙은 흙을 파고 장례미사를 지낼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구세실은 한국전쟁이 끝나자 다시 한국에 귀환하였으며, 1955년 73세의 나이로 사임할 때까지 그의 전 생애를 한국에 바쳤다. 구세실 선교사와 같이 목숨건 헌신이 없이 어떻게 오늘날 한국 교회를 말할 수 있을까?

5. 돌아보며

다시금 한국 교회에 구세실 선교사님과 같은 생명을 건 주님의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많은 내한 선교사님들의 핏값으로 이룬 한국의 교회들이 세상앞에 타협하지 않고 빚진자의 마음으로 다시금 정결하게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온전히 복음에 헌신된 믿음의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부터 그러한 부끄럽지 않은 사역자로 부르신 현장에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그 발자취를 쫓는 참되고 충성스런 일꾼이 되기를 다짐한다.
2019-07-02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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