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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Abernathy, John Arch(1896-1973, SB) / Abernathy, Jewell Leonard(1895-1977, SB)
 작성자 : 정혜란, 허필회  2019-07-02 11:18:48   조회: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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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내티 선교사
John Arch Abernathy (1896-1973)/ Jewell Leonard Abernathy (1895-1977)

Ⅰ. 기본사항 (1)
1. 이름: Abernathy, John Arch/ 애버내티 / 那約翰 / 한국명: 나요한
2. 생몰연도: 1896.1.3.-1973.3.17. 미국 노드캐롤라이나주 스태티스빌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침례회
4. 한국선교기간: 1950.2.14.-1959.12.
5. 연표
1896.1.3. 미국 노드캐롤라이나주 스태티스빌에서 출생
191? 시카고의 캐롤라이나주립대학 졸업, 뉴올리안즈 비지네스칼리지 졸업
191? 침례교성경학원(Baptist Bible Institute)에서 수학
1920-1941 미 남침례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 상해 등지에서 교육사업
1925. 중국 타이완 선교사로 일하며 결혼
1941 태평양전쟁 시 북중국에서 일본 관헌에 억류, 탈출
1944-46 중국군 연락장교와 군목 활동
1948 중국의 공산화로 중국 선교 포기
1950.2.14. 한국선교사로 파송되어 침례교회 재건에 노력
1950. 한국전쟁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피신하여 교회 목사 활동
6.25사변 후 부산에서 의료 및 구호사업에 헌신
1951.4. 미국남침례교와 한국침례교총회와 선교 제휴
1952. 미국남침례교 한국선교회 조직
1952.12.28. 부산에 충무로 교회 개척, 입당예배
1953.3. 대전에 고등성경학원을 설립
1954.4. 침례회신학교로 승격시켜 초대 교장으로 취임
1954.7.27. 주한미군 침례교 군목 기념 교회인 서울침례교회 건립
1955.11.15. 부산에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 설립
1959.3. 교단 분규가 발생하자 책임을 지고 퇴임
1959.12. 한국선교부 은퇴, 귀국하여 미국에서 목회생활
1967. 미국 남부 침례회총회 부회장 역임
1967. 한국에서 회갑연
1970. 한국 방문
1973.3.17.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Abernathy, Jewell Leonard

기본사항 (2)
1. 이름: Abernathy, Jewell Leonard/ 애버내티
2. 생몰연도: 1895.4.2.-1977.2.16. 미국 아칸소주 헌팅톤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침례회
4. 한국선교기간: 1950.2.14.-1959.12.
5. 연표
1895.4.2. 미국 아칸소주 헌팅톤에서 출생
191? 오클라호마주의 동부중앙사범대학 졸업, 무디성서학원에서 수학
1920. 중국선교사로 파송
1925. John Arch Abernathy 선교사와 결혼
1925-28 타이완의 침례교여학교 교장
1928-48 우먼스스쿨 및 트시난의 우먼스스쿨 교장
1950 내한, 6.25시 필리핀으로 피신, 1951.9. 귀환
1952-53 부산선교부에서 전도활동
1953-서울선교부에서 전도활동
6. 가족사항
남편: Abernathy, John Arch


Ⅱ. 선교사 소개

1. 한국침례교의 기틀을 놓은 선교사
한국 10년 중국에서 30년 등 동양에서만 40년간 선교활동을 펴온 베테랑 선교사인 애버내티는 한국침례교의 중흥사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6.25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교회에 의료사업, 구호사업, 선교사업, 교육사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한국침례교가 이 땅에 견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발판을 놓았다.

2. 중국선교
어려서부터 신앙을 키워오던 존 애버내티는 중학교 무렵 중국 선교사로 소명을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과 뉴올리안즈 비지네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침례교성경학원 등에서 준비하여 마침내 미국 남침례교 외국선교부의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 되었다. John은 중국에 첫 항해를 하면서 Jewell을 만났다. “John Arch Abernachy, a Missionaries”
https://missionsforum.wordpress.com/2010/06/21/introducing-the-abernathys-missionaries-to-china/ 2019. 6. 29. 접속
그들은 중국 타이완에서 함께 선교하며 1925년에 존의 나이 28세에 결혼을 하였다. 그들의 슬하에 자녀는 없었고 선교지역 곳곳마다 동고동락하였다. 애버내티 여사는 타이완의 침례교 여학교와 우먼스 스쿨의 교장을 역임하며 중국에 있는 동안 교육선교에 헌신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중국의 산뚱반도에서 일본군의 핍박으로 일본군 관헌에 억류되기도 했으나 극적으로 탈출한 후 미국통역관으로 중국에 다시 돌아왔다. 다음해에 전쟁은 끝났으나 중국에 공산화 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더 이상 선교하지 못하고 결국 중국을 떠나야만 했다.

3. 한국침례교의 역사
한국의 침례교는 1889년에 한국에 온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펜윅(Malcolm C. Fenwick, 편위익)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고 선교하였다. 이 명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동아기독교’로 이어오다가 1949년에야 다시 ‘대한기독교침례회’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50년에 애버내티 선교사 부부가 파송되어 오면서 선교에 활기를 띠기 시작 하면서 52년에 ‘대한기독교 침례회연맹총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1959년에 총회 임원이던 안대벽 부부의 불신임 문제로 총회가 분열되어 2개의 법인으로 갈라졌으나 1976년 이후로는 ‘기독교한국침례회’로 정착이 되었다.

4 한국침례교 재건의 시작
애버내티는 한국에 파송된 남침례교 첫 선교사이다. 중국선교에 30년이나 헌신하고 죽을 고비까지 넘긴 만큼 경험이 풍부한 선교사였다. 그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애버내티 선교사의 한국이름은 ‘나요한’이다. 그는 1950년 4월에 경북 점촌에서 열린 침례교 40차 총회에 참석한 후, 미국남침례교가 한국침례교와 선교사업을 제휴하여 수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6.25전쟁이 터지면서 애버내티 부부는 필리핀 마닐라로 피신을 가게 된다. 그들은 마닐라에서도 복음전하는 목회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일제 식민통치의 학정으로 거의 빈사 상태였던 한국침례교회는 겨우 소생할 기미가 보이려 했으나, 한국전쟁을 맞아 온전한 교회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서 해방 직후 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외부의 도움 없이는 교단자체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요한 선교사는 이듬해인 1951년 4월에 내한하여 충남부여 원당교회에서 열린 41차 총회에 참석했다. 여기에서 미국남침례회와 한국침례회 간에 공식적인 제휴를 한다. 이로써 펜윅 선교사 이후 50년간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던 한국침례교회는 미국 남침례교와 공식적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래서 선교에 필요한 자금과 물품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나요한 선교사는 본격적으로 전쟁 소강상태의 난민들을 위한 구호사역에 발 벗고 나섰다.
52년에 동양 총무인 코든 박사의 제안을 받고 ‘미국남침례교 한국선교회’를 조직했다. 부산, 대전, 서울에 주재지를 두고 ‘렉스 레이’ 선교사를 회장으로, 나요한 선교사는 재무 및 총무를 맡기로 했다. 선교회 산하에 의료위원회, 신학교위원회, 언어위원회, 구호위원회를 두는 등 조직과 체제를 확정했다. 나요한 부인 (Jewell Abernathy)과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미국남침례교의 산하기관인 여전도회, 신훈회, 여자청년회, 남녀사신회, 일광회 같은 기관들이 설치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해서 전국교회로 확산되어 갔다.

5. 의료선교
한국선교회의 병원 설립은 1951년 6.25 피난민들이 몰려있던 부산에서 무료진료소를 설치함으로 시작되었다. 의료선교사들과 한국인 의료진 등이 합세하여 하루에 6~700명의 보게 되었다. 나요한 선교사는 충무로에 적산가옥을 구입하여 교회와 의료진료소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성공적인 의료사업에 힘을 얻은 선교회는 54년에 본부로부터 병원설립 자금을 지원 받아 부산 영도 영선동에 “왈레스기념 침례병원(Wallace Memorial Baptist Hospital)”을 건축했고, 이듬해 신축했다. 병원 설립 목적은 환자치료, 복음전도, 의료요원 교육 등이고 라이트 의료 선교사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자 의료선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병원은 계속 확장하여 50년 이상을 극빈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다가 2017년 7월에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6. 구호선교
전국의 도시와 교전지가 파괴되고 1.4.후퇴는 많은 피난민들을 부산에 운집하게 만들었다. 나요한 선교사는 충무로에 교회를 개척하고 그곳에 선교회 사무실을 개설하여 구호사업을 전개했다. 나요한 선교사를 위원장으로 한 7인의 ‘구호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구호사업에서 시작했지만 교역자 생활보조비나 교회 신축비 등 한국 침례교 교단 사업을 주도 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7. 교회개척
경남지사의 누님 김한나씨 집에서 15명의 피난민들이 모임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부산 충무로교회의 시작이다. 나요한 선교사는 12명의 수침 신자들과 함께 충무로 적산가옥에 교회를 개척하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53년 말에 교단 본부가 부산에서 서울로 이전했다. 서울로 돌아온 침례교인 들이 서울 충무로에 폐허화된 불교 사원에서 예배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나요한 선교사의 집에서 월례회에 모이던 50여 군목들이 서울에 침례교회를 건립하기로 뜻을 모아 5만불의 기금을 조성하여 화강암 석조 교회를 준공했다. 이것이 주한 미군 침례교 군목의 기념교회로 세워진 서울침례교회이다.
이 외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교회개척은 활성화 되고 있었다. 나요한 선교사가 1952년 남침례교 총회에서 보고한 다음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계속되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한국에서의 침례교 사역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 거의 매주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1951년 40여개의 교회였는데 1952년 말 134개의 교회로 성장했다” 이명희, “한국침례교 실천신학의 특성 이해와 발전 방향” 「복음과 실천」 제61집 (2018.4.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157
2019년 6월 29일 접속


8. 신학교의 설립
선교사업에 직면한 가장 다급한 문제는 한국침례교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빈곤과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목회자의 부재였다. 일본 유학생을 선발했으나 당시 국교단절로 무산되자 총회는 목회자 양성 신학교 설립을 서둘렀다. 1953년 6월 대전 중동에 일본 음식점을 하던 적산가옥을 마련하여 성경학원을 개설했다. 학생 50명으로 개원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예과3년, 본과3년의 이수과정을 제도화했다. 1954년도엔 문교부 정식 승격인가를 받아 나요한 선교사가 초대교장으로 취임했다.

9. 한국선교부 은퇴
여러 가지 사역으로 한국침례교회는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교단내의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갈등요인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교단이 나뉘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나요한 선교사를 둘러싸고 교단의 주류파를 형성하는 안대벽과 신진 신학생들과 선교사 및 타교단 전입 교역자들의 지지를 받는 조응철 사이에 교권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안대벽 부부의 불신임 문제로 붉어진 교단의 분열이다. 결국 1959년에 교단은 대전측과 포항측으로 나눠졌다. 포항총회의 고발로 나요한 선교사는 이문제의 총 책임을 지고 한국선교부에서 물러나 은퇴를 하게 된다. 임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과 좀 더 지혜롭게 미리 예방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은 채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고국에서도 복음 전하는 목회자 일을 멈추지 않았고, 1967년에는 미국 남부 침례회 총회의 부회장까지 역임을 하였다. 같은 해에 충서지방회의 주관으로 광천 교회에서 나요한 선교사의 환갑잔치를 열어서 위로와 축하를 하게 되었다. 정갑신은 아들이 없는 나선교사에게 아들을 대신해 절을 했다. 그가 1970년에 한국침례회 총회를 다시 방문했을 때 발전상을 보고 매우 기뻐했으며 복음의 옛 친구들과 기쁨의 정을 나누고 돌아갔다. 그는 3년 후에 소천 하였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수고와 열정 그리고 사랑의 발자취는 수많은 후학들에 의해 길이 남을 것이다.
2019-07-02 11: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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