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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andis, Eli Barr(1865-1898, ANG)
 작성자 : 이다현  2018-12-04 02:37:05   조회: 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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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 Landis, Eli Barr / 랜디스 / 한국명 : 남득시
2. 생몰연도 : 1865-1898.4 미국 펜실베니아 출생
3. 학력 : 미국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의학박사(전공 : 내과)
4. 경력 : 영국성공회 한국선교 초대 책임자 코르프(Charles John Corfe) 주교를 따라 한국선교에 뜻을 둠.
5. 연표
1865.12.18.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출생
1888.5 미국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전공 : 내과)
1890.9.29. 인천항 도착, 의료선교 시작
1890.10.10 성누가병원 개설, 한국 해역의 외국인 전담 의료활동
1891.2.1. 신학문을 보급하기 위하여 영거학교 개설
1891.9.30. 인천 최초의 성공회 성당 건익
1892 한국의 고아를 위한 작은 학교 개설(고아원 개설)
1895 로사리수트라 외 3편의 불교 문헌과 동화 역사문서층을 영어로 번역 외국에 소재.
1896 양육 고아중 5명의 침례세례-최초의 성공회 신자
한국 관계 구문서적 모아 랜디스문고 설치
1898.4.16. 사회봉사를 통한 복음증거와 하나님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실현하시다가
자신의 젊은 생명을 장티푸스로 이 땅에 바침
6. 가족사항 : 아버지 Peter Johns Landis(1833-1899), 어머니 Martha Barr(1830-1911)의 6명의 자녀중 5번째 아들.
7. 논저

1. The Education Fund. 1892. Morning Calm No. 27, vol. III, 116-119.
2. The Amitayusa Sutra, Translated from the Corean. 1894. Jour. Buddhist Text and Research Soc.(Calcutta) II Pt. 2, 1-6.
3. Notes on the Exorcism of Spirits in Korea. 1894-5. China Review XXI, 399-404; 1898. Morning Calm No. 75, vol. VIII, 16-25.
4. The Classic of Buddhist Rosary. 1895, Korean Repository II, 23-25.
5. Buddhist Chants and Processions. 1895, Korean Repository II, 123-126.
6. A Chart of the Foot-Prints of the Tathagata Cakya Buddha(Translated). 1895. Jour. Buddhist Text and Research Soc.(Calcutta) III Pt. 3, 8-9.
7. A Translation of Three Buddhist Tracts from Korea. 1896. Jour. Buddhist Text and Research Soc.(Calcutta) IV Pt. 1, 22-28.
8. Rules for Choosing a Name. 1896, Korean Repository III, 54-58.
9. Some Korean Proverbs. 1896, Korean Repository III, 312-316, 396-408.
10. Numerical Categories of Korea. 1896. Korean Repository III, 431-438, 464-468.
11. Mourning and Burial Rites of Korea. 1896. Jour. Anthropological. Inst. London XXV, 340-361.
12. Notes from the Korean Pharmacopoeia. 1896-7. China Review XXII, 578-588.
13. Native Dyes and Methods of dyeing in Korea. 1897. Jour. Anthropological. Inst. London 26, 453-457.
14. A Royal Funeral. 1897. Korean Repository IV, 161-168.
15. Notable Dates of Kangwha. 1897. Korean Repository IV, 245-248.
16. Geomancy in Korea. 1898, Korean Repository V, 41-46.
17. Korean Pharmacopoeia. 1898. Korean Repository V, 448-464.
18. Capping Ceremony of Korea. 1898. Jour. Anthropological. Inst. London 27, 525-531.
19. Rhymes of Korean Children. 1898. Jour. American Folk-Lore 11, 203-210; 1899. Morning Calm No. 81 & 82, vol. X, 87-91, 126-128.
20. A Pioneer of Independence. 1898. Asiatic Quarterly Review 26, 396.
21. Korean Geomancy. 1898-9. China Review XXIII, 37-45.
22. The Tonghaks and their Doctrine. 1903. Jour. North China Branch R.A.S. XXI, 123-129.
23. Biographical Notes of Ancient Korea. 1906. Korea Review VI, 412-418, 441-446.


8. 참고문헌 : 기백 4권; M.N. Trollope, The Church in Corea, A.R. Mowbrayo & Co., 1915; 개신교사; 기독교회사; 이재정, 한국성공회사 개관, 1980)


Ⅱ. 선교사 소개 : 랜디스(Elii Barr Landis, 1865-1898)

1. 한국의 위대한 선교사의 탄생과 준비
랜디스가 태어난 펜실베니아 주 랭카스터 카운티의 랜디스 계곡은 스위스 메노나이트 교파가 살고 있던 중요한 중심지였다. 그는 그 곳의 개척자 Jacob Landis의 6대손인 Peter Johns Landis와 Martha Barr 사이에 6명 중 5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유일한 자녀였는데, 1883년 Millersville의 State Normal School에서 2년간의 예비 의학 과정을 마쳤다. 1885년 9월 필라델피아로 가서 대학과정 공부를 시작하였다.
랜디스는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할 때 성 클렌멘트의 감독 교회를 담당하는 성직자 Charles Neale Filed를 알게 되었다. 필드(Filed)는 3년동안 미국에서 살았던 영국인이였고, 1878년 여국, 인도, 남아프리카 및 미국에서 일하는 선교사의 중요한 성공회 종교선교사인 성 요한 복음 전도자 협회 회원이었다. 영국에서는 이 협회를 ‘카울리 아버지(Cowley Fathers’라고 알려져 있다.

2.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한 의학 공부
학부생 랜디스는 세인트 클레멘트의 성직자 필드에게 침례를 받고, 곧 펜실베니아 주교(Ozi W. Whittaker)의 확인을 받았다. 이는 메노나이트 교단에서 성공회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1888년 5월 그는 의사 학위를 받았고 고향인 랭캐스터 카운티 병원 및 Insane Asylum의 레지던트 의사로 1년간 일했다.

3. 보이지는 않는 선교의 손과 준비과정
1880년 북미 대학생들 사이에서 강력한 선교사 자원 봉사 운동이 있었고, 카울리 교보들의 선교 이상은 그 시대의 영적 환경에서 그 비전에 반응하도록 랜디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주교들은 그의 선교 포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는 에드워드 화이트 벤슨(Edward White Benson)이었다. 2년전 그는 중국과 일본의 영어 선교사 주교들이 한국에 선교 사업을 시작하라고 요청받았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에서 새로운 해외 선교 상황은 열악했다. 하지만 벤슨은 사도적 사명에 대한 비전을 가지며 단순히 감독을 세워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과 돈은 하나님께 맡기도록 햇다.
그가 선택한 감독은 빅토리아 여왕의 제독 아들인 에딘버러 공작과 우정을 쌓은 스파르타 습작의 학자 고교 교관인 찰스 존 코르페(Charles John Corfe)라는 45세의 해군 군목이었다. 대주교는 코르페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 연간 £650의 선교금 지원을 약속할 수 없었다. 코르페는 자신과 함께 선교를 갈 동역자가 필요했다.
그는 처음 2명의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영국 전역을 여행했다. 그 중 학 명은 작년에 중앙 아프리카에서 집으로 돌아온 레너드 오틀리 워너(62세) 학생이었는데, 동아시아의 선구자적 작업을 위한 유망자는 아니었다. 다른 한명은 62세의 나이로 자비로 2년간 한국에서 일하겠다고 제안한 군부대의 퇴역 군인인 줄리어드 윌리스(Jullius Wiles)였다. 그 후 런던 북부의 킬 번(Kilburn) 성 베드로 성당의 수녀가 한국 선교 사업을 시작한 후 간호 자매를 보낼 것을 약속했다. 또한 코르페의 옛 해군 친구들이 Mission Hospital Naval Fund를 설립하여 서울과 조약 항만에 병원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의료활동을 지원했다. 또한 영국 선교사 협회 중 가장 오래된 기독교 지식 진흥회가 의료선교 통로를 위해 50파운드, 도구를 위해 50파운드, 약품을 위해 2년간 50파운드, 선교 유지를 위해 80파운드 연간 보조금을 약속했다.
1890년 4월 벤슨은 코르페에게 랜디스를 소개했다. 6월 말까지 코르페는 랜디스를 5년 동안 한국에 데려가기로 동의하고 8월에 그를 만나기 위해 코르페는 한국으로 가는 중 미국을 통해 자신의 길을 설교 하고 있었다. 8월 1일 랜디스는 지역 도서관에서 중국어와 한국어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공부했다. 랜디스는 항해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페는 뉴햄프셔 주 콘코드의 성 바울 대학을 방문하는 중 133달러는 받았다.

4. 한국에 예수님의 치료의 손이 되어준 랜디스-인천 최초의 서양식 성누가병원 개원
그들은 그렇게 여러 가지 선교 모급과 봉사자를 준비하고 한국으로 출발하여 1890년 9월 29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그때 당시 영국 부통령인 제임스 스콧(James Scott)과 함께 있었다. 10월 10일 랜디스는 스콧이 코르페에게 빌려준 상당히 큰 집으로 이사했다.
랜디스는 이곳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했다. 두 개의 방은 한번에 방역실 및 상담실로 따로 보관되었다. 그 다음날, 처음 한국인 환자가 왔다. 하지만 랜디스는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의약품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환자는 경미한 수술이 필요하여서 치료를 잘 마쳤다. 그 당시 한국의 현금은 다루기 힘들었고 엄청난 양의 동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달걀이나 과일을 가지고 현물로 돈을 냈다.

랜디스는 온돌에 앉아, 젓가락으로 먹고 한국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등 한국 문화에 적응하며 한국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다가갔다. 1980년 12월 크리스마스 성찬식을 제공했다. 크리스마스 이후, 랜디스는 환자수를 늘렸다. 첫 3개월 동안 새로운 환자가 34명 있었고, 진료소 방문 횟수는 76회, 의사가 환자의 집까지는 25회 방문했으며 그 중 일부는 3마일 떨어진 곳에서 실시됐다.

1891년 10월에는 병원을 위한 독립된 건물을 마련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현재 내동 성공회교회 자리에 인천 최초의 서양병원 성누가병원(St. Luke’s Hospital)을 설립했는데, 랜디스는 서양이름인 성누가병원은 한국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선행을 베품으로서 기쁨을 주는 병원이라는 의미로 ‘낙선시의원’이라는 간판을 따로 붙였다. 여기서 무료로 조선인들을 치료하였다. 민간에서는 그를 ‘약대인’이라 불렀다. 그는 이내 많은 수의 환자를 혼자 감당하게 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1892년에 3594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1894년에는 4464명의 내원 환자와 왕진 환자를 진료하였다. 한국종교학회, 『성공회 선교사 랜디스(Eli Barr Landis)의 한국 종교 의례 연구』(한국종교학회, 2018, Vol.78, no.2), 175.


처음은 한국인에게 다가 가기 좋게 위급한 환자는 인력거에 태워 모셔오게 했고, 병실도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는 온돌에 환자를 눕혀 돌보았고, 진찰실도 여자 남자를 각각 분리해 하였기에 응봉산에 위치한 병원(지금의 내동 성공회 성당 자리)이지만 당시에 약대인이라 칭한 랜디스 의사가 있는 산이라고 불렸다.

고아원 운영은 랜디스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1893년 그가 치료했던 여성환자가 죽게 되었을 때, 과부였던 그 환자는 홀로 남게 된 아이를 랜디스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다. 랜디스는 ‘곰새끼’라는 아명을 가진 6살짜리 아이를 맡게 되었고, 이 아이를 시작으로 돌보는 아이가 한둘 늘어나면서 고아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바나바스(Barnabas)라는 세례명을 가진 고아를 입양하여 아들로 삼게 된다.

1895년 인천해관 촉탁의사 및 1898년 총세무사 촉탁의사로 활동하면서 해관원의 주치의로서 근무하였고 제물포로 입국하는 여행자에 대한 검역업무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5. 의사, 선교사, 학자라는 세가지 능력
한국에 머문 8년간 중 4년 정도 한국인 마을로 이주하여 현장에서 더 깊이 연구하려 논문을 24편이나 국내 외에 발표했는데 그것은 ‘한국선교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라고 1890년 7월 발간하기 시작한 ‘The Morning Calm’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Landis가 수집한 문헌(文獻)들은 Landis 문고(文庫)가 되어 성공회선교단의 문고(文庫)로 발전했으며 제3대주교인 Trollope 주교에 의해서 더욱 확충되었고 Landis-Trollope 문고(文庫)라 불러야 할 정도로 커졌다.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202258256


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였고 한문을 익혀 논어와 맹자 등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여 해외 학술지에 한국학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송림동 한옥에서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장티푸스로 33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어 제물포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1898.4.16.).

6. 가르치고, 치료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하나님의 사람
19세기 말 조선의 시기는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억압과 핍박, 가난과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이 당시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 선교에 들어오면 한국 선교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다. 예수님의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시는 사역을 보며 랜디스가 성공회 신자로서 불교, 유교, 무교 등의 연구도 활발하게 하며 비록 굿도 참여한 면도 있지만,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고아원을 운영하며, 해외에 많은 저술을 남겨 한국 선교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한국 선교 초기 역사에 기독교인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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