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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opper, Joseph(1892-1971, SP) / Hopper, Annis Barron
 작성자 : 노요셉  2017-06-30 15:02:07   조회: 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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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 름: Hopper, Joseph /조셉 후퍼/한국명 : 조하파(趙夏播)
2. 생 몰 연 도: 1892.06.01.-1971.02.20.
3. 출신 및 소속: 미국 켄터키주 스탠퍼드 출생, 미남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1920-1954
5. 연 표
6. 가 족 사 항: Hopper, Joseph Barron(아들)을 포함한 자녀 3명


Ⅱ. 선교사 소개
1. 조하파 선교사와 Aniss Barron
조하파(趙夏播Hopper, Joseph) 선교사는 1920년에서 1954년간 한국의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선교사이다. 그는 1892년 미국 켄터키주 스탠퍼드에서 출생하였으며1914년 센트럴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루이스빌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1919년 Aniss Barron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결혼을 하자말자 한국으로 오게된다. 『미남장로회 선교사역편람』의 공식적인 내한 년도는 1920년이나 『기독교 백과사전』의 년도는 1919년으로 잡혀있다.
Aniss Barron 선교사 역시 1893년 미국 캘로라이나 주에서 출생하였고, 1909년에서 윈드롭공과대학에 입학하여 1914년 학사 졸업하였고, 1917-1919년에 뉴욕성서학교에 다니며 선교에 준비된 여인이었다.
이 부부는 목포선교부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고, 특히 영암·해남·강진·장흥 등을 순회하면서 농촌선교에 진력하였다. 조하파 선교사는 각지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사를 파송하여 자립교회가 되도록 지원하였으며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들의 당회장을 겸임하여 학습·세례문답 그리고 성례전을 주관하였다. 그밖에도 자신의 선교구역 평신도교육을 위해 목포달성경학교를 개설하였고, 한때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선교를 하며 안식년에는 루이스빌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하였고 1928년에는 신학석사(Th.M), 1939년에는 뉴옥 유니온신학교(리치먼드)에서 신학박사(Th.D.)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Aniss Barron은 남편과 함께 지역 전도를 하면서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주일학교 사역을 통하여 한국의 다음 세대를 신앙으로 가르치며 조하파 선교사의 사역을 도왔다. 이 부부는 1940년 일제의 선교사 강제추방령에 의해 한국을 떠나게 되었지만 해방 이후인 1948년 재 내한하여 역시 목포에서 농촌선교에 주력했다. 조하파 선교사는 은퇴 후 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71년 사망하였다. 한편 부인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두 자녀가 부친의 뒤를 이어 전도자가 되었고 캠퍼스목회를 담당하였다.

2. 발로 뛰는 선교사
1932년 3월의 신학지남 14권 2집에 실린 조하파 선교사의 『靈的自我發展』에서 서두에 “人生心靈의 가장 高貴한 所望은 卽 하나님을 위하야 일하는 能率을 增進하며 하나님 안에서 長育되며 더욱 하나님과 갓치되고저 하는 것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가장 고귀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내한하여 일하는 과정을 보면 대부분이 전도였다. 목표 선교부를 통해 배정받은 영암·해남·강진·장흥 등을 중심으로 전도 사역에 힘썼다. 그리고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 보면 교회 설립 때에 조하파 선교사의 이름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즉 그는 발로 뛰는 선교사였다. 그의 행적은 끊이지 않는 전도였다. 그리고 헌금을 하면서까지 교회당이 세워지고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격려하였고 1928년 4월 양동교회가 연동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1930년 2월 산정동 109, 대지 300평을 교회부지로 구입하였을 때에 구입대금 600환을 조하파 선교사의 헌금과 양동교회의 보조금으로 충당하였다는 사실을 목포연동교회 연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www.yd4u.org/doc/103.htm” 2017년 6월 25일 접속.
, 당회장이 없는 교회에 당회장이 되어주곤 했다. 지금도 구글에 ‘조하파 선교사’를 검색하면 이미지 창에서 1대 당회장으로 찍혀있는 그의 이미지 파일을 찾을 수 있다. “https://www.google.co.kr/search” 2017년 6월 1일 검색.


3. 신학활동
그의 열정은 그의 학위 취득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미남장로교회 선교사역편람』에는 그가 1926-1927년과 1934-1935년 안식년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간에 그는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1937년 평양신학교에서 레이놀즈가 은퇴한 뒤 크레인(J. C. Crane) 박사가 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이 때에 조하파 선교사도 함께 도와 한 학기 또는 그 이상을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1932년 신학지남 14권 1집과 2집에 각각 『예수 基督를 記憶하라』와 『靈的自我發展』이라는 글을 낸다. 그의 논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말씀 중심의 교육을 추구하였다.
일제에 의해 1940년 강제 추방당했다가 1948년 다시 복귀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의 신학 노선은 확실한 말씀 중심이었다. 따라서 장로회신학교와 조선신학교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을 때에 51년 5월 총회는 양 신학교의 직영을 취소, 양 신학교를 합동하여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되었고, 이 결정에 따라 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신학교를 개교되었다. 이것이 바로 총회신학교인데, 여기에 감부열(Edwin Campbell) 선교사를 초대 교장으로, 인돈(William Linton) 권세열(Francis Kinsler)과 김치선, 계일승, 명신홍, 박형룡, 한경직 목사와 함게 조하파 선교사도 초대 교수로 추대됐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6268019&code=23111612” 2017년 5월 21일 접속.


4. 신혼여행을 선교여행으로
조하파 선교사가 그의 아내 Aniss Barron와 함께 결혼한 것은 1919년이었고, 내한 한 것은 1920년이었다. 아직 신혼의 때에 그와 그의 아내는 한국 선교에 사명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사실상 그들의 신혼여행이 선교여행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농촌을 중심으로 전도여행을 자주 하였다. 그들은 긴 여행을 하면서 여관이나 또는 교회에서 마련해준 집에 머물면서 그 집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에 전도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전도 여행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과 실라와 같은 전도였다. 긴 전도여행 중 한 지역에 여관이 있으면 짐을 풀고 쉴 수 있지만, 때로는 머물 장사가 없어서 곤란해 하고 있을 때에 그 동네 사는 신자가 그들을 자신의 방에 머물게 해주기도 하며 1940년 6월 11일 편지 중 “During the course of the fall Mrs. Hopper and I took two country trips spending some days in personal evangelism. On the first trip we stopped at ans inn, and worked in nearby villages in house to house visitation. At the second place there was no room in the inn for us, but a man living in a house be-the-side-of-the-road, whose daughter was a Christian, was kind enough to move out of his little room and let us occupy it.”이라고 당시 상황을 말하며 머물 곳이 없을 때에 자신의 작은 방을 빌려준 신자의 동역을 기록하고 있다.
, 복음 전파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의 방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열매를 위해 전도활동을 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1920년에 들어와서 함께 사역하다가 1954년 함께 은퇴한다. 즉, 결혼을 시작하여 34년간 한국에서 부부 생활을 하게 된 것이고, 사실상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한국의 선교와 함께 이루어 진 것이다.

5. 동역하는 부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주일 학교
Aniss Barron 선교사는 남편을 도와 전도여행을 할 뿐만 아니라, 조하파 선교사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감당해주었다. 예를 들면 여성과 어린이 전도였다. 아직까지 남녀 간의 관계가 엄격한 시대인 만큼 남자인 조하파 선교사가 여성을 전도하는데 힘이 들었다. 그 부분을 그의 아내인 Aniss Barron 선교사가 채워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주일학교 사역에 힘썼다. 주일학교의 발전은 곧 교회의 성장의 원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상을 한국사회 속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한국의 각 선교 현장에서도 주일학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6. 6·25 전쟁 중에서 피난민 구제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생겨났다. 한국의 서남부 지역은 대적하는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자연스럽게 피난 센터가 되게 된다. 이때 조셉 하퍼는 선교사로써 피난 센터를 방문하여 군과 유엔시민보조단(UNCAC), 기독교세계봉사회(CWS) 그리고 기타 구호 단체를 통해 들어온 여러 톤의 구호물자, 의로, 탈지 우유, 식량과 의약품을 나누어주었다.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은 한국을 위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며 쉬지 않고 일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하파 선교사의 헌신은 목숨을 내걸은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54년, 일본의 문화정치로 인하여 피폐해져가는 한국 땅에서 전도와 신학교육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한국을 세우기 위해 힘썼고, 해방 직후 혼란을 겪는 한국을 버리지 않고 다시 찾아 지난 사역을 이어가며, 6·25 전쟁으로 목숨이 위험한 상태에도 한국을 위하여 힘썼던 조하파 선교사와 Aniss Barron 선교사의 행적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7-06-30 1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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