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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30 / Harris, Lillian A.
 작성자 : 박천광  2020-07-06 23:45:46   조회: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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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내한 선교사 총람

출처: “Harris, Lillian A.” 김승태, 박혜진 엮음,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Harris, Lillian A. (해리스 / 미국 / M)
1. 생몰연도
1865-1902.5.16. 미국 오하이오주 델러웨어 출생

2. 학력
1891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 졸업, 신시내티의과대학 입학
1897 필라델피아여자대학교 졸업

3. 경력
-기존 자료
1897.11.10.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한국어공부
동대문부인병원(->이대부속병원)에서 4년간 진료활동
1901.5 평양부인병원으로 옮겨 헌신적인 의료활동
교회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침
1902.5.16. 티푸스에 전염되어 소천, 평양 대동강변에 안장
1912 동대문부인병원 신축후 해리스기념병원이라 명명

-새로 찾은 자료
1897.1.16. - 1898.5. 보구여관에서 의료활동
1898.5 동대문 볼드윈진료소로 이동
(출처: 나무위키 보구녀관 https://namu.wiki/w/보구녀관)

4. 가족사항
Follwell, Mary W. Harris(언니)

5. 논저:

6. 참고문헌: <<기백>>16권; 감리교회사 I; W.A. Noble, Memorial of Dr. Lillian Harris,
Official Minutes of the 18th Annual Meeting of the Korea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02; Official
Minutes of the Annual Meeting of the Korea Mission of
the Methdist Episcopal Church, 1897-1902; S. Hall,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1978; Naomi Anderson,
Medical Work in Pyengyang, 50 years of Light, 1938;
한국감리교회 외국인선교사.


Ⅱ. 선교사 소개 : 릴리안 해리스(Harris, Lillian N, 1865-1902)

1. 해리스 Harris, Lillian N.
미감리회 여선교사, 의사. 미국 오하이오주 델러웨어에서 출생, 12살 때 회심하였으며 레오나즈버그에 있는 미감리회 교회에 출석하였다. 1883년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 사범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기독교인로서의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887년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에 입학하여 1891년 졸업하였으며 이듬해 신시내티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2년간 교사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1894년 필라델피아여자대학교에 입학, 1897년 졸업하였다. 학교 재학시부터 병원 입주 내과의사(house physician)로 활약하여 졸업할 당시에는 레지던트였다.
졸업하던 해에 미감리회 해외여선교부의 선교사가 되었고 언니(Mary W. Harris, 후에 E.D. Follwell 부인)가 선교사로 가(1893년)있는 한국에 파송되어 그해 11월 10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한국어를 배우면서 동대문에 있는 부인병원(현 이화여대부속병원)에서 진료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4년간 활약한 후 1901년 5월에는 언니가 있는 평양으로 옮겨 그곳 부인 병원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인 활약을 보였다. 그녀의 동료들이 쉬기를 권하면 그는 “이 사람들(한국인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아깝지 않다.”고 하며 계속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녀는 의료활동 틈틈이 교회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환자들의 신앙 지도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티푸스 환자를 치료하다가 자신이 티푸스에 전염되어 결국 1902년 5월 16일 평양에서 별세하였다. 마침 그 날은 미감리회 한국선교연회가 평양에서 개최되는 날이라 그녀의 별세소식을 들은 무어(D.H. Moore) 감독 이하 회원들은 연회도중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회를 가졌다. 그녀의 유해는 대동강변에 안장되었는데, 그녀는 평양에 마련된 외국인 묘지에 처음 묻힌 인물이 되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당시 북지방 감리사였던 선교사 노블(W.A. Noble)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는 주님처럼 그의 생명을 병들고 죄지은 자를 위해 바쳤다. 그는 티푸스 열병에 걸린 한 여인을 치료하여 그 여인에게 건강을 되찾아 주면서 대신 그 여인에게서 질병을 얻었다. 그가 고친 환자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상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비천하게 보이는 자를 구원하였다는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다.”
1912년 서울의 동대문 부인병원이 신축되었을 때 미감리회 선교부에서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병원 이름을 해리스기념병원(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이라 명명하였다.

2. 구한말 순교 의사 ‘릴리안 해리스’ 증손녀, 유품 공개
대한제국 시절 한국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다 순교한 의사를 비롯 한국에서 많은 봉사를 했던 선조들을 둔 후손들이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훼어팩스 아이노바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캐롤린 데이비스씨는 “증조 할머니가 구한말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다 돌아가셨다”며 한국 최초 여성 의료선교사 중 한 명이었던 ‘릴리안 노리사 해리스’의 관련 자료들을 내놨다.
특히 릴리안 노리사 해리스는 ‘세기를 넘은 한국 사랑’으로 본보에 소개됐던 ‘미스터 핑’<본보 8월18일자 5면 보도>의 이모이기도 해 데이비스씨 가족의 한국과의 인연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미스터 핑(본명 에드워드 폴웰)의 아버지 더글러스 폴웰은 1887년 평양에 세워진 근대식 병원인 ‘기홀병원’의 원장을 지냈고 릴리안 해리스는 한국 최초의 부인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이 나중에 동대문 부인병원과 통합될 때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으로 개칭되면서 한국 의료 및 선교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의 효시인 보구여관은 고종 황제가 하사한 이름. 이화학당 창설자인 ‘메리 F. 스크랜튼’ 여사와 아들인 의사 윌리엄 B. 스크랜튼이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서 기금을 받아 1887년 정동에 세웠다.
데이비스씨는 “핑 할아버지가 보관해둔 수많은 한국 관련 유품들을 통해 선조들의 한국 사랑을 보고 배웠다”며 “내가 의사가 된 것도 어쩌면 그분들의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스터 핑이 남겨놓은 유품은 1907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를 포함 여성들이 차고 다니는 복주머니, 은장도, 짚신, 참빗, 남성 의복에 붙이는 장식 등 다양했다. 또 닥터 폴웰과 닥터 해리스가 활동하던 모습과 가족들, 당시 서울과 평양의 풍경, 조선인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긴 귀중한 사진 자료도 꽤 많았다.
데이비스씨는 “만일 태극기 등 주요 자료들이 보관 가치가 있다면 한국 정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며 “기회가 되면 아직 한번도 안가본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에서 지난 2006년 105세로 여생을 마감한 미스터 핑의 한국 관련 유품은 현재 버지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데이비스씨 어머니의 집과 오하이오주에 나뉘어 보관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릴리안 해리스와 관련된 자료와 구한말의 모습을 담은 사진 기록들은 당시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료인 저널(Medical Woma n’s Journal’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1863년 1월22일에 태어난 릴리안 해리스는 1897년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신시내티 여성해외선교부를 통해서였다.
서울에서 4년간 근무한 해리스는 평양으로 옮겨갔으나 불행히 환자들을 진료하다 장티푸스에 감염됐고 끝내 1902년 5월16일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방문했다가 학교에 걸려있는 증조할머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는 데이비스씨는 “할머니의 헌신과 봉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한국 어딘가에 있었던 걸로 안다”며 “현재 그 비석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데이비스씨가 자신의 부인을 진료한 것이 계기가 돼 미스터 핑씨의 한국 사랑과 릴리안 해리스의 한국에서의 의료 봉사 및 희생을 알리는데 다리를 놓은 전종준 변호사는 “한국을 위해 이토록 많은 희생을 한 선조를 둔 미국인들이 주변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몰랐다”며 “이들에게 한인사회가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가능하면 전시회를 마련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3.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동대문 부인병원)
1912년 지금 동대문 옆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자리에는 3층의 멋진 붉은 벽돌집이 건축되었다. 주변이 전부 낮은 한옥일 뿐 아니라 이 서양 집이 위치한 곳도 동대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멀리서도 금방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이 병원이 바로 미감리회 여선교회에서 세운 ‘동대문 부인병원’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볼드윈 시약소’라 이름하는 한옥의 작은 병원이 있었는데, 이 병원이 웅장한 서양병원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 귀하던 전기가 들어와 수술실을 환하게 비추고, 뜨끈 뜨끈한 스팀이 들어오고, 수도관이 있어 어디서든 물이 콸콸 나오니 이전의 옹색한 한옥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호강이었다. 의사와 환자들이 모두 즐거워하여 병도 훨씬 빨리 호전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병원을 쉽게 동대문에 있는 여성병원이란 의미로 ‘동대문부인병원’이라 불렀지만 선교사들은 이 병원을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이라고 불렀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해리스(M.W.Harris)라는 의사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병원은 1893년 봄, 정동 미감리회 선교기지에 있었던 여성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의 분원인 시약소(Dispensary)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당시 보구여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전용병원으로 미감리회 여선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운영하고 있던 의료선교기관이었다. 정동은 각국 외교 공관들이 들어서 있는 외교가로 변모하고 있었으므로 이 병원 의사인 홀부인은 좀 더 낮은 계층의 여성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병원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택한 곳은 동대문 옆이었다. 그곳에는 상민들과 천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한옥 한 채를 짓고 일주일에 두 차례씩 그 곳에 가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홀부인은 곧 남편을 따라 북한 지역 의료사업을 위해 평양에 파송되어 갔고, 그 자리에 커틀러(M.M.Cutler)가 파송되었다. 그녀는 전임자인 홀부인과 마찬가지로 보구여관과 동대문 시료소를 오고가면서 환자를 돌보았다. 동대문 시료소가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하기 시작한 때는 해리스가 부임하면서 부터이다. 해리스는 1897년 미감리회 여선교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였다. 해리스는 내한 후 동대문 시약소에서 살면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매일 문을 열게 됨으로 시약소가 아닌 병원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해리스는 최초의 동대문 부인병원장이라 할 수 있다. 해리스는 이곳에서 약 4년간 일한 후 1901년 평양 광혜여원 의사로 파송 1년 후에 전염병 걸린 환자를 치료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평화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해리스의 후임으로는 언스버거(E.Ernsberger)였다. 언스버거는 역시 동대문 병원의 헌신적인 의사였다. 환자가 매년 급증하고 있었다. 해리스가 처음 병원을 맡았을 1897년에는 6백34명의 환자에 불과했으나 매년 환자가 늘어 1903년에는 환자수가 무려 4천7백65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 병원에는 매리 황이란 전도부인이 입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동대문교회가 있어 환자들과 의사들이 일주일에 3차례 예배를 드렸다. 이 병원은 동대문교회의 부속병원과 같았고, 동대문교회는 이 병원의 부속교회와 같은 역할을 했다. 주일이 되면 언스버거가 동대문교회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언스버거는 더 이상 낙후된 병원시설로 환자를 돌볼 수 없었다. 그녀는 당시로는 최신식 병원건물의 짓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1912년 이 병원이 완공되어 첫 환자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이 완공된 후 정동의 보구여관도 이 병원에 합해져 하나의 병원이 되었다. 미감리회 여선교부의 선교사 주택도 이곳으로 옮겼다. 병원과 선교사 주택 주변에는 울타리가 생기고 그 안에는 파란 잔디와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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