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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haffin, Victor D.(1881-1916, NP) / Chaffin, Anna Bair(1883-1977, M, NP)
 작성자 : 윤은총, 이규영  2019-06-28 16:16:50   조회: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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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chaffin Victor D / 채핀 / 한국명: 채피듯
2. 생물연도: 1881.8 - 1916.6.5.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3 - 1916
5. 연표
1881.8.11 미국 인디애나 주 뉴 하모니에서 출생
1895. 성공회에서 세례 받음
1909. 아이오와 주 유니버시티의 파크대학 졸업
1911.6.7 안나 베어 선교사와 결혼
1912. 딸 모텔 출산
1913.4.19 선교사 파송, 서울 도착
1914. 감리회 선교사에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소속 변경
1914. 12.1 대한예수교 장로회 경기, 충청노회의 허락을 받아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도 고양, 김 포지역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동사복사로 활동
1915. 장로교 목사 안수 받음
1916.6.5. 건강악화로 별세. 당시 나이 35세
1916.6.6. 새문안교회에서 하디 박사 집례로 장례식 거행 및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
6. 가족사항
부인: Chaffin anna Bair
딸: Chaffin Motel
처제: Bair, Blanche Rosa

1.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
빅터 채핀은 1881년 8월, 미국 인디애나 주 뉴 하모니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성공회에서 세래를 받고, 18살 때 중생을 체험했다. 그 후 전도자의 사명을 품게 되었다. 그는 어디서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특별히 20세 때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경험했던 그는 한국 선교를 꿈꾸게 되었다. 1909년 아이오와 주 유니버시티의 파크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이곳에서 안나 베어 선교사를 만나 1911년 6월에 결혼을 했다.
그 후 딸 모텔을 낳았다. 그리고 1913년 4월에 어린 딸과 아내와 처제인 로사 베어 선교사와 함께 내한하게 되었다. 그는 남감리교 소속 목회자였지만 남감리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는 공식 기록은 확이되지 않는다.
빅터 채핀 선교사는 내한 직후 북장로교로 옮겨 언더우드 선교사를 도와 새문안교회에서 동사목사로 일했으면, 서울 서부 지역과 김포, 고양 등지의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헌신했다. 또 그는 연세대학의 모체인 조선기독교대학을 설립하는 일에도 언더우드 선교사를 도와 실무를 담당했다.
채핀 선교사는 결코 빛나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으며, 내한한지 3년 만에 과로로 별세하게 되었고, 그 후 양화진에 묻혔다. 그의 3년 동안의 사역에 대해 노블 선교사는 ‘채핀 선교사의 3년은 거룩한 삶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한 3년이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2. 그에 대한 몇 가지 기록들
채핀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였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던 중 2년 만에 미국 목회를 접고 한국에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다. 1913년 4월 19일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미 감리회 한국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활동하기보다 초교파 성격의 선교단체인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와 연결을 맺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채핀 부부의 동양선교회 사역은 1년으로 끝이났다. 미국에서 내한 할 시 미감리회 해외선교부의 정신 인준 절차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열정 하나만 갖고 한국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해외선교부의 생활비와 선교비등의 지원을 하나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에는 토마스 감독의 동양선교회와 연계하여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규모가 작았던 동양선교회로부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14년 6월에 미 감리회 연회에서 감리교 목사로 신분은 회복되었으나 이 후에도 선교비 지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선교 활동에는 재정적인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끝이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동역자를 붙여 주셔서 채핀 선교사 부부의 사명을 이끌어 주고 계셨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인 언더우드(H.G.Underwood, 원두우)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 개척자로서 30년차 고참(55세)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자신이 설립한 새문안교회 뿐 아니라 경기 서편 지역 40여개 교회를 맡아보아야 giT고 특히 1914년부터 본격적으로 장,감 연합 기독교학(후의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서처럼’ 일을 도울 수 있는 젊은 선교사가 필요했다.
장로교로 교적을 옮긴 후 채핀 목사는 언더우드의 ‘동사 목사’가 되어 새문안교회 사역 외에 김포, 고양 등 경기 서편구역 교회들을 순회하며 관리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비서역할까지 감당 하는데 언더우드가 신병으로 1916년 4월 갑자기 귀국하기 까지 1년 동안 무려 2,300여 통의 서신과 문서를 미국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채핀 목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채핀 목사의 선교사역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역하다가 1916년 연초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6월 5일 자정에 숨을 거두게 되었다.

기독신보에 게재된 “채핀 목사의 영면”이라는 내용이다.

목사 채핀씨는 본시 미감리회 목사로 1913년 조선으로 와서 복음 전도관에서 잠시 일하고자 미감리교회에 선교사 되기를 원하였으나 경제의 군술함을 인하여 장로교회로 가서 원목사와 함께 교회일에 열심한지라


이 내용을 통해 그가 처음 조선에 와서 복음 전도관과 잠시 관계를 맺었던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미 감리교회의 선교사로 내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까닭으로 임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경제가 궁핌함으로 인하여 장로교회로 가서 원목사(언더우드)와 함께 교회 일에 열심’했다는 『기독신보』의 기록은 그가 파송을 받아 왔는데, 당장에 활동할 임지를 배정받지 못하고 경제적인 큰 어려움에 봉착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마침 새문안교회를 맡고 있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더우드의 배려와 도움으로 빅터 채핀은 1913년부터 새문안교회 협동목사로 시무하게 되었다.

다음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1913년부터 1914년까지 1년간 진행된 선교 사업을 보고한 보고서의 내용의 일부이다.

지난 1년간의 제 사역에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첫째, 저는 책임을 맡고 있는 근(近) 40여개처의 교회를 돌아보며 저를 도와주는 한국인부교역자 한 사람도 없이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규조사들과 지도급 인력들이 있었지만 모든 교회 사역의 무거운 짐이 제 어깨 위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번 보고 드린 이후에 두 곳, 김포와 새술막에서는 장로 임직식이 있었습니다. 둘째, 비서 겸 조력자로 제 일을 함께한 채핀 목사의 도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채핀 목사는 지금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비록 여기 온 지가 오래 되지 않았지만 한국어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습니다. 여기에 온지 열 달도 채 못 되었을 때, 새문안교회에서 설교를 아주 잘 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도움을 힘입어서 우리는 순회 구역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보고서에서 나타나듯, 빅터 채핀은 언더우드가 경기도 일원의 40여개의 교회들을 개척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언더우드 선교사의 비서 겸 조력자로서 새롭게 채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빅터 채핀의 채용을 통해 언더우드는 서울 외곽 지역선교에 매진할 수 있는 큰 도움을 얻게 되었으며, 서울의 새문안교회의 설교를 빅터 채핀에세 맡길 정도로 새문안교회의 실질적인 목회활동을 넘겨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9-06-28 16: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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