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Gerdine, Joseph L.(1870-1950, MS) / Gerdine, J. L.(미상, MS)
 작성자 : 김명식  2019-06-27 18:16:33   조회: 559   
 첨부 : 기말보고서_3-3_080_김명식_배지혜.hwp (3427840 Byte) 
 첨부 : 기말보고서_3-3_080_김명식_배지혜.pdf (6679050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Gerdine, Joseph Lumpkin / 저다인 / 한국명: 전요섭(全約瑟), 전요슬(全堯燮)
2. 생물연도: 1870.7.13-1950.3.13
3. 출신 및 소속: 미국 앨라배마주 픽켄스카운티 / 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02-1937
5. 연표 

1989 조지아주 엡윗청년회 회장으로 평신도운동
1902 남부 조지아연회에서 목사안수 

1902.11.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원산에 부임 

1903.8. 원산선교사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1907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확산
1906.1. 함흥 캐나다 장로교회 부흥회 인도
1906 개성지방으로 전임하여 2년간 활동 

1906.10. 미 남장로회 프레스톤 선교사의 초청으로 목포 부흥회 인도 

1907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사경회 설교 

1908 서울로 이전, 한일합방 후 105인 사건 탄압 한국기독교인 변호자청, 석방을 도움

1909.9. 2. 남감리회 한국선교회 제13대 연회장으로 선임 

1910-1913 서울 YMCA 제3대 회장

1911.6. 교육조사국 임원(회계)으로 활동

1911. 7. 5. 성서회관 정초식 사회 담당(성서위원회 위원장) 

1911. 9. 26. 한국성서위원회 가을 정기회의 주관 

1912 무교동 전도관(중앙교회) 헌당식 설교

1912 경성성서학원 개강 집회 설교 

1915-1919 대한성서공회(기독교서회) 회장
1
1922-1925 개성에서 3년간 선교
1926 남북감리회연합 기성위원

1926-1936 서울 감리교 신학교 교수로 10년간 봉직 

1937 가족의 병고로 귀국, 

1939 은퇴 후 조지아주 거주 

1950.3.13 플로리다주 크레센트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Eleanor Dye 

자녀:
Gerdine, Joseph Lumpkin Jr.-1915.11.19 한국 출생
/ 1915.11.20. 사망 (양화진 제1묘역에 잠들었다.)Gerdine. Park L.


Ⅱ. 선교사 소개


1. 법학도로서 한국에서의 사역에 헌신한 남감리교 선교사

저다인(Joseph L. Gerdine, 1870-1950)은 조지아 대학과 메이콘대학을 졸업했다. 그 는 한국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까지 8년의 시간동안을 법학도로서 공부했다. 그는 1898년 조지아주 엡윗 청년회 회장으로 평신도 운동에 깊이 관여하다 해외 선교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껴 1902년 조지아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1902년 11월 미국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로 내한하여 부흥운동 등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보통 초기 한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은 선교와 함께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 저 다인이 변호사로써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았으나, 변호 사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찾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1908년 105인 사건으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한국 기독교인들을 위 해 변호를 자청하여 무고하게 억압받던 피의자들의 석방에 도움을 주었다. 이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저다인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받았던 8년의 법학도 로서의 훈련이 결코 버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귀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저 다인은 한국 땅에서 부흥운동들의 설교자로 사용함을 받았지만 동시에 법률가로서도 사용을 받았다.
또한 당시 한국에 파송된 대부분의 감리교 선교사들은 전형적인 웨슬리안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후예들로, 폭이 넓었던 본국의 신학적 분위기보다는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 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복음주의적 입장을 견지한 채 장로교 선교사들과 함께 부흥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추후 1905년 복음주의(장감) 연합공의회라 이름 붙인 협의체로의 연결까지 이어진다. 장감은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 영적 대각성운동이라는 것에 의견을 합치하여 교파를 초월한 성경공부, 기도, 전도를 축으로 한 사경회를 가장 중요 한 사역으로 여겼다.


2. 하디와 함께 원산부흥운동의 주역

저다인은 한국에 들어온 1902년 11월 이후 하디와 함께 원산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저다인 및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한국의 외형적인 위기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부흥운동의 역사와 그 성격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에 한국의 이러한 외형적 위기가 이 민족을 각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라 이해했다. 저다인은 그의 저작 “National Revivals”을 통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의인 10명만 찾을 수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만약 이 민족 이 그분께로 돌아서 그를 섬기기만 한다면 그가 한국에 값진 미래를 에비하시지 않겠는가? 더 힘센 국가의 야심과 탐욕의 마수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한 연약한 백성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찾도록 고취시킨다. 우리는 그것이 민족의 영적 각성운동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903년의 원산 부흥운동을 기점으로 원산 교회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놀랍게 성장하 였다. 남감리교의 선교는 다른 교파보다 늦었으나 부흥운동을 거치며 가장 빠른 신장률을 보였다. 1903년 원산선교사 부흥운동을 통하여 원산지역의 선교사들이 먼저 다시 회개하였고 이 는 원산지역의 영적, 수적 부흥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함 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역할은 이 민족에게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가져오는 채널의 역할임 을 그들은 분명히 견지하고 있었다.


3. 목포부흥회의 주역

1903년 하디로 인해 촉발된 영적 움직임이 1906년 전국의 특정 지역에서 확대되면 서 한국 교회의 영적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1906년 가을 이러한 영적 분위기는 저다인의 목포 부흥회를 통하여 더 촉진되었으며, 이것은 곧 발흥할 평양대부흥운동의 영적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남장로교 소속 프레스톤 선교사는 이 집회를 “한 주목할 만한 집회”(a Notable Meeting)이라고 일컬었다. 목포의 부흥운동은 남장로교 선교역사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 운동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목포는 주목받지 못한 작은 항구였으며, 선교의 역사도 길지 못하고, 선교부가 폐쇄 직전에 있었다. 그러한 때에 프레스톤 선교사의 부임과 함께 그 가 강사로 청빙한 저다인의 인도로 부흥회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지금까 지 서울 이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부흥운동이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또한 확 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의를 지녔었다.
목포 부흥운동은 사전의 간절한 기도가 준비된 가운데 열렸다. 저다인 목사는 일주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설교하였다. 저다인은 하디의 열정과 한국의 복음화를 향한 순수한 비전 을 가까이에서 배운 사람이었으며, 성령의 뚜렷한 지도력을 갖춘 자였다. 그는 성령 충만하였 고, 그의 설교에는 성령의 현시와 능력이 나타났다. 이렇게 이루어진 목포 부흥회에서는 성령 의 내적인 역사가 구체적으로 회중들 가운데 임한 영적 가성이 수반된 부흥운동이었으며, 통 성기도가 등장했으며, 이 부흥회의 영향력은 목포 지역을 넘어 전라남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4. 여러 저작들을 통하여 해외에 한국을 알림

그는 많은 저작(National Revivals, After Three Years, Growth and Spirituality, Joseph Lumpkin Gardine Collection, Sowing in Difficult Places)을 남김으로 한국 선교 를 기록하며 세계에 전하였다. 또한 선교잡지(The Korea Mission Field, 1905. 4.)에 글을 남김으로써 한국의 대각성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원산 부흥운동으로 인한 원산의 교회에 대하여 그의 저작 “Sowing in Difficult Places”에서 알려주기를, “교회는 수적인 면에서나 은혜 면에서 성장했다...더 강력한 영적 상태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시험과 시련 가 운데 서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그것들을 상당히 참아낼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사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교회의 영적인 삶이 전반적으로 깊어졌으며, 교인들 가운데 더 두드러진 내적 체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내적 체험은 더 연약한 형제들을 가 르치고, 바로잡고, 권유하고, 훈계하는 일에서 선교사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큼 주 안에서 매우 강해졌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흥의 역사를 가리켜 그의 저작 “National Revivals”에서 “민족각성운동”(the national awakening)이라 불렀다.
선교사들은 한국이 은혜의 기회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당시 민족이 당하는 위기는 하 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현시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부흥운동이야말로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이것은 선교사 자신들만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모국의 헌신저긴 지원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를 주도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한국인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하여 저다인은 “National Revivals”에서 “한국이 이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놀 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위해 우리의 믿음과 노력만을 기다리고 계실 분이라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한국의 사역의 중심지 모든 곳에서도 그 같은 노력이 필요하고, 가능한 작은 지 역들에까지 더 멀리 그것을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하나님의 역사에 대 한 요청에 관한 한, 현재의 요구가 이 백성 가운데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각성이 영 국과 미국에서의 각성과 같은 때에 발생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겠는가?”라고 자신과 당시 의 선교사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2019-06-27 18:16:33
121.xxx.xxx.174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9720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9799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21155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30657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7567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4350
1925
  내한선교사 / 13 / Baird, Richard Hamilton(1898-1995)   강기백     2020-07-06   41
1924
  내한 선교사 / 62 /Cornelson, James J.(1930-2005) / Cornelson, Barbara A.(1931-?)   조아론     2020-07-06   51
1923
  내한선교사_26_Hanson Marjorie Lucy   3학년 2반 박병수     2020-07-06   44
1922
  내한선교사 / 34 / Brockman, Fletcher Slims   지훈박     2020-07-06   34
1921
  내한선교사_14_Judy Carl Wesley   조영대     2020-07-06   32
1920
  내한선교사/63/Watson Robert D.(1886-1935)   김은혁     2020-07-06   39
1919
  내한 선교사 / 54 / Clark, Kathleen M.(미상, UP, 1962-1964)   이혜성     2020-07-06   70
1918
  내한선교사_48_Stewart,Mary S   김태     2020-07-06   33
1917
  내한선교사/46/Campbell, Agnes Marion(1886-1930, AP)   윤슬기     2020-07-06   46
1916
  내한선교사 / 21 / Lampe, Henry Willard(미상, NP) / Lampe, Ruth Heydon   최동권     2020-07-06   40
1915
  내한선교사 / 39 / Bryant, Evans(1839~1918, BFBS)   손요한     2020-07-06   35
1914
  내한선교사 / 21 / Best Margaret(1867-1942, NP)   김영무     2020-07-06   36
1913
  내한선교사_3-1반_14_강기현   강기현     2020-07-06   60
1912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65_안정우   안정우     2020-07-06   46
1911
  내한선교사_02_Adams George J   위예찬     2020-07-05   78
1910
  한국교회사_내한선교사 moore, Elizabeth S. 조사(2018210131_하정훈) (pdf)   하정훈     2020-07-05   40
1909
  내한선교사 / 06 / Eversole. Finley Monwell(1879-1967, SP) / Eversole. Edna Earle Pratt   신재승     2020-07-05   42
1908
  내한선교사 3학년2반 김선미 / Gilmore.George William   maple     2020-07-05   43
1907
  내한선교사_3학년3반_김주영_Dorothy Fairlie Leggatt   데이브     2020-07-05   38
1906
  내한선교사_3학년 3반_36(Robbins Henrietta P)_구원모   구원모     2020-07-04   55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960 / 전체 : 15,421,430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